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가리오' 서울 강북구 수유역 인근 주택밀집지역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주정차들로 가득하다. /수유2동=이성락 기자 |
"주자 할 땅이 없어 방 안에 주차해야 할 판이야."
23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1동에서 만난 최 모(68) 할아버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그는 "주차만 아니면 살기 좋은 동네"라며 한숨을 내쉰다. 옆에 있던 이 모(60대) 할아버지는 "살기 좋긴 뭘 살기 좋아"라며 맞받아친다. 티격태격해도 '주차난'엔 서로 무릎을 탁 친다.
수유역 인근 대표적인 인구밀집지역인 번1동은 면적 0.55㎢(16만 6374평)에 9357가구가 살고 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이 많아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시 공영주차장 현황'에 따르면 인구밀집도가 높은 강북구엔 시영주차장(공영주차장 22개)이 한 개도 없다.
'빽빽'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시 공영주차장 현황'에 따르면 강북구엔 시영주차장이 한 개도 없다. /번1동·수유2동·수유3동=이성락 기자 |
두 할아버지의 말대로 도로와 골목 곳곳은 자리싸움에 밀린 차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면 도로 한쪽은 한순간에 주차장이 된다.
최 할아버지는 동네 터줏대감이다. 이곳에서 20여 년을 산 때문에 누구보다 동네 사정을 잘 안다. "여기 집 구하러 온 사람들이 제일 먼저 집주인한테 물어봐야 하는 게 뭔지 알아? 주차할 곳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야. 덜컥 이사했다가는 버스 타고 다녀야 할 걸…."
최 할아버지에게 질세라 이 할아버지도 주차난에 목소리를 높인다. "제사 때 자식들 오면 그때 정말 난리지. 애들 온다고 하면 미리 주차 공간을 마련해 놓아야 해. 언제 한 번은 차 빼달라고 하도 전화 와서 언성을 높이면서 다툰 적도 있다니까. 그래서 불법주차도 극성이야."
'내 자리야' 극심한 주차난 때문인지 주차 공간에 대한 주민들은 무척이나 예민했다. 때로는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유2동·수유3동=이성락 기자 |
대화의 마침표를 찍은 건 이 할아버지. 그는 "(주차난 문제의)답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최 할아버지 역시 "대책 없을걸"이라며 이만 가보라는 듯 가벼운 손인사를 건넨다.
30분쯤 흘렀을까.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동네를 둘러본다. 역시 주택가엔 불법 주차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차고지나 주차 공간이 따로 없는데도 차를 소유한 세대는 많다는 것이다.
주택가 주차난은 수유2동과 수유3동도 극심하다. 이곳 역시 세대수에 비해 주차공간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수유2동은 0.73㎢(22만 825평) 면적에 9253세대가 살고 있으며, 수유3동에는 0.86㎢(26만 150평) 면적에 1만1245가구가 살고 있다.
오후 3시, 한산할 법한 주택가와 주차장에는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수유3동에서 2동으로 넘어가는 골목마다 양쪽에는 불법 주정차가 줄을 잇는다. 도로변의 큰길과 연결된 이면도로는 자리싸움이라도 하듯 차량이 주차돼 있고, 1.5톤 트럭 운전자는 사방에 널린 주차 차량을 피하려고 핸들을 바쁘게 돌린다.
'운전하기 힘드네' 불법 주정차들로 인해 도로가 좁아져 운전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수유2동=이성락 기자 |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평일·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골목에는 항상 불법 주정차가 있다"고 말한다. 우이 시장 인근에서 만난 미용실 주인 한 모(60대·여)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 씨는 주택가에 즐비한 불법 주정차를 보고 있자면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공영주차장도 차로 가득하다. 수유2동 공영주차장 관계자는 "이 동네 차가 참 많다"며 평일 낮에도 주차장이 거의 꽉 찬다고 설명한다.
"워낙 사람이 많이 사니까."
정육점 사장 A씨(40대·수유 2동)에게 빼곡한 공영주차장의 풍경은 대수롭지 않다. '주차 문제'는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 시작' 퇴근 차량이 몰리면 주차난은 더 심각해진다. /번1동·수유3동=이성락 기자 |
오후 8시, 퇴근 차량이 몰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도로 위 차들은 불법 주정차로 제 속도를 내지 못했고, 사람들의 얼굴은 더 일그러진다. 일순간에 도로 하나가 주차장으로 변한다.
인근을 지나던 강북 경찰도 "여기는 밤이면 북적대는 차들로 난리가 난다"며 "차고지가 없는 차들은 도로 밖으로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강북구청 측도 주차 공간이 부족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주택가의 경우는 거주자우선주차제를 운영해 '노상주차장'처럼 사용하게끔 하고 있다"라면서도 "실질적으로 주차공간을 배정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답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그는 "이 문제는 주차장 확보 말고는 답이 없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차고지증명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택가 주차장 건설은 부지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팩트ㅣ번리1동·수유2동·수유3동=이성락 기자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