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갑질 유치원', 원생 모집 후 폐원 3개월 전 통보…학부모 '패닉'
입력: 2017.12.05 04:00 / 수정: 2017.12.05 10:28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J유치원. 학부모 D씨는 요양병원으로 용도가 변경된다는 것을 1년 전 신청 당시에만 학부모에 알렸어도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소희 기자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J유치원. 학부모 D씨는 "요양병원으로 용도가 변경된다는 것을 1년 전 신청 당시에만 학부모에 알렸어도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소희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서울시 은평구의 한 유치원이 "내년 2월 폐원한다"는 사실을 폐원 3개월 전에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유치원은 유치원 부지에 요양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1년 전 신청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지만, 비슷한 시기 원생을 모집할 때에는 이 같은 사실을 학부모들에게 고지하지 않아 '돈 벌이'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유치원에 다니는 200여 명의 원생들과 학부모들, 수십여 명의 교사들은 이런 유치원 측의 '갑질'에 불만조차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기기 위해선 해당 유치원의 추천서가 필요하고, 교사들 역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선 해당 유치원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학부모 "유치원 폐원 통보, 알리미 전달 4시간 후 진행…선생도 몰랐다"

<더팩트> 취재진은 최근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J유치원에 아이를 등원하고 있는 학부모 5명을 만났다. 이날 모인 학부모들은 "유치원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아이를 어디로 입학시켜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지금 아이를 새로 보낼 유치원을 알아보고 오는 중"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학부모 A씨는 이날 기자에게 J유치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보여주었다. A씨는 해당 애플리케이션 속 '받은알리미' 게시판을 보여주면서 "11월 10일 오후에 학사일정을 안내한다는 알림을 당일에 받았다"며 "저는 이날 일을 해야 해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다녀온 주변 학부모들은 모두 혼돈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설명에 따르면 J유치원은 11월 10일 오후 12시 51분께 알리미를 통해 '2018년 학사일정 안내'를 4시간 후인 오후 5시께 진행한다고 학부모에 고지했다. 학부모들은 통상 내년에 진행될 학사 과정을 사전에 안내하는 자리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해당 안내회에 참석했다.

J유치원은 지난 10일 알리미를 통해 학부모에게 당일 오후에 학사 일정 안내를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해당 학사 일정 안내회는 사실상 폐원 안내였다. /독자 제공
J유치원은 지난 10일 알리미를 통해 학부모에게 당일 오후에 '학사 일정 안내'를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해당 학사 일정 안내회는 사실상 폐원 안내였다. /독자 제공

그러나 이날 J유치원 측이 진행한 안내회는 학사 일정 안내가 아닌 사실상 '폐원 통보' 형식으로 진행됐다. '내년 2월부터 유치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운영된다'며 다른 유치원을 찾아보라는 취지로 안내회가 진행됐다는 게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당황한 학부모들은 자녀의 담임선생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담임선생들도 눈물을 흘리며 "저희도 어제 전해 들었다"며 "선생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운영위원회 역시 "어제 전해 들었다. 실제로 진행될 줄 몰랐다"며 "당연히 재고할 사항이라고 생각해 학부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갑작스럽게 '폐원 안내'를 진행한 뒤 J유치원 측은 학부모들에게 또 다시 알리미를 보냈다. 이 알리미에는 '폐원을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우리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는 주변 유치원들에 대한 안내를 해드리겠다'며 폐원을 못박았다. 이후 유치원 측은 11월 13일에도 학부모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 학부모는 몰랐던 요양병원 신청…은평구청 "1년 전 신청 완료"

학부모들은 유치원이 하루 아침에 요양병원으로 변경되는 것이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유치원으로부터 유치원 용도 변경이 아닌, 유치원 옆에 요양병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바 있지만, 유치원은 줄곧 '미뤄지고 있다'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당초 유치원은 학부모들에게 해당 공터에 요양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건축 허가가 지연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취재 결과, 요양병원은 해당 공터가 아닌 유치원 건물 용도 변경을 통해 운영될 예정이었다. /김소희 기자
당초 유치원은 학부모들에게 해당 공터에 요양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건축 허가가 지연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취재 결과, 요양병원은 해당 공터가 아닌 유치원 건물 용도 변경을 통해 운영될 예정이었다. /김소희 기자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J유치원은 지난해 10월 21일 은평구청에 해당 건물을 요양병원으로 운영하겠다고 신청했다. 은평구청의 허가는 같은해 11월 10일 떨어졌다. 즉, J유치원은 요양병원 설립 인·허가를 받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부모들에게 정확한 안내를 하지 않았다. 진행 사항을 궁금해 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유치원 앞 공터에 요양병원을 짓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거짓'으로 둘러대며 안심시켰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등원시키며 유치원 측이 말한 유치원 앞 공터를 둘러봤다. 해당 공터는 자그마한 텃밭을 꾸릴 정도 크기에 불과한 굉장히 협소한 공간이기 때문에 요양병원이 들어서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봤다.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큰 문제 없이 유치원에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안심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유치원 측이 '유치원 건물이 요양병원으로 바뀐다'고 '알방적인 통보'를 했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학부모 B씨는 "올해 2월 신입생 선발 당시 1년 만에 유치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면, 아이를 이전 유치원에서 전학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거면서 입학금을 다 받은 거다. 이미 요양병원 허가를 받아놓고 아이들을 새롭게 받고, 폐업하기 세달 전에 학부모에게 고지하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담임선생님도 이제 어느 유치원으로 가야할지 막막하다며 저랑 아이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며 훌쩍였다.

◆ 유치원 폐원 신청은 아직…교육청 "유치원 폐쇄 결정 막기 힘들어"

J유치원의 폐원 신청은 아직 서부교육지원청에 접수되지 않은 상태다. 서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 관계자는 <더팩트>에 "유치원이 폐원을 신청하려면 인가서,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기록물 이관, 7세 아이 졸업 대장 그리고 5~6세 아이에 대한 조치 계획서 등 많은 서류들을 모두 일괄 제출해야 된다"며 "폐원 신청 이후 5일 안에 저희 교육청이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가 완벽하게 구비되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불가하다. 그래서 J유치원도 아직 접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썰렁한 분위기의 유치원 놀이터. 학부모 A씨는 너무 충격을 받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썰렁한 분위기의 유치원 놀이터. 학부모 A씨는 "너무 충격을 받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서부교육지원청은 폐원 신청을 받기도 전에 해당 유치원 용도 변경건과 관련된 학부모들의 민원을 받았다. 이후 은평구청에 해당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러나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구청 측으로부터 교육청에 폐원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청에 요양병원 인·허가 신청을 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설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치원이 폐원시 제출해야 할 5~6세 아이에 대한 조치 계획서에는 유치원 전교생이 앞으로 유치원에 계속 다니게 될지, 어린이집으로 옮길지 혹은 홈스쿨링으로 전환할지 등 추후 계획 과정이 기재돼야 한다. 다만 학부모가 폐원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아 계획 과정을 유치원에 제출하지 않아도 유치원은 계획 대로 폐원을 진행할 수 있다.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저희는 모두 갖춰진 서류를 받아야 폐원 신청을 받겠다는 데 변함이 없지만, 유치원이 우리는 더이상 유치원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고 말했다.

유치원 측은 지난달 10일 '폐원 통보' 이후 줄곧 추천 가능한 유치원 목록을 알리미에 게재하며 학부모를 안심시키고 있다. 학부모 C씨는 "11월은 유치원 모집기간이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아이를 보낼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치원으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있다"며 "지금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 유치원에 협조하고 있지만 찝찝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유치원 학부모를 통해 요양병원으로 용도가 변경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요양병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었다. /김소희 기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유치원 학부모를 통해 요양병원으로 용도가 변경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요양병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었다. /김소희 기자

◆ '유치원→요양병원' 법적 문제 없지만…학부모 "입학할 때 말해줬어야"

종합해 보자면, 법적으로 유치원이 요양병원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건 문제가 없다. 다만, 학부모들은 "1년 전 구청에 요양병원 인·허가 신청을 했을 당시 학부모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고지 하고, 새롭게 입학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1년 후에 유치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렸다면 아이를 5세, 6세, 7세를 모두 다른 유치원에 보내는 초유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게 갑질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결국 유치원은 학부모들의 계속되는 항의에 지난달 13일 예정됐다가 연기된 '학부모 모임'을 5일 재개한다. "고작 몇개월 등원을 위해 입학금을 내야 했던 것"이라고 주장한 학부모들의 입장도 받아들여져 지난 11월 말 입학금 반환도 이뤄졌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여전히 유치원이 입학한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학부모 A씨는 "만약 유치원 운영이 힘들어서 내린 결정이라면 원비를 올려도 된다. 돈을 더 내도 좋으니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싶다"며 "5,6,7세에 이어 초등학교까지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아이는 또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 아이가 불안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계속되는 항의에 유치원 측은 오는 5일 3차 학부모 모임을 마련하고, 사죄의 뜻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됐던 입학금도 반환을 원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돌려줬다. /독자 제공
학부모들의 계속되는 항의에 유치원 측은 오는 5일 '3차 학부모 모임'을 마련하고, 사죄의 뜻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됐던 입학금도 반환을 원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돌려줬다. /독자 제공

학부모들은 "유치원 원장이 우리 입장과 무관하게 '요양병원 진행 과정에 대해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알리미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유치원 원장은 알리미를 통해 "(유치원에서 요양병원으로 바뀌는 것은) 너무 지치고 소진이 다 돼 힘들었던 차에 일을 그만 둘 핑계거리"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유치원 원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미 어머님들께 두 차례에 걸쳐 요양병원 설립과 관련해 고지를 했다. 입학금도 다 돌려줬다"며 "내일 있을 '학부모 모임'은 단순히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차원이지, 또 무언가를 설명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유치원은 5~6세 학생들을 위해 전원 추천서를 써줬고, 학생들 모두 유치원을 옮긴 것으로 파악했다"며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했다.

다만, 요양병원이 학부모들에게 고지한 '공터'가 아닌 유치원 건물 안에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부지에 설립하려고 했는데 추후에 유치원 건물로 변경된 것"이라며 에둘러 사실을 인정했다.

한편, 지역 주민들도 유치원 주변에 '요양병원 설립 반대' 현수막을 붙이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유치원 바로 옆 빌라에 거주한다는 학부모 D씨는 "와보시면 알겠지만, 주택들이 촘촘하게 밀집된 협소한 곳에 요양병원이 생기는 것"이라며 "하루 아침에 유치원에서 요양병원이 웬말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장의 아들이 강동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한다. 평소 아이들의 물건을 아들이 운영하는 한의원 봉투에 담아주곤 했다"며 "학부모 사이에선 요양병원도 모두 원장의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계획된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원장은 <더팩트>에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관련자가 운영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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