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커스] '진료실 성범죄' 논란, 답답한 평행선
입력: 2015.09.01 05:00 / 수정: 2015.09.03 10:08

진료? 성추행? 지난 12일 진료 과정에서 한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정 모(16) 양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진료를 빙자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의사를 제대로 처벌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성락 기자
'진료? 성추행?' 지난 12일 진료 과정에서 한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정 모(16) 양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진료를 빙자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의사를 제대로 처벌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성락 기자

신체접촉 진료, 환자는 '불쾌' 의사는 '눈치'

#. 2013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정 양은 7차례에 걸친 한의사의 성추행에도 단지 진료 과정인 줄로 알고 있었다. 한의사가 "이것도 진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의사는 정 양의 바지를 직접 벗기고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정 양의 부모는 진료가 아닌 성추행이라며 한의사를 고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의사의 진료 과정을 '의료행위'로 봤다.

정 양의 사연이 알려지며 진료실 성범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환자단체는 ‘진료’를 빙자한 일부 의료인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일부 의료인의 문제를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인다.

법률 제정을 놓고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팩트>는 지난달 25일과 26일 이틀간 '진료실 성범죄' 예방을 위한 법률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환자단체와 의료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 실제 환자와 의사가 진료실에서 느끼는 불편감도 함께 취재했다.

◆ 진료실 신체접촉 의사도 환자도 '불편'

불쾌 경험 많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여성 1000명(19~59세) 중 118명(11.8%)이 진료 시 성적 불쾌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료인에게 즉시 이의를 제기하거나 병원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는 등 조치를 요구한 건 단 26명, 22%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진료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가 46.9%로 가장 많았다. /안지민 인턴기자
'불쾌 경험 많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여성 1000명(19~59세) 중 118명(11.8%)이 '진료 시 성적 불쾌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료인에게 즉시 이의를 제기하거나 병원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는 등 조치를 요구한 건 단 26명, 22%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진료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가 46.9%로 가장 많았다. /안지민 인턴기자

진료실에서의 신체접촉은 의사와 환자 모두 무언의 불편함과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는 환자의 의심 눈초리 때문에 힘들어했고, 환자는 신체를 접촉하는 의사의 손길에 의심을 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양 H 한의원 원장은 여성 환자의 경우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실제로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이 상당하다"며 "문제가 됐던 '수기 치료'의 경우 엉덩이와 골반 등에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치료방법인 만큼 눈치 아닌 눈치를 보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단 대한한의사협회는 신체 접촉이 많은 '수기 치료'의 경우 간호사나 보호자 등 제3자를 진료 시 동석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안양에서 만난 최 모(24·여) 씨는 "진료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일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분이 언짢은 상황이 때때로 있었다"라며 "특히 브래지어를 건드리면 온몸이 경직된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진료 중 불쾌감을 느껴도 환자가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진료'는 신체접촉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또 환자가 성추행인지 여부를 짧은 순간에 판가름하기도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차도 존재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연)는 진료실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 입법을 준비 중이다.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은 의료인이 성추행 우려가 있는 신체부위를 진료할 때에는 환자에게 진료할 신체부위, 진료이유, 원하지 않으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미리 말하거나 간호사, 보호자 등 해당 의료인 이외의 자를 동석시키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의료계, 진료실 성범죄는 ‘윤리적’ 문제

강력한 처벌 필요 취재진과 만난 의료 관계자들은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에 대해 말하기가 좀 그렇다며 피했다. 그러면서도 더는 진료과정에서 성범죄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성락 기자
"강력한 처벌 필요" 취재진과 만난 의료 관계자들은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에 대해 "말하기가 좀 그렇다"며 피했다. 그러면서도 "더는 진료과정에서 성범죄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성락 기자

입법 준비가 알려지자 의료계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의료계는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이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의사들을 방어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안 마련과 관련해 한 의료인은 "세계 어디에서도 의사와 환자의 신체접촉을 놓고 법제화시킨 나라는 없다"고 불쾌해 했다.

취재진과 만난 의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에 대해 "말하기가 좀 그렇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더는 진료과정에서 성범죄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며 "해당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서 단호하고 강력한 처벌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의사총연합회(전의총)는 '진료실 성범죄'를 윤리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전의총 관계자는 "성추행은 윤리적인 문제다. 이미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면 자격을 정지하는 등 보조적인 장치들이 있는데, 법으로까지 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 100% 과잉 입법이다"라고 말했다.

안기종 환연 대표는 의료계의 '실효성' 지적과 관련해 "효과가 있다.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이 국회를 통과되면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의료인이 미성년자를 진료하기 위해 성기, 유방, 항문 등 보건복지부령에서 정한 신체부위를 접촉하는 경우 해당 의료인 이외의 자를 동석시켜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법하게 되고 과태료 부과라는 행정처분도 받게 된다"며 "만일 피해자가 성추행으로 의료인을 형사고소하면 정 양 사건과는 달리 진료빙자 성추행이 진료행위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의해 형사처벌도 받고 10년 동안 취업 등의 제한도 받게 된다. 효과가 없을 수 없다. 법이 있으면 논쟁을 줄이고 결국 성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의총은 법이 제정되면 오히려 환자들이 비용 등 여러 측면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의총 관계자는 "진찰은 크게 시진, 청진, 촉진, 타진이 있다. 시진을 빼고 세 가지는 신체접촉이 있다. 이런 기본적인 진찰을 하지 않고 치료를 했다는 것은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기본 진찰을 의사들이 꺼리게 해선 안 된다. 의사들이 피하면 결국 다른 방법으로 대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대체할 수 있는 것이 피검사나 CT(컴퓨터단층촬영), 초음파 등이다. 결국, 환자들이 고가의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진료실 성범죄, '샤프롱' 제도로 가능

방법엔 문제 있어 의료계에서는 성범죄를 윤리적 문제로 짚으며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에 대해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팩트DB
"방법엔 문제 있어" 의료계에서는 성범죄를 '윤리적 문제'로 짚으며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에 대해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팩트DB

의료윤리연구회 의견도 전의총과 비슷했다. 연구회 관계자는 "환자들이 오죽하면 법을 만들겠다고 직접 나서겠느냐"라며 환자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이건 윤리적인 문제지 법 제정을 해서는 안 된다.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만들어서 의사나 간호사에게 교육해야 될 부분이다. 그리고 의사 단체에서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특히 의사단체와 환자단체들이 대립각을 세울 것을 염려했다. 그는 "함께 좋은 제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법으로는 실효성이 없고,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진료실 성범죄를 막을 대안으로 '샤프롱' 제도를 제시했다.

이 전 회장은 "'샤프롱' 제도가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샤프롱'은 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여성이나 미성년 환자, 정신지체 환자 등을 진료할 때, 가족·보호자·간호사 등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해 환자를 안심시키고 진료 중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 등의 행위를 방지하자는 제도다. 현재 미국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진료실 성범죄 예방 문제를 의료인들과 함께 풀어나가고 싶다"면서도 법안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적어도 응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미성년자의 성적 민감 부위 진료를 위해 접촉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꼭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추행이 아닌데, 이른바 '꽃뱀'에게 시달리는 의사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법이 제정되면 이런 문제도 없어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을 느끼고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면서 "대다수의 선량한 의료인을 위해서라도 극히 일부이지만 진료를 빙자해 환자를 성추행하는 나쁜 의료인을 벌하는 법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법안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진료빙자성추행방지법'을 놓고 환자단체와 의료계가 각자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한별의 전세준 변호사는 "물론 정착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사전에 진료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절차적인 제도가 있으면 성범죄 문제로부터 아무래도 안심될 것"이라면서도 "잘못하면 의사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매도하는 그런 취지로 비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긴급한 환자의 경우에는 예외 조항을 넣어야 하는데, 어떤 상황이 긴급한 상황이냐는 판례도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며 "실효성은 인정되지만, 일부의 국한된 문제를 의료계 전반에 적용하면 반발이 당연하다.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러나저러나 논란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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