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갈등 2년·개장 한 달' 용산 화상경마장…지금은?
입력: 2015.07.12 05:00 / 수정: 2015.07.11 23:15

개장 한 달, 갈등의 변화 있나? 지난 2년 동안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 개장을 둘러싼 한국마사회와 용산구 지역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마사회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장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최근 마사회 측이 저가 입장권과 경품을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개장 한 달, 갈등의 변화 있나? 지난 2년 동안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 개장을 둘러싼 한국마사회와 용산구 지역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마사회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장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최근 마사회 측이 저가 입장권과 경품을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용산 화상경마장, 시간 지날수록 갈등 심화

"학교 앞 도박경마장 물러가라." "우리 아이들을 지켜달라."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용산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 입구에는 불볕더위에도 '엄마·아빠'들의 외침이 있었다. 이들은 연신 "도박장을 폐쇄하라"고 외치며 방울땀을 흘렸다. 주민 몇몇은 "학교 바로 앞에 도박장을 개장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2년. 한국마사회와 서울 용산구 지역주민들이 용산 화상경마장개장을 놓고 '갈등'을 빚은 시간이다. 그동안 지역주민들은 '학교 주변 도박장 개장 금지'라는 메시지를 들고 적극적인 반대 시위를 벌였다. 마사회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개장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이 갈등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31일 마사회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장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갈등은 깊어졌고 상황이 변했다. '개장'과 '개장 불가'로 맞섰던 대립의 초점은 '폐쇄 불가'와 '폐쇄'로 바뀌었다. 개장 이후 마사회 측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저가 입장권과 경품을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주민들의 반발심이 치솟고 있다.

◆ 용산 주민 "도박 경마장, 가지 마세요"

마권장외발매소 반대 지난 5일 오전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와 지역주민들은 용산 마권장외발매소 개장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마권장외발매소 반대' 지난 5일 오전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와 지역주민들은 용산 마권장외발매소 개장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이날은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대책위)가 천막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529일째 되는 날이었다. 마사회가 용산에 마권장외발매소를 개장한 지 36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대책위와 주민들은 이른 오전부터 반대 시위를 펼쳤다.

"학교 근처에 도박장을 세우면 도대체 어쩌란 건지…."

원성이 자자했다. 주민들은 마권장외발매소를 찾은 손님들을 향해 "가지 마세요"라며 호소했다. 발매소 주변 길거리 곳곳에는 '학교 앞 주택가에 도박장! 이게 정상이야?', '학교 앞은 아빠, 엄마가 지킨다' 등 발매소 개장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주민들은 경마장 개장으로 인한 교육 환경 훼손을 가장 우려했다. 대형 도박장이 학교 주변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다.

답답한 마음에 주민 한 명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기 지붕 보이죠? 저게 바로 학교 지붕이야. 학교."

실제로 마권장외발매소와 인근 학교와의 거리는 가까웠다. 발매소에서 가장 가까운 성심여자중·고등학교를 직접 걸어봤다. 도보로 7분, 2개의 건널목에서 소요되는 교통 신호 시간 오차를 염두에 두더라도 10분 내외였다.

가깝지만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마사회에 따르면 마권장외발매소는 성심여자중·고등학교에 230m 이상 떨어져 있다. 마권장외발매소는 반경 200m 내에 유해시설의 설립을 금지하는 학교보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대책위 관계자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오락실도 아니고, 이런 큰 도박장에 200m 기준을 적용하다니 말이 안 된다"며 "10분 거리다. 많은 학생이 도박장 앞을 지나다니니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심여자고등학교 김율옥 교장 역시 "학교 앞 경마장을 개장했다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라고 밝혔다.

10분 거리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에서 성심여자중·고등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내외였다. /성심여자중·고등학교=이성락 기자
10분 거리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에서 성심여자중·고등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내외였다. /성심여자중·고등학교=이성락 기자

주민들은 '교육 환경 훼손'만 걱정하는 게 아니다. 인근 주민들의 생활 환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장은 "원래 없던 노숙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리에 대출 전단이 뿌려지는 등 주거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며 "돈을 잃고 나오는 사람들에 의한 범죄도 염려되는 부분이다.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개장 이후 경마장 안으로 인근 주민들이 출입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주택가 주변에 경마장이 생김으로써 인근 주민들이 '한탕주의'에 물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사회는 주민들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건물 지상 18층 중 8개 층을 활용해 주민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마권장외발매소 5개 층을 노숙자 등의 출입을 막기 위해 '고급 시설'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마사회는 고가 입장료를 받아 상습도박자들의 접근을 막고 유해시설 이미지에서 탈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마사회가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2만 원이었던 가격을 2000원으로 낮추고 사은품을 뿌려 사행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장은 "돈을 낮춰 다른 상습도박자들을 이곳(용산 마권장외발매소)으로 끌어모으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불신 커진 용산 주민…마사회 "내부 조사 중, 조금 더 기다려달라"

2000원 입장권 판매? 마사회는 고가 입장료를 받아 상습도박자들의 접근을 막고 유해시설 이미지에서 탈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2000원 입장권을 판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제공·이성락 기자
2000원 입장권 판매? 마사회는 고가 입장료를 받아 상습도박자들의 접근을 막고 유해시설 이미지에서 탈피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2000원 입장권을 판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제공·이성락 기자

주민들이 주장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불이행 사실 확인을 위해 마권장외발매소 내부를 찾았다. 의혹이 짙었던 2000원 입장권은 없었다.

마사회 직원의 안내에 따라 건물 15층으로 이동해봤다. 해당 건물은 지상 18층, 지하 7층 총 25층 규모로 지어졌지만, 발매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13~17층까지였다. 13~15층까지는 '로열' 좌석으로 2만 원의 입장료를 받았으며, 16~17층은 '페가수스' 좌석으로 불리며 3만 원으로 입장료를 받았다. 통틀어 574좌석이 설치돼 있었다.

"올X위드미(말과 기수를 이르는 명칭 중 하나)가 1위입니다."

발매소 내부로 들어서자 경마 해설이 흘러나왔다. 그 해설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 또한 엇갈렸다. 곳곳에서 "그렇지"라는 환호의 목소리와 "어휴"라는 한숨 소리가 오갔다.

발매소 내부 환경은 비교적 깨끗했다. 흡연실과 식사, 음료를 마실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사람들은 시설과 서비스에 대해 비교적 만족감을 내비쳤다.

한 달에 2~3번은 꼭 발매소를 찾는다는 이 모(48) 씨는 "과천(렛츠런파크서울), 영등포(영등포 마권장외발매소) 등 여러 경마장을 다녀봤다. 용산(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은 이번이 처음인데, 다른 곳보다 훨씬 시설이 훨씬 깨끗하고 고급스럽다"고 용산 마권장외발매소 방문 첫(?)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여기가 유해시설이라고 하면서 입구부터 주민들이 막고 있는데, 좀 심하단 생각을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추천받는 곳이 경마장이다"고 덧붙였다.

돈을 잃었다는 최 모(52) 씨는 "재미로 하는 건데, 돈 좀 잃는 건 대수롭지 않다"며 "소액을 배팅하기 때문에 큰 위험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달려라! 용산 마권장외발매소를 찾은 사람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달려라!' 용산 마권장외발매소를 찾은 사람들.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인근 주민이라고 밝힌 남 모(50대) 씨는 "경마장은 도박장이기 때문에 단지 시설이 좋다고 해서 유해시설이 아니라고 보긴 힘들다"며 "나도 가본 적 있지만, 학교 근처에 세워졌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매소를 빠져나온 오후 3시께, 불볕더위 탓인지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건물 입구는 비교적 조용했다. 하지만 이내 반대 주민들은 '도박경마장이 사라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기습 개장' '2000원 입장권' 등 마사회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아졌다는 얘기와 함께 입맛에 맞은 타협보다는 '완전 폐쇄'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여전한 논란에 대해 마사회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반대 주민들이 주장하는 여러 논란과 의혹(2000원 입장권, 사채업자 전단 등)과 관련해 갈등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사실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내부적인 확인 작업이 필요한 내용이 많다"며 "현재 여러 가지 반대 주민 측 주장 내용을 모으고 있다. 세부적으로 조사해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더팩트ㅣ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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