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커튼콜] 카뮈와 서태지가 만났다, 통제 너머 희망 '페스트'
입력: 2016.08.01 06:40 / 수정: 2016.08.01 06:40

페스트의 주조연 배우들. 뮤지컬 페스트는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남용희 인턴기자
'페스트'의 주조연 배우들. 뮤지컬 '페스트'는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 /남용희 인턴기자

'TF커튼콜'은 뮤지컬, 연극, 음악회 등의 공연 리뷰를 조금 더 쉽게 풀어낸 리뷰기사로, 예비 관객들에게 공연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들과 친근하게 소통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더팩트ㅣ윤소희 기자, 강수지 인턴기자] 뮤지컬 '페스트'(연출 노우성)는 프랑스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 '페스트'가 원작이며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음악들로 '페스트'의 메시지를 표현해낸 창작 초연 작품이다. 공연은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 내용 (★★★★)

'페스트'에서는 지구의 모든 나라가 하나로 통합된다. 국가가 제공하는 시스템 안에서 통제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간의 생명과 그로 인한 존엄성을 강조한다. 주인공 리유는 물론 타루와 랑베르(극 중간에 가치관의 변화를 맞는 인물) 역시 결국 그를 따른다. 규정이 1순위가 되는 오랑('페스트'의 배경 도시)시에서, 사람보다 규정을 우선시하는 상황을 비판하고 그 상황에 맞선다는 상황에서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국가 재난 사태라고 부를 수 있는 페스트 발병에 윗선들은 '나 먼저 살고 보자' '병에 걸린 이들을 모두 죽이면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국가에 저항하는 이들은 일반 소시민들이다. 소시민들은 뭉쳐서 저항하지만 결국 국가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시스템과 통제, 소시민과 저항, 절망과 본성, 이 과정을 통해 '페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희망이다. 극의 막바지에 페스트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희망에 차있었다. 급작스럽게 끝나는 느낌은 있지만, 페스트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뮤지컬 페스트의 격렬한 안무. 뮤지컬 페스트는 탁월한 안무로 디지털화된 도시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뮤지컬 '페스트'의 격렬한 안무. 뮤지컬 '페스트'는 탁월한 안무로 디지털화된 도시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 안무 (★★★★☆)

오랑시의 사람들은 기계 안에 들어가 안 좋은 기억을 지우고 매일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디지털화된 오랑시의 사람들을 박지선 안무가가 안무로써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무대에 오른 수십 명의 오랑시 시민들은 일제히 직선화된 동작의 춤을 췄다. 손짓 하나, 몸짓 하나가 디지털화와 획일화를 드러내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기괴한 느낌과 이질적인 감정이 들게 했다.

감성이 배제된 도시이니만큼 차가운 느낌이 드는 안무가 주를 이뤘지만, 배우들이 사랑을 나누거나 이성보다 감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따뜻한 느낌이 드는 안무로 반전을 줘 관객에게 극의 전환된 분위기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뮤지컬 페스트에서 리유를 연기하는 배우 박은석-손호영-김다현. 뮤지컬 페스트에서 배우 박은석 손호영 김다현(왼쪽부터)이 리유 캐릭터로 활약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뮤지컬 '페스트'에서 리유를 연기하는 배우 박은석-손호영-김다현. 뮤지컬 '페스트'에서 배우 박은석 손호영 김다현(왼쪽부터)이 리유 캐릭터로 활약하고 있다. /남용희 인턴기자

◆ 연기 (★★☆)

전체적으로 이날(7월 28일) 공연에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잔 실수가 잦았다. 코타르 역의 조휘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가 한 번 이상 대사를 절어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

리유 역의 손호영은 대사 톤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연기보다는 노래에서 매력이 더 느껴졌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리유의 넘버를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타루 역의 오소연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페스트'를 밝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조금 다운시켜야 할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무난한 캐릭터 소화였다. 랑베르는 극을 서술하는, 주인공 리유보다 더 비중이 많은 역이다. 윤형렬은 굵직한 목소리로 극의 중심을 꽉 잡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줬다. 그의 연기는 흠잡을 부분이 없었지만, 기사를 작성하는 부분의 손동작은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다.

조연인 코타르(조휘 분)와 리샤르(김은정 분)의 얄미운 연기는 제대로였다. 하지만 실수가 없던 조휘에 비해 김은정은 얄밉게 말해야 하는 부분에서 실수가 이어져, 그 실수가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그랑(조형균 분)과 잔(김주연 분)은 극에서 꽤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랑 역에 세 사람(조형균 정민 박준희)이 번갈아 연기할 정도의 비중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랑은 잔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부분 외에는 홀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없는 캐릭터다. 잔은 원 캐스팅이다. 김주연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할 때 몸서리치는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앙상블은 전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리샤르 시장에게 저항하기 위해 한 마디씩 던지는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했다. 하지만 앙상블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해지니 분량이 너무 많아져 집중도를 떨어트린 듯했다.

뮤지컬 페스트 넘버의 원곡을 부른 가수 서태지. 뮤지컬 페스트는 프랑스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 페스트의 내용을 가수 서태지의 곡들로 엮은 작품이다. /남용희 인턴기자
뮤지컬 '페스트' 넘버의 원곡을 부른 가수 서태지. 뮤지컬 '페스트'는 프랑스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 '페스트'의 내용을 가수 서태지의 곡들로 엮은 작품이다. /남용희 인턴기자

◆ 넘버 (★★★☆)

'페스트'의 넘버 전곡은 서태지의 노래다. 국민적으로 유행했던 노래는 일반적으로 낯선 뮤지컬 넘버에서 반가움을 불렀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서태지의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흥을 주체 못 해 몸을 들썩이는 등 이른바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준말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를 선사하기도 했다.

서태지의 노래를 모르는 이들에겐 신선함과 난해함이 반반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합쳐지니 알던 가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서태지의 노래 가사에 많은 뜻이 담겨 있고 상황에 맞는 넘버 선택, 음악 감독의 편곡은 탁월했다는 평이다.

모든 넘버를 서태지의 노래로 채웠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만, 그의 노래가 아닌 조금 더 듣기 편한 노래 두 곡 정도가 대신 들어갔으면 공연 자체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미래 도시를 구현한 뮤지컬 페스트 무대. 뮤지컬 페스트는 독특한 무대 장치들로 극의 배경인 2028년 오랑시 만의 디지털화된 분위기를 구현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미래 도시를 구현한 뮤지컬 '페스트' 무대. 뮤지컬 '페스트'는 독특한 무대 장치들로 극의 배경인 2028년 오랑시 만의 디지털화된 분위기를 구현했다. /남용희 인턴기자

◆ 무대장치 (★★★★☆)

독창적인 무대로 찬사를 받는 무대디자이너 정승호가 '페스트'의 무대감독으로 활약해 극의 배경인 2028년 오랑시를 완성했다. 정승호 무대감독은 뮤지컬 '모차르트' '레베카' '베르테르' 등 여러 걸작들에서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정승호 무대감독은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디지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회색을 무대장치의 주색으로 사용했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의 공간마다 특색을 잘 살려 구현해냈다. 일반 공간은 미래 도시라는 특색에 맞게 디지털화된 요소들로 무대를 표현했고, 실험실과 식물원은 아날로그한 느낌을 살렸다.

오랑시의 시대와 걸맞은 조명은 오랑시의 분위기를 한층 더 첨단화시켰다. 조명감독은 뮤지컬 '사의 찬미' '러브 레터' '심야 식당' 등에서 활약한 조명디자이너 나한수가 맡았다. 격자무늬 등의 조명이 무대의 오랑시 시민들에게 쏘아지니 마치 오랑시 시민들이 컴퓨터 속 인물들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연예팀ㅣ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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