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원폭피해자' 한차수 할머니, "어미로서 난 죄인…"
입력: 2015.09.11 05:00 / 수정: 2015.09.11 00:14
지원 한 푼 못 받았다 원폭 피해자 한차수(87) 할머니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더팩트와 만나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신진환 기자
"지원 한 푼 못 받았다" '원폭 피해자' 한차수(87) 할머니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더팩트'와 만나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신진환 기자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3일 후엔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 천황은 8월 10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 천황은 5일 뒤 항복을 선언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은행 앞에는 70년 전 원폭 피해를 당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원폭 피해자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더팩트>는 이날 집회에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한차수(87) 할머니를 만났다. 한 할머니는 지쳐있었다. 할머니는 자신들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가 미웠다.

할머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그날의 악몽'을 똑똑히 기억했다. 당시 할머니의 나이 17살. 취재진은 한 할머니에게서 1945년 8월 10일 악몽 같았던 그날의 기억과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할머니를 만난 이날은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제3부가 재외 원폭 피해자에게도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한 날이었다.

◆ "그날, 다시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원폭 그리고 세월의 흔적 방사선 피폭과 고된 노동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휜 한 할머니의 손가락./여의도=신진환 기자
'원폭 그리고 세월의 흔적' 방사선 피폭과 고된 노동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휜 한 할머니의 손가락./여의도=신진환 기자

한 할머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다시 떠올려도 너무나 끔찍했던 그날이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굉음에 천지가 요동쳤어. 집이 흔들렸고 밖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았지. 다시 전쟁(태평양전쟁)이 난 줄 알았다니까. 어머니는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을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어. 죽은 줄 알았지. 아버지와 큰 오빠는 화상을 입었고, 당시 임신했던 큰 올케는 결국 유산했어. 정말 끔찍했던 기억이야."

할머니에 따르면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날의 히로시마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원폭 투하로 마을에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할머니는 특히 피부가 녹아내린 끔찍한 모습의 환자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17세 소녀의 눈에 보인 끔찍한 현장은 뇌리에 각인됐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치료를 받지 못한 가족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역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할머니의 손은 방사선 피폭과 고된 노동으로 기형적으로 변했다. 할머니의 손에는 세월의 흔적과 그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다.

“아버지는 방사성 물질에 피폭돼 후유증에 시달리다 돌아가셨고, 큰 오빠는 간암, 작은 오빠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숨)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아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못 받았어. 그래서 (세상을) 떠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나 역시 간 질환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졌지. 병원을 수없이 다녀도 차도가 없더라고. 젊었을 때부터 약을 달고 살고 있지."

◆ "왜 그렇게 매정하고 엄격한지 모르겠어"

자식들만 생각하면 여기가 아파… 슬하에 2남 2녀를 둔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이들에게 어미로서 큰 죄를 지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여의도=신진환 기자
"자식들만 생각하면 여기가 아파…" 슬하에 2남 2녀를 둔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이들에게 어미로서 큰 죄를 지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여의도=신진환 기자

할머니에게 있어 원폭으로 인한 고통은 가족을 잃은 것보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고 아프다. 어렸을 적부터 병약했던 자식들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단다.

"결혼해서 2남 2녀를 얻었는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약했어. 잔병치레도 많았고…. 약을 먹여도 잘 듣지 않데. 모두 내 탓이고 어미로서 큰 죄를 지었어."

할머니는 질병으로 고통받아온 삶을 국가가 보듬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국회는 나름대로 원폭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지난 17대와 18대 국회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 등 여야 의원 4명이 다시 법안을 상정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지쳐있던 한 할머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17살 그날의 소녀처럼 수줍었다.

"우리나라(정부)는 국민에게 왜 그렇게 매정하고 엄격한지 모르겠어. 정말 힘들게 살아온 원폭 피해자들과 그 자식들에게 지금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어." (웃음)

[더팩트ㅣ여의도=신진환 기자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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