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염리동 '소금길', 그림 만으로 범죄율 '뚝'
입력: 2015.08.21 05:00 / 수정: 2015.08.20 22:34

그림 보면 기분이 좋아 17일 <더팩트>는 지난 2012년 10월 범죄 예방 프로젝트가 진행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을 찾았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그림 보면 기분이 좋아" 17일 <더팩트>는 지난 2012년 10월 범죄 예방 프로젝트가 진행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을 찾았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범죄 비켜' 소금길 주민의 이유 있는 미소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에 띈다. 모퉁이마다 이정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지런히 붙어있다. 좁은 골목은 노란빛으로 물들어 그 풍경 또한 다채롭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이 아니다. <더팩트>가 지난 17일 찾은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인근. 이른바 '소금길'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지난 2012년 10월 범죄 예방 프로젝트의 하나로 벽화가 그려지는 등 디자인을 통해 '우범지역'이 아닌 '살기 좋은 마을'로 변화를 꾀했던 곳이다.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이날 만난 염리동 주민들은 소금길 사업에 대해 "잘했다"며 무릎을 쳤다. 최근 범죄예방환경설계(셉테드)로 범죄율을 낮추고자 하는 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취재진은 '셉테드' 사업 활성화의 시발점이 된 소금길, 그곳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 색의 마법? 벽화 그려지니 주민 환경 만족도 'UP'

만족 이날 만난 염리동 주민들은 환경 개선으로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소금길 사업에 대해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만족' 이날 만난 염리동 주민들은 환경 개선으로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소금길 사업에 대해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아무래도 마을이 많이 밝아졌다."

손녀와 함께 산책을 나온 박용화(65) 할아버지는 방긋 웃는다. 그는 벽에 그림이 그려지는 등 마을 전체가 밝은 분위기로 개선된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아진다"며 웃었다.

박 할아버지는 "밤이 되면 엄청나게 깜깜해지는 동네다. 딸이 저녁 늦게 퇴근해서 불안한데, 밝아진 마을 분위기 탓에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낮아진 편"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 만난 주민 대부분은 "3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박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금길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정 모(70대) 할머니는 "마을이 온통 노란색으로 꾸며지니 일단 보기가 좋다"며 "집이 낡아 동네가 칙칙했는데, 잘했다"고 했으며, 주민 김 모(42·여) 씨도 "그림이 그려지니, 주변 환경이 깨끗해지더라. 쓰레기 무단 투기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좁고 가파른 소금길 과거 소금길이 있는 염리동은 골목이 좁고 어두워 밤이 되면 주민들이 집 밖에 나오길 꺼릴 정도로 우범지역이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좁고 가파른 소금길 과거 소금길이 있는 염리동은 골목이 좁고 어두워 밤이 되면 주민들이 집 밖에 나오길 꺼릴 정도로 '우범지역'이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과거 소금길이 있는 염리동은 골목이 좁고 어두워 밤이 되면 주민들이 집 밖에 나오길 꺼릴 정도로 '우범지역'이었다. 염리동은 경찰청이 지정한 161개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 중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곳으로 꼽혔다. 어두운 조명, 낮은 담벼락, 계속된 도시 개발 지연으로 '슬럼화'되는 거리, 그리고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까지, 이 모든 것이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를 기회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작은 시도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조경은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동시에 응집력을 키웠다. 또 환경 개선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무섭고 불안한 좁은 골목을 걷고 싶은 산책로로 변하게 했다. 주민들이 범죄를 단속하는 '공공의 눈'이 되는 동시에 소금길은 범죄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형형색색 벽화 등으로 꾸며진 소금길. /염리동=이성락 기자
'형형색색' 벽화 등으로 꾸며진 '소금길'. /염리동=이성락 기자

"산책 한 번 하지."

오후 4시, 정 할머니를 따라 소금길(1.7km)을 걸었다. 다양한 벽화 사이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지킴이 집'이다. 소금길에는 총 여섯 곳의 '지킴이 집'이 있다. 이곳에는 24시간 작동되는 폐쇄회로(CC)TV와 위험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방문객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에 벽화가 그려지는 등 주변 환경이 개선된 뒤 소금길은 서울의 이색 골목길이자 데이트 장소로 손꼽히게 됐다.

친구와 함께 소금길을 찾은 강민정(17) 양은 "아름다운 동네라는 소문을 듣고 찾았다"며 "'소금길' 등과 같이 이색적인 골목길을 찾아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하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다"라고 말했다.

◆ 주민 환경 개선 '셉테드', 효과 있을까?

소문 듣고 왔어요 환경이 개선되자 소금길은 서울의 이색적인 골목길이자 데이트 장소로 탈바꿈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소문 듣고 왔어요" 환경이 개선되자 소금길은 서울의 이색적인 골목길이자 데이트 장소로 탈바꿈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이날 만난 소금길 주민들과 방문객들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까'라는 물음에 동그라미를 쳤다. '어떤 식의 효과가 있을 것인가'라는 되물음에는 한참 고민을 하는 등 시원한 대답을 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예전보단 훨씬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2013년 3월 염리동 주민 2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금길 사업 시행 5개월 후 주민 범죄 두려움이 13.6% 감소했고 범죄 예방 효과는 78.6%, 주민의 만족도는 83.3% 증가했다.

주민들의 말처럼 '셉테드'의 범죄 예방 효과를 입증할 만한 소식은 전국 곳곳에서 들린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2월 범죄에 취약한 지역 16곳을 선정해 '셉테드 행복마을 사업'을 진행한 결과, 해당 지역의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추행·절도·폭력) 발생은 2013년 97건에서 지난해 33건으로 65.9%나 줄었다. 부산 양정동 '양지골' 마을의 경우 2011년 이후 3년간 52건의 절도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좀도둑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셉테드' 사업 시행 이후 지난해부터 단 한 건의 절도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움 요청하세요 소금길에는 총 여섯 곳의 지킴이 집이 있다. 지킴이 집에는 24시간 작동되는 폐쇄회로(CC)TV와 위험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도움 요청하세요' 소금길에는 총 여섯 곳의 '지킴이 집'이 있다. '지킴이 집'에는 24시간 작동되는 폐쇄회로(CC)TV와 위험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염리동=이성락 기자

해외의 성공 사례도 있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 우범지역인 연립주택단지 클래슨포인트가든은 어두운 보행로와 공원 등을 정비한 후 인구 1000명당 강력범죄가 매달 6.91건에서 3.61건으로 감소했다. 또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한 아파트에는 단지 내 가로지르는 도로 탓에 강도사건이 잦았지만, 도로 폭을 줄이고 환경정비를 한 결과, 1975년 183건의 강도사건이 발생한 것에서 이듬해 120건으로 줄었다.

'셉테드'의 범죄 예방 효과는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주장한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종종 설명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 그 지역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질서와 범죄의 전염성을 경고한 이론이다. 그만큼 주변 환경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범죄의 기회가 제공되는 좋지 않은 환경을 개선한다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소금길 산책 어때? 색으로 물든 소금길. /염리동=이성락 기자
'소금길 산책 어때?' 색으로 물든 소금길. /염리동=이성락 기자

순찰 강화 등 전통적인 범죄 예방 활동만으로는 범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만큼 '셉테드' 도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적 활동으로 범죄 피해자를 발생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셉테드' 사업으로 주변 환경이 개선된 마을은 주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주민 스스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감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범죄자들이 이런 마을을 범행 장소로 택하는건 어렵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직·간접적으로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 '셉테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 6월 5일 전국 11개 지역을 올해 '셉테드' 지역으로 확대 지정했다고 밝혔다. '셉테드' 실시 예정지로 선정된 지역은 서울 동작구와 성동구, 경기 수원·안산·부천·평택·파주·양주, 경남 창녕, 경북 포항, 전북 남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셉테드'를 통해 범죄 안전체감도가 2013년 56.59%에서 지난해 73.16%로 증가했고, 따라서 '셉테드'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각종 범죄 예방 환경개선사업 수행을 위한 매뉴얼 및 교육 자료로 활용되도록 할 예정이다.

[더팩트ㅣ염리동=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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