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미성년자 '무인텔' 출입, '너무' 쉽네요
입력: 2015.04.05 06:30 / 수정: 2015.04.04 22:25
무인텔 취재기, 떨린다, 떨려! 지난 2일 밤, 서울 종로구 소재 무인텔에서는 많은 커플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젊은 연인은 무인텔이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고 있다. /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무인텔 취재기, "떨린다, 떨려!" 지난 2일 밤, 서울 종로구 소재 무인텔에서는 많은 커플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젊은 연인은 무인텔이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고 있다. /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콩닥콩닥'

심장 소리인지 지하철 소리인지 고민하는 틈에 도착한 곳은 서울 모텔촌. 2일 밤, 남자 선배와 수차례 모텔을 드나들었다. 이날 인턴기자는 10대 여고생 역을 맡았다. 어색하고 부끄러워 모텔 입구에서 쭈뼛거렸지만, 기자의 출입을 막는 업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기가 어색했던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 보였던 걸까. 모텔 업주들의 의중은 알 수 없었다.

"남자 혼자 가면 이상하잖아."

선배를 따라 이곳에 온 이유였다. 이날 취재 목적은 10대 청소년들의 '무인텔' 출입 실태였다.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모텔에서 한 여중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성매매에 나섰던 이 여중생은 30대 김모 씨로부터 목이 졸려 살해됐다. 살해된 여중생의 나이 고작 14세였다.

이번 취재의 시작은 위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10대 청소년들의 무인텔 이용, 얼마나 쉬운가'가 주제였다.

처음 찾은 곳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동묘 앞 무인텔. 막상 연인 사이도 아닌 선배와 함께 무인텔에 들어서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무인텔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곳은 알려진 것과 달리 평범한 모텔로 바뀌어 있었다.

서울 중심가, 수많은 모텔 간판 수많은 모텔 간판의 불빛이 어두컴컴한 모텔촌 골목을 비추고 있다./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서울 중심가, 수많은 모텔 간판 수많은 모텔 간판의 불빛이 어두컴컴한 모텔촌 골목을 비추고 있다./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할 수 없이 다른 무인텔을 찾아 나섰다. 놀랍게도 서울 시내에 무인텔은 또 있었다. 그것도 서울의 중심가에 말이다. 무인텔이 자리한 종로 X가 뒷골목에는 모텔들이 빼곡했다. 마음만 먹으면 곧장 들어설 수 있었고 수많은 모텔 간판이 어두컴컴한 거리를 환하게 비췄다.

무인텔에 들어서기 전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주변을 더욱 의식하게 됐다. '업주가 없는 무인텔이니까 괜찮을 거야'라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무인텔'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업주가 상주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무인텔이야). 또한, 무인텔을 찾아 온 커플들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점점 더 남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손님인 척 업주를 불러냈다. 선배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죽였다. 무인텔 업주는 그런 기자를 곁눈질로 훑었다. 미성년자로 의심하는 듯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모텔 업주 그냥 들어가세요 무인텔과 모텔을 수차례 드나들었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낼 뿐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곳은 없었다./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모텔 업주 "그냥 들어가세요" 무인텔과 모텔을 수차례 드나들었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낼 뿐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곳은 없었다./종로구=김문정 인턴기자

그러나 무인텔 업주는 이내 시선을 거뒀다. 무인 창구 사용법을 설명하더니 무심하게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갑 안에 꼭 챙겨둔 주민등록증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인 창구에는 버젓이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칸도 있었지만 "필요 없다"며 검사를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수차례 모텔을 방문했지만 '눈빛 검열'만 당했을 뿐 주민등록증을 꺼낼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시간별로 가격을 설명하며 장사에 눈이 먼 업주들만 있을 뿐이었다.

불현듯 여중생 살해 사건을 생각하니 취재 현장에서 만난 모텔 업주들이 원망스러웠다. '내 동생이 여중생의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끔찍했다. 아마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모텔에 들어서는 여중생을 막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미성년자 여부만 확인했어도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 정한 규정만 모텔 주인들이 숙지하고 있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 같다.

청소년보호법 제2의 '청소년 유해업소'는 '청소년의 출입과 고용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으로 인정되는 업소'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률은 '불특정한 사람 사이의 성적 행위가 이뤄지거나 유사한 행위가 이뤄질 우려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장소'인 모텔을 유해업소로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업소로 지정하고 업주와 종사자는 출입자의 나이를 확인해야 한다.

또 청소년을 남녀 혼숙하게 하는 등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영업행위를 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미성년자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제도의 문제일까, 아니면 무인텔(모텔) 운영자들의 문제일까. 미성년자임에도 무인텔의 허점을 이용한 청소년, 미성년자로부터 성을 사는 어른들의 문제일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던 가운데 '그래도 이건 숙박업소 업주들의 안이한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로 결론지었다.

하룻밤 벌어들일 한 푼에 자신의 눈을 속이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텔 사장님, 10대 청소년들은 '돈벌이' 대상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입니다."

[더팩트 | 김문정 인턴기자 kkmoon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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