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의 '교통약자배려석'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선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더팩트DB |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마을버스를 탔다 ‘교통약자 배려석’이란 스티커에 눈길이 갔다. '노약자석이 언제 저렇게 바뀌었지. 신기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색의 스티커는 좌석 창문틀에 붙어 있었다. ‘교통약자 배려석’이란 흰 글자 밑에 노인,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를 나타내는 그림이 하얗게 새겨져 있었다. 스티커를 보면서 약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노’(老)자가 빠진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을버스에서 본 교통약자배려석 스티커. 약자의 개념이 확대된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로 느껴져 반가왔다. 교통약자 배려석의 원조는 경로석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유교사상에 따라 마련된 경로석은 노인들만 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노약자석으로 바뀌고 노인, 임산부, 중증장애인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나 노약자석도 ‘노인석’이라는 인상이 강해 좀 더 중립적인 ‘교통약자석’으로 용어가 바뀌고 임신부나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들이 추가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노약자석이 교통약자석으로 된 것은 2007년이니 꽤 오래된 셈이다. 다만 운수회사 사정에 따라 노약자석과 교통약자석을 혼용하다 보니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잘 몰랐을 뿐이다.
서울 시내버스 창문 틀에 붙어 있는 교통약자 배려석. |
약자 개념이 확대된 것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다소 의외다. 수적 우위가 힘을 발휘하는 민주 사회에서 노인인구가 늘어나는데도 오히려 그들이 받던 혜택을 줄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노인의 희소성이 감소하는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엄밀히 따지면 노인들만이 대중교통에서 좌석 편의 제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임신부나 장애인도 있고 유아들도 도움을 필요로 한다. 또 우리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약자가 많이 있다. 이러한 ‘약자의 평등화, 동등화’ 현상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교통약자는 12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있는 걸 보면 이제 우리가 나이 중심의 획일주의 약자개념에서 벗어날 때가 충분히 됐다고 본다.
그러나 교통약자석의 운영은 아직 과도기적이다. 교통약자석이 여전히 노인전용석이라는 인식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약자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꾸짖거나 임신한 여성인 줄 모르고 여기는 당신이 앉는 곳이 아니라며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술을 마시고 지하철에서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큰 소리를 치는 분들도 있다. 네티즌들이 ‘노슬아치’(노인과 벼슬아치의 합성어)란 용어를 쓰며 ‘나이든 게 벼슬이냐’며 반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러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세대갈등의 진원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교통약자석 제도가 뿌리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인인구의 급증에 따른 새로운 경로문화가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교통약자석이 비어 있을 때 빈 채로 가야 할 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을 고려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배려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배려를 받는 사람은 양보하고 배려해준 사람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의 배려를 당연시하거나 배려받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시 배려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교통약자는 또 에티켓이 있어야 한다. 약자라 해서 차례를 무시하고 새치기 하거나 밀치고 들어가는 것도 배려할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교통약자제도가 선순환하려면 배려받는 사람의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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