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나는 한국의 '택배 기사'입니다!
입력: 2015.09.26 05:00 / 수정: 2015.09.26 07:59

종일 쏟아지는 택배를 배송하느라 매일 밤낮을 달리는 택배 기사. 특히 추석시즌 그들의 고충은 보름달보다 더 커집니다. <더팩트>는 26일 택배 기사들의 고충을 직접 들었습니다. <더팩트>는 택배 기사를 1인칭 화자로 설정해 그들의 고충을 이야기해 봤습니다.-편집자 주

오늘도 12km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상자 200개를 옮겼습니다. 땀이 뻘뻘 나네요.

사람들은 나를 보면 방긋 웃습니다. '반가운 손님'인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가족보다 내가 더 반갑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물론 기분이 좋죠.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택배 아저씨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네요.

"택배 왔습니다"

추석을 앞둔 요즘 너무나 바쁩니다. 방금도 택배 하나를 배송하고 오는 길입니다. 정말 빠르죠? 제가 빠르면 빠를수록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추석 시즌이라고 바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늘 바쁩니다. 내가 전달하는 건 상자만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입니다. 하지만 저를 의심하거나 심부름꾼 정도로 취급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정말 회의감이 듭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나는 달립니다.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슈퍼맨이냐고요? 당연히 아니죠. 지쳐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16억2325만 개의 택배가 배송됐습니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1인당 연간 61.8회꼴로 택배를 이용하는 거지요. 하루 100상자는 기본, 바쁘면 200, 300….

인기비결을 알고 싶다면 소비자들의 구매 경향을 살펴보면 됩니다. 사람들은 소량의 생필품을 사려고 마트나 백화점에 가느니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구매하는 방법을 좋아합니다. 가끔 스마트폰이 미울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무리한 부탁은 하지 말아주세요. 하루 동안 찾아뵐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화장실에 휴지 좀 달라", "친구 집에 있으니 친구 집으로 오라", "개밥 좀 챙겨달라" 등의 요구는 저로서 무리입니다.

사실 이런 요구는 애교입니다. 다짜고짜 멱살을 잡힐 때도 있는 걸요. 욕설을 들으면 기분이 몹시 나쁩니다. 받은 물건에 대한 불만은 고스란히 나의 몫입니다. 특히 문 앞에 두고 간 택배가 없어졌다는 전화라도 받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꼼짝없이 물건값을 물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이것저것 떼이고 통신비에 기름값, 보상까지 더하면 정말 남는 게 없습니다.

'욱'할 땐 없느냐고요? 사람인데 왜 없겠습니까. 일하다 보면 답답한 순간, 화가 나는 상황, 황당한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항의 전화라도 받으면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 타격인 거죠.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불합리한 상황도 견뎌대는 게 바로 나, 택배 기사입니다.

말하다 보니 서글펐던 순간이 정말 많았네요. 아파트 단지 내 차량 진입을 금지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는 수레에 행여나 짐이 쏟아질까 노심초사했어요. 아파트에 진입했다가 주민 통행에 불편을 주기라도 한다면 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바이러스 전파자'로 불렸던 건 아시나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일입니다. 당시 외출을 꺼렸던 사람들이 온라인 주문을 통해 물건을 사들였고, 나는 열심히 일했죠.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물량이 갑자기 늘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대가는 차가운 반응이었습니다. "문 앞에 그냥 두고 가라"며 나를 꺼렸습니다. "벨을 누르지 말라"는 핀잔도 있었습니다. "택배 상자를 소독해라"는 황당한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말할수록 더 힘이 빠집니다. 최근 택배 기사를 사칭한 범죄도 늘어나 좀도둑, 성범죄자 취급까지 받아야 한다니 기가 막히죠. 어찌 그게 내 잘못인가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따가운 눈초리와 냉대를 받을 때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입니다. 가시방석이란 말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눈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럼 10층을 걸어 올라가야 할까요.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입니다.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목청 한번 높여봤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매주 여러분을 만나야 하니까 스스로 힘을 내야겠지요. 특히 바쁜 추석 시즌입니다. 나는 한바탕 전쟁에서 살아남을 겁니다. 감정과 육체, 모두 시들하지만 그래도 힘을 낼 거란 말입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달렸습니다. 허기진 오전, 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바쁜 오후는 땀으로 온통 젖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께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저 내가 흘린 땀, 보이진 않는 이 땀이 여러분의 택배 상자에 서려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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