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글쓰기로 본 프로야구 선수 조인성 은퇴사
입력: 2017.11.12 05:00 / 수정: 2017.11.15 15:36

한화 조인성이 프로야구 선수 20년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7일 은퇴를 선언한 뒤 팬들에게 남긴 은퇴사가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 최용민 기자
한화 조인성이 프로야구 선수 20년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7일 은퇴를 선언한 뒤 팬들에게 남긴 은퇴사가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 최용민 기자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프로야구 조인성 선수가 은퇴한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프로야구 선수 생활 2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뒤에 은퇴서 전문이 붙어 있어 보게 됐다. 원고지 200자 10장이 넘는 긴 글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술술 잘 넘어가 끝까지 읽게 됐다. 솔직한 마음이 깔끔하게 잘 정리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은퇴사를 글쓰기로 분석해봤다.

보통 사람은 원고지 200자 10장의 장문을 쓰려면 머리가 좀 아프다. 특히 운동만 해온 프로야구 선수에겐 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긴 글을 썼고, 그것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썼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미리 틀을 잘 잡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은퇴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앞 부분은 은퇴의 소회, 본론은 자신이 거친 야구단에 대한 인사, 마지막은 가족·야구팬 등 주위에 대한 감사인사로 마무리했다.

이제 여기에 맞춰 자기가 느낀 바, 하고 싶은 말을 담으면 된다. 가식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하는 게 포인트다. 서두에선 ‘당장 내일이라도 구장으로 나가 훈련할 것 만 같고, 포수 마스크와 미트를 쓰면 펄펄 날 것 같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선수라면 누구나 다 한번 쯤 그런 생각을 해 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물러날 시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LG, SK, 한화구단에 대한 인사는 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인생이 프로야구로 점철됐으니 할 얘기가 많은 것도 당연할 것이다. 세 구단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진정성을 담아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게 적절하게 균형을 잡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첫 사랑 LG를 떠나야 했을 때의 팬들에 대한 미안함, SK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의 교차,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한화에서의 아쉬움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느 구단도 은퇴사를 보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도 깔끔하게 했다. 자신이 받은 과분한 사랑을 야구를 위해 쓰겠다고 다짐한 뒤 팬 여러분은 잊어도 자신은 팬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해 감동과 여운을 줬다.

조인성이 팬들에게 남긴 은퇴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교체되는 투수 로저스를 격려하는 포수 조인성(오른쪽)./더팩트DB
조인성이 팬들에게 남긴 은퇴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교체되는 투수 로저스를 격려하는 포수 조인성(오른쪽)./더팩트DB

옥에 티는 서두에 나오는 “모든 분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를 올려 죄송하다”는 부분이다. “일일이 찾아 뵙고~”는 경조사를 마친 사람들이 찾아와 준 것에 대한 답례 편지를 보낼 때 빼놓지 않는 상투적 표현이다. 군더더기 없이 그냥 글로 작별인사를 드린다고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아마 팬 중에서 조인성 선수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은퇴인사를 하리라고 기대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울림이 있는 부분은 프로야구선수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을 운(運)으로 돌린 것이다. 신인일 때 쟁쟁한 선배들을 보면서 과연 여기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좋은 팬, 코칭 스태프, 선수, 프런트를 만나 오래 야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세상일이 실력으로만, 자기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있어도 운이 닿지 않아 사라지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주위의 뜻하지 않은 도움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게 세상사다. 재능을 앞세우지 않고 운이 따랐다는 겸손한 자세와 마음에 공감이 간다. 그래서 실력이나 능력이 30%라면 운이 70%라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가 은퇴사를 직접 썼는지, 아니면 구술하고 다른 사람이 대필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솔직한 마음이 없었으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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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성 은퇴서 전문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선수 조인성입니다. 그동안 절 아껴주신 모든 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를 올려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현역 프로야구 선수에서 은퇴합니다. 아홉 살 때부터 시작한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을 마흔 세 살에 마감합니다. 34년 간 앞만 보고 달려온 야구선수의 길을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

은퇴를 말씀드리는 지금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구장으로 출근해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할 것만 같습니다. 누가 제 머리에 포수 마스크를 씌우고, 왼손에 포수 미트를 끼워주면 그라운드를 펄펄 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은퇴가 실감 나지 않더라도 지금이 제가 물러날 시간이란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현역 야구선수 인생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1998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처음 입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쟁쟁한 선배들을 보며 잔뜩 기가 죽었습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포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속으로 '3~4년 뛰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겁이 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제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것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매번 좋은 팀에서 좋은 팬, 코칭스태프, 선수, 프런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3~4년이 아니라 20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현역 선수로 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분이 참 많습니다.

우선 지금의 '조인성'을 만들어주신 LG 트윈스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LG는 부족한 절 1차 지명하고, 2011년까지 많은 기회를 준 팀입니다. 그 기회가 없었다면 전 20년 동안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었을 것입니다. LG에서 만난 코칭스태프, 동료 선수, 구단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LG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때론 질책과 비판으로, 때론 격려와 응원으로 절 보듬어주신 LG 팬분들이 제겐 제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이었습니다. 2011년 겨울 LG를 떠날 때부터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LG를 떠난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LG 팬들의 감사함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은퇴하는 지금,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FA가 됐을 때 절 받아주시고,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SK 와이번스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 합니다. 2년 동안 SK에서 뛰며 팀에 꼭 필요한, 좀 더 팀에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SK 선수단의 에너지 넘치는 팀 분위기 덕분에 늘 활기찬 마음으로 구장에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하지만 2년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 늘 SK 구단과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죄송한 마음, 앞으로 살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더 나은 사회인, 더 훌륭한 야구인이 돼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마지막 팀인 한화 이글스 구단에도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4년간 한화 유니폼을 입은 덕분에 마지막까지 야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항상 구장에 찾아와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과 왜 야구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뛸 때 가을 야구를 팬분들께 선물해드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한화 이글스의 행운과 팬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한화 팬들께 좋은 활약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지나온 34년간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다 보니 인사가 길어졌습니다. 저를 지켜봐 주시고, 제게 용기를 주시고, 제가 더 나은 선수가 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제 야구 인생을 정성껏 기록해주신 언론 관계자분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야구선수로 만들어주신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제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치신 어머니, 그리고 제겐 야구 이상의 의미인 제 아내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34년간 오직 한 길을 걸어오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34년의 인생은 한국야구와 팬 여러분께 빚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초심을 잊지 않는 '야구인' 조인성이 되겠습니다. 팬 여러분은 저를 잊어도 전 팬 여러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1월 7일 전 프로야구 선수 조인성 올림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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