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가축의 저주', 소·닭의 말 없는 외침
입력: 2017.08.19 05:00 / 수정: 2017.08.19 05:00

살충제 달걀은 비 동물적 대량사육에 따른 가축의 역습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18일 열린 동물권 단체 케어의 살충제 달걀에 대한 근본적 대책 요구 기자회견 퍼포먼스./임세준 기자
'살충제 달걀'은 비 동물적 대량사육에 따른 '가축의 역습'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18일 열린 동물권 단체 케어의 '살충제 달걀에 대한 근본적 대책 요구 기자회견' 퍼포먼스./임세준 기자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살충제 계란’의 파문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안전할 줄로 알았던 친환경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발견되는 등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모르면 그냥 먹지만 일단 알게 되면 손이 가지 않는 게 사람 심리다. 당국은 계란을 100개 이상 대량으로,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으면 괜찮다고 안심시키지만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TV는 연일 밀집 사육되고 있는 양계장을 비추고 있다. 좁은 곳에 닭을 가둬놓고 키우다 보니 진드기 벼룩 등이 생기고, 이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살충제를 뒤집어쓴 닭을 조사해보니 계란에서 피프로닐 비펜드린 등 살충제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닭은 모래로 목욕해 벼룩 진드기 등을 제거한다. 그런데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으니 진드기가 달라붙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러니 양계업자는 살충제를 뿌렸고 살충제 범벅이 된 닭은 계란에 피프로닐이나 비펜드린 등 유해성분을 쏟아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업자득이다. 닭 사육장은 보기에도 답답하다. 철망이 쳐진 좁은 울타리 안에 닭이 빼곡히 들어서 사료 통 앞으로 머리만 내밀고 연신 먹이를 쪼고 있다. 몸을 뒤로 돌리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24시간 아니 죽을 때까지 서서 먹고 앞만 보고 있는 게 닭의 인생처럼 보인다.

살충제 달걀 파문은 대형마트의 달걀 판매대를 텅 비게 만들었다./더팩트DB
'살충제 달걀' 파문은 대형마트의 달걀 판매대를 텅 비게 만들었다./더팩트DB


인간이 소 돼지 양 등 동물을 가축화해 양식으로 먹은 것은 1만 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몇 백 만 마리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지구상에 10억 마리의 양과 돼지, 소가 있고 닭은 무려 250억 마리가 넘는다.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닭은 이제 양념치킨 프라이드치킨 등 언제,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먹거리가 됐다.

닭은 야생에서 7~12년 동안 산다. 소의 수명은 닭의 두 배인 20~25년 남짓이다. 반면 인간의 수명은 1900년대까지만 해도 30세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80세가 넘었다. 불과 10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가축화돼 산업화된 닭과 소는 제 명대로 살기는커녕 몇 주 또는 몇 개월의 짧은 삶을 산다. 수탉은 생후 3개월이면 도축된다. 3개월 사료를 주면 몸무게가 최대가 된다. 굳이 돈을 써 더 키울 필요가 없다. 소도 마찬가지다. 움직이면 근육이 생기고 근육이 있는 소는 맛이 없다고 해서 우리에 갇혀서 사료만 먹다 뚱뚱하게 살이 쪄 도살장 행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왜 육식을 하게 됐을까.

인류의 식성이 초식에서 육식으로 바뀐 것은 200만 년 전 나타난 호모 일렉투스(서서 걷는 사람) 때라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몸집이 170㎝ 정도여서 지금의 우리와 비슷했고, 뇌가 커 돌로 도구를 만들어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짐승들이 먹고 남긴 뼈를 깨서 그 안에 있는 골수를 먹는 정도였는데 도끼를 만들면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생각해보라. 땅에 고정돼 있는 식물은 그냥 따기만 하면 되지만 움직이는 동물을 잡으려면 전략을 세워야 하는 등 머리를 더 써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적 뇌의 크기도 1000㏄로 커져 인류는 머리가 큰 아이를 출산하게 됐다. 400만~500만 년 전 초기 인류 때에는 뇌가 침팬지와 비슷한 450㏄였으나 이제 두 배 이상 커진 것이다. 현생인류가 출현한 10만 년 전이 되면 머리 크기는 오늘날 우리들과 비슷한 1300㏄에 이른다. 뇌는 지방으로 이루어진 기관이다. 고지방, 고단백의 식생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정기적으로 고기를 먹는 식생활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인간은 큰 두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살충제 달걀 조사에서 판매 적합 판정을 받은 달걀들이 마트의 판매대를 조금씩 채우고 있으나 소비자의 불안감까지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살충제 달걀' 조사에서 판매 적합 판정을 받은 달걀들이 마트의 판매대를 조금씩 채우고 있으나 소비자의 불안감까지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인간은 육식을 하면서 진화를 거듭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가 됐고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눈부신 과학기술은 우주선, 스마트 폰을 만들고 질병을 하나 하나 정복해 수명을 연장시켰다. 또 농산물과 가축의 생산량도 획기적으로 늘려 싼 값에 소, 돼지,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량 생산과 증식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에서 광우병이라는 희귀병이 발생하고 조류 인플루엔자가 수시로 일어나 소, 돼지, 닭을 떼죽음시킨다. 급기야 계란에서 살충제가 나올 지경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비만이라는 질병 아닌 질병에 신음하고 있다.

젖소는 평생 임신상태다. 우유를 계속 생산하기 위해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인공지능까지 만드는 인간에게 젖소의 종신 임신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못할 짓인가. 살충제 계란은 비(非) 동물적인 대량 사육에 대한 가축의 저주, 보복일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의 사육조건을 마련해달라는 소, 닭의 말 없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thefac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