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들을 향한 입주자들의 폭언과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잊을만하면 경비원 폭행 논란이 불거지며 개선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때뿐이다. 심지어 경비원들은 자식뻘 입주자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더팩트DB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아파트 경비원들을 향한 입주자들의 폭언과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잊을만하면 경비원 폭행 논란이 불거지며 개선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때뿐이다. 심지어 경비원들은 자식뻘 입주자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경비원 폭행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 경비원 폭행은 아파트는 물론 일반 건물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2014년 10월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 모(53) 씨가 인화물질을 자신의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여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투병한 지 한 달 만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씨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욕적인 언행과 비인격적인 대우 끝에 분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아파트 경비원 고용 등 해결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최근 서울 남가좌동에 있는 한 아파트 경비원 김 모(58) 씨는 입주자 전용문으로 들어오는 방문객에게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차를 뒤로 빼는 과정에서 뒤차와 접촉 사고가 나자 뒤차 운전자가 경비원 김 씨에게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이 운전자는 김 씨 얼굴에 침을 뱉는가 하면 말리는 주민들에게도 심한 폭언을 했다. 이 운전자는 이 아파트 입주자였다.
지난 4월 서울 서대문의 한 건물 황 모 경비원은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으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폭행을 당했다. 정 회장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던 중 건물 셔터가 내려온다는 이유로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달 16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 A(39) 씨가 복도에 있는 유모차를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 B(69) 씨를 폭행했다. B 씨는 유모차가 다른 주민의 소유이기 때문에 함부로 치울 수 없다며 거절한 것이 폭행 이유였다.
경비원 폭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정우현 MPK 그룹(미스터피자) 회장이 지난 4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출두해 사죄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 회장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던 중 건물 셔터가 내려온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이새롬 기자 |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말 발표한 '아파트 노동자 지원방안연구'에는 서울지역 아파트 경비원 45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입주민에게 욕설이나 무시, 구타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10명 중 2명 이상(22%)의 경비원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에 응한 경비원은 평균 149만2000원의 임금을 받으면서, 대부분(97%)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도 방범·안전점검 28.6%, 택배관리 20.2%, 주변 청소 19.3%, 주차관리 16.3%, 분리수거 16.2%, 기타 15.5% 등으로 다양한 부분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중요도 인식 비중으로 보면 방범안전점검이 38.6%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택배관리 18.7%, 주변 청소 18.5%, 주차관리 15.5%, 분리수거 15.2% 순이었다.
#. "또 경비업무 외에도 뭐 전지작업(가지치기)을 시킨다든가. 청소야 인자 우리가 의무적으로 해 주는데, 택배도 원래는 경비 업무에 포함이 안 되는 건데 우리가 서비스로 해주는 건데. 또, 경비 애낄라고(아끼려고) 아파트에서 또 다른 일을, 사람 사서 해야 되는데 우리를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자주는 없는데 간혹 한 번씩. 그런 것 때문에 인제 트라블이 생기는 거야. 원래는 그거 안 해줘도 되는 거잖아. 하라고 강요는 몬하는(못하는) 거잖아." (경비 A)
#. "저어 가서 청소하다보면 전화캉 오면 또 저쪽 가야죠. 택배 내 줘야죠. 좀만 기다리라도 해야지. 한 5분만 기다리라고 그러면, 그거 내주고 싸인 받고. 밤에도 계속 (일을) 했지요." (경비 B)
#. "택배도 그러니까는, 잠자면 6시까지 아침 6시까지, 오늘 저녁 11시부터 휴식시간을 주는데, 어디 잘 데가 없으니까는 의자 피 놓고 잔다, 경비실에 가. 그럼 택배는 막 쌓아져 있지, 좁기는 좁지. 자다가도 3시, 2시 반 되면 문 두들기고 택배 찾으러 왔다고." (경비 C)
#. "우리요 쉬는 시간 없어요. 쉬면은 어디 가서 쉴 겁니까? 쉬어서도 안 되고. 계속 여 앉아있는 시간 별로 없어요. 인자 지금 가랑잎 덜 떨어졌지만 지금 한참 쓸고 들어온 거예요. 만날 깨끗이 해줘야죠. 앉아있을 시간이 없어요. 잠깐 와서 물이 한잔 먹고 그러면 또 쫘악 쓸다 보면 또 택배 인자 순찰 중에 해놨잖아요, 밖에." (경비 D)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지방자치단체와 아파트의 관리조직은 주민에게 인권 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아파트 노동자의 근무 조건을 명확히 하고, 업무 범주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한 경비원이 경비 근무를 하고 있다. /더팩트DB |
위 사례는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에 응한 경비원들의 말이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경비원의 업무 범주는 방범 업무를 중심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업무 외 범주의 일을 서비스 차원에서 관례로 수행했다. 보고에 따르면 업무 외 분야의 작업이 부과되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처우 문제가 부상하거나 입주민·관리사무소와 노동자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센터는 자료에서 "현장에서는 택배관리와 분리수거·청소가 주된 업무로 배정됨으로써, 경비원 1인이 감내해야 할 노동 강도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정해진 휴식시간을 준수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면서 "특히 택배관리는 상시 수행 업무로써, 경비노동자의 휴식을 방해하고 업무 과중을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언급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아파트 노동자의 고충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다수의 입주민 입장에서는 비가시적인 사안에 불과하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아파트의 관리조직은 주민에게 인권 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아파트 노동자의 근무 조건을 명확히 하고, 업무 범주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개별 아파트에서는 아파트 주민과 아파트 노동자 간의 소통 창구를 개설하고, 아파트 내부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