기존 3800여 개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해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케어' 3800여 비급여 항목 2022년까지 모두 급여 전환…30조6000억 원 투여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취약계층 지원' '재난적 의료비의 제도화'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의사들은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할 방안도 없으면서 보장만 늘린다"고 주장한다. 특히,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의학과는 정형외과를 비롯한 '자기공명영상(MRI)'를 다루는 곳으로 관측됐다.
12일 <더팩트>의 취재를 종합하면, 문재인 케어는 기존 3800여 개 비급여 진료 항목에 대한 표준화를 통해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특히 필수적인 항목이었으나 비급여 대상이었던 MRI, 초음파, 로봇수술, 2인 병실 등도 건강보험에 포함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향후 5년간 약 30조6000억 원, 내년 약 3조4000억 원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질환)을 중심으로 한 고액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80%로 이미 선진국 수준이지만, 전체 질병에 대한 보장률은 2015년 기준 63.4%로 OECD 평균인 80%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인 케어가 실현되면 보장률은 70%까지 오른다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국회는 5일부터 6일 새벽까지 이어진 본회의에서 내년도 건강보험재정 일반회계 국고 지원' 규모 5조4201억 원 중 2200억 원 /더팩트DB |
◆재정조달 대책 미비…국고지원까지 삭감
문제는 재정조달 대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관련 예산까지 삭감됐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는 예년 수준의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기본 수입을 확보한 상태에서, 국고지원금 정상지급 확보 등의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했다. 여기에 더해 건강보험 누적 흑자 20조 원 중 10조 원을 활용해 추가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국회는 5일부터 6일 새벽까지 이어진 본회의에서 내년도 복지부 예산안을 63조1554억 원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보건의료 분야 건강보험재정 일반회계 국고 지원' 규모는 정치권의 5조4201억 원보다 2200억 원이 감액된 5조2001억 원으로 확정됐다.
애초 '보건복지위원'들은 문재인 케어 추진을 위해 국고지원 법 최고 한도인 20%(7조4649억 원) 수준의 국고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금액(7조3049억 원)은커녕 정치권에서 낸 금액조차 추가 삭감했다.
환자단체를 비롯한 의료단체 등은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들의 보험료 인상만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년도 국고지원액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53조3209억 원)의 14%인 7조4649억 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3만여 명은 지난 10일 정부의 의료정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반발하며 수가 정상화를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
◆의료계 "수가 정상화 위한 구체적 로드맵 필요…동네·중·소 민간병원 80%는 1년 내 도산"
무엇보다 현재 터무니 없이 낮은 의료수가 체계가 개선하지 않고, 급여 보장만 확대하면 '동네·중·소 민간병원 중 80%는 1년 내에 도산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은 '문재인 케어'에 대해 "전체 의료계 문제다"라면서 "동네, 중·소병원, 종합병원 등 전반적으로 큰 재정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나, 갑작스런 재난적 질병에 대해 단계적으로 급여화를 추진하는 것을 반대할 국민이 어디에 있나. 하지만 의료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은 비급여 전체를 급여화하는 것이다"며 "이는 의사가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을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어느 직종을 막론하고 직업 수행의 자유가 있는데 자영업자인 의사가 의료 서비스에 가격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것은 그 자유를 완전히 침범하는 행위이다. 일각에선 헌번소원을 제기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도 병원 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매우 낮은 의료수가는 개선돼야 한다. 분명 비급여 부문에서 이를 메우는 병원이 많을 것이다"며 "게다가 민간 실손보험과 건강보험을 합치면 보장률은 80~99%까지 돼 국민들에게도 비급여 항목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자료도 있다. 실제로 실손보험 가입자의 비급여 보장률은 약 80%고, 우리 국민 3300만명이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비급여가 급여화되면 '급여기준'이라는 게 생긴다"며 "어떤 시술은 특정한 질병에 대해서만 1년에 몇 회만 급여로 인정을 해준다는 것인데, 이 경우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수행하던 서비스가 상당히 제한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결과적으로 의사의 의료 행위가 제한되면 병원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민간 병원이 문을 닫게 돼 국가의 의료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의료계 일각에선 문재인 케어로 인해 가장 타격이 심할 곳으로 MRI와 초음파 등을 사용하는 정형외과를 꼽았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 /더팩트DB |
◆정형외과 등 MRI·초음파 사용 과목 최대 위기
그러면 '문재인 케어'의 도입으로 가장 먼저 피해가 발생하는 곳은 어디일까. 의료인계 관계자들은 MRI와 초음파 등의 사용이 필요한 정형외과, 또는 신경외과를 꼽았다.
예를 들어 정형외과의 경우 환자가 무릎이나 허리 통증을 호소할 경우 정밀 진단을 위해 MRI를 촬영한다. 이는 기존 관행상 낮게 책정된 수술 수가 때문이다. 즉 수술의 경우 수익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회당 40~60만 원가량 나오는 MRI 촬영 등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웠던 셈이다.
하지만 현행법 기준 MRI 촬영은 허리나 무릎 등에 급성손상이 발생했을 때 1회 보험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항목이 급여화될 경우 최초 1회 촬영만 보험이 보장되고, 이후는 삭감 대상이 된다. 게다가 삭감으로 발생한 손해는 고스란히 병원이 책임져야 한다.
경기 일산에 위치한 정형외과 전문 병원에서 근무하는 정모 의사는 "과거 A병원에서 MRI 촬영을 했던 환자가 수술을 안하고 지내다가 갑자기 B병원에 가서 통증을 호소한다면, 의사는 당연히 MRI를 권할 것이다"면서 "그런데 환자의 과거 MRI 촬영 이력을 모른 상태에서 나라에 급여를 청구하면 삭감 대상이 된다. 그럼 그 구멍은 병원이 메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연히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의료수가 체계 개선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의료계에서도 지혜를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