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이 기자님, 저 보이소. 비키니 찍는다 아입니까"
입력: 2015.08.05 05:00 / 수정: 2015.08.05 10:22

해수욕장 범죄 꼼짝마 부산 해운대 여름경찰서는 피서철을 맞아 24시간 비상근무에 나서고 있다. /해운대=신진환 기자
'해수욕장 범죄 꼼짝마' 부산 해운대 '여름경찰서'는 피서철을 맞아 24시간 비상근무에 나서고 있다. /해운대=신진환 기자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여름 휴가철 바캉스족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휴가철이면 하루 수십만 명이 찾는 곳이다 보니 그만큼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더팩트>는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된 지난달 31일부터 1일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이 기자님, 저 보소. 카메라 앵글이 비키니 입은 여성에 있다 아입니까."

성수기를 맞아 40만 명의 인파가 몰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매의 눈'으로 한 곳을 주시하는 한 경찰관. 그는 조금 거리를 두고 한 남성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이 느껴진다. 5분 남짓 지났을까. 남성 쪽으로 다가간다.

경찰을 따라 걷다 '옳지! 걸렸어!' 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가 발생하면 안 되지만, 뭐라도 하나 건질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경찰은 이 남자를 지나친다. 일순간 기대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해운대는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사람이 워낙 많아 오해도 많지예. '몰카'를 찍으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꼬 카메라를 숨기거나 사진을 지우는 행동합니더. 방금 남성은 우리(경찰)를 보고도 계속 찍는다 아입니까. 그라이까네 '몰카범'이 아니지예."

와글와글 지난 1일,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수많은 피서객이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았다. /해운대=이성락 기자
'와글와글' 지난 1일,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수많은 피서객이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았다. /해운대=이성락 기자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 몰리는 만큼 범죄가 발생한다. 이러한 해운대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이 '여름 경찰서'다. 소속 경찰관들은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를 소탕하는 일뿐만 아니라 피서객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해결사' 임무를 수행한다. <더팩트>는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여름 경찰서' 소속 경찰관과 동행해 해운대 해수욕장 순찰에 나섰다.

오후 2시. 순찰에 앞서 경찰관들이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르고 있다. 그런데도 검게 그을린 모습은 그간의 활동을 보여주는 듯하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2열 종대로 나란히 문을 나선다.

"가입시데이."

성범죄·절도 예방 낮 순찰은 절도 범죄와 성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춰 이뤄지고 있다. /해운대=신진환 기자
'성범죄·절도 예방' 낮 순찰은 절도 범죄와 성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춰 이뤄지고 있다. /해운대=신진환 기자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따갑다. 순찰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윗도리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는다. 한 경찰관이 뒤를 힐끗 쳐다보며 '얼른 따라오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평소 체력엔 자신 있었지만, 밟으면 푹푹 꺼지는 백사장을 빠르게 걷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쩔쩔매는 취재진에게 한 경찰관은 "저기 좀 보시지예"라며 한 곳을 가리킨다.

그는 "사실 낮에는예. '몰카범'보다 '절도범'을 더 조심해야 됩니더. 다른 사람 파라솔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봐보이소"라면서 "현행범을 잡기란 쉽지 않습니더. '쓰레기인 줄 알고 들고 갔다'카면서 발뺌하면 범죄를 증명하기 어렵지예. 일단 범죄 자체가 벌어지지 않게 할라꼬 순찰을 열심히 하는 상황입니더"라고 설명한다.

'여름 경찰서'는 지난 6월 27일부터 이날까지 절도범을 1명 붙잡았다. 하지만 하루 동안 수많은 '절도' 관련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여름 경찰서는 범죄를 예방하는 목적으로 순찰을 집중해서 돈다.

오후 2시 30분께. 선크림이 뒤섞인 땀을 닦으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40대 여성 피서객이 얼굴을 구긴 채 다가온다. 그는 "우리 아이가 해파리에 쏘였는데, 이걸 경찰이 다 잡아 버리든지 해야지"라며 노발대발한다.

같이 노실래요? 오전 2시께, 이른바 헌팅을 시도하기 위해 해운대 밤거리를 거니는 남성(오른쪽). /해운대=이성락 기자
"같이 노실래요?" 오전 2시께, 이른바 '헌팅'을 시도하기 위해 해운대 밤거리를 거니는 남성(오른쪽). /해운대=이성락 기자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듯 피서객은 "사람이 해파리에 쏘였다는데, 구급 대원은 '병원에 가세요'라고 말하고 돈 주고 놀러 와서 이래서 되겠나. 똑바로 해야지 원"이라며 경찰관을 쏘아붙인다.

경찰관은 진땀을 흘린다. 이 난처한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자 역시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당장 방도가 없는 이런 상황에선 연일 "진정하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일단 진정하시고예. 빠르게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더. 일단 먼저 관리사무소 3층으로 가서 치료를 좀 받지예."

이렇듯 순찰 시간 대부분은 피서객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 소요된다. 낮에는 미아 발생도 많아 우는 아이를 달래고 관리 안내소로 데려다주는 일 또한 주 업무다.

전 모 경사는 "성내는 피서객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가 됩니더. 그 성(화)을 풀어주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예. 그래도 낮 순찰은 밤 근 순찰에 비해 훨씬 편한 편입니더"라고 귀띔한다.

바쁘다 바빠 야간 순찰 중인 해운대 여름경찰관. /해운대=신진환 기자
'바쁘다 바빠' 야간 순찰 중인 해운대 여름경찰관. /해운대=신진환 기자

다음 날 오전 2시. 야간 순찰을 나서니 낮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해운대 해수욕장에 쏟아져 나와 있다. 해운대의 밤은 '무질서'가 만연하기로 유명한 터라 경찰관의 눈초리는 더욱 매섭다.

소문대로 해운대의 밤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순찰이 시작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곳곳에 흡연하는 사람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눈에 띈다.

피서객의 고성방가는 흔하다. 백사장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도 드문드문 보인다. '무질서'가 용인된 듯 경찰이 지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김 모 의경은 "상황이 이렇지예. 담배 피지 말고 불꽃놀이 하지 말라고 암만 방송해도 소용없습니더"라고 하소연한다.

정 모 경장은 "폭죽을 공중으로 안 쏘고 정면을 향해 쏘는 경우가 더러 있으예. 그라모 사람이 다친다아입니까. 폭죽을 쏘다 단속에 걸리면 범칙금 3만 원인데예.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난감할 때가 많습니더"라고 토로한다.

무질서한 해운대 곳곳을 순찰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3시를 훌쩍 넘긴다. 찜통더위로 몸은 달아올랐고, 갈증은 심했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음료수를 찾기 바쁘다. 음료수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어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백사장에서 씨름 한판이라도 한 듯 지친 기색이 역력한 취재진과 달리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져 있다. 그저 할 일을 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다음 업무를 준비했다. "힘들진 않으냐"는 질문에 경찰관들은 딱히 힘든 것도 없고, 바라는 점도 없다고 말한다.

"힘든 거 뭐 딱히 있겠습니까. 그저 (피서객이) 놀다가 무사히 귀가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지예. 뭐 굳이 있다면 '질서가 좀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정도입니더. 우리가 더 잘하면 되겠지예."

[더팩트ㅣ부산=신진환·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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