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안전불감증' 대학로 소극장, 화재 때 'No+답'
입력: 2015.03.24 11:33 / 수정: 2015.03.25 09:08

소극장이 밀집한 대학로 거리 대학로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10만 명으로 추산되며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연 300만 명이 공연을 관람한다. /대학로=강희정 인턴기자
소극장이 밀집한 대학로 거리 대학로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10만 명으로 추산되며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연 300만 명이 공연을 관람한다. /대학로=강희정 인턴기자

대학로 소극장 ‘안전불감증’ 법의 사각지대 때문?

또 인재(人災)였다. 지난 22일 인천 강화군 캠핑장에서 한 가족의 즐거운 여행은 화마와 함께 '악몽'이 됐다. '안전불감증' 여론이 불붙었다.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사고에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안전'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내고 있다.

시민들은 불안하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그곳들은 과연 안전할까. 대부분의 건축물은 소방법, 건축법 등에 따라 소방장비와 안전시설에 대한 점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예외적인 장소도 상당하다. 300㎡(약 90평) 미만 공연장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사실 소극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을 정도로 대표적인 화재 취약지다. 과연 그곳은 달라졌을까.

<더팩트>는 23일 오후 젊은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이자 관객들과 호흡하는 소극장이 밀집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를 찾아 소화기, 비상구,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화재 안전장치를 확인했다.

◆ 화재 발생하면 어디로 나가죠?

소극장 입구와 스태프룸으로 표시된 비상구 대부분의 대학로 소극장은 1개 출구만 사용하고 있었으며 비상구등은 부러 검은 천으로 가려놓았다. /대학로=강희정 인턴기자
소극장 입구와 '스태프룸'으로 표시된 비상구 대부분의 대학로 소극장은 1개 출구만 사용하고 있었으며 비상구등은 부러 검은 천으로 가려놓았다. /대학로=강희정 인턴기자

23일 오후에 찾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지하 소극장의 비상구 등은 까만 천으로 가려져 있다. 비상구등 밑에 문에는 '스태프룸'이라는 글귀가 붙었다. 또 다른 공연장 몇 곳을 둘러봤다. 아예 비상구를 가려놓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다.

공연 시작 전 어디로 대피하라는 안내는 없다. 피난구 유도등이 없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공연을 관람하는 객석은 더 문제였다. 소극장 내부 좌석은 옆 사람이 일어나기 전엔 지나가지 못할 만큼 앞뒤 간격이 빽빽했다. 공연장 복도와 문은 두 사람이 함께 빠져나갈 수 없는 너비다. 한 공연장은 소화기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설마'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영세극장이 많아 늘 법의 사각지대로 꼽혀온 대학로 소극장. 관객들을 통해 웃지 못할 아찔한 순간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평균 10번 연극을 관람한다는 서울 관악구 서모 씨(26)는 '소극장 안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찔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서 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5일 A 소극장 2관에서는 공연이 다 끝나갈 무렵 화재경보가 울렸다. '화재경보입니다'라고 또렷하게 울리는 경보에 관객들은 공연 일부로 생각하며 '설마 진짜 화재일까'하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돌연 극을 멈추고 무대에서 퇴장했으며 관객에게 대피를 지시해야 할 스태프는 종적을 감춘 후였다.

서 씨는 "후엔 경보 오작동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공연장 측에 화가 났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사라져 당황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청결'보다 '안전'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길게 늘어선 좌석 소극장 안 좌석이 빈틈없이 배치돼 있다.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동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강희정 인턴기자
길게 늘어선 좌석 소극장 안 좌석이 빈틈없이 배치돼 있다.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동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강희정 인턴기자

이어 서 씨는 "공연 전에 비상시 대피 안내를 해주는 곳도 있긴 하다"면서도 대형극장은 안내를 해주지만 소극장에서 안내를 받은 것은 손가락에 꼽는다고 설명했다.

서 씨는 또 "소극장에선 공연을 보고 나갈 때 시간이 꽤 걸린다. 대부분 개방된 출구는 1개이고 의자 사이 간격이 좁아서 이른바 '병목현상'이 생긴다"는 말을 덧붙였다.

소극장 관계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 소극장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 소극장 관계자는 "돈 때문에 시설을 방치하진 않는다. 청결에 특히 신경을 쓴다. 관객들의 안전도 생각한다"면서 "좋은 창작극을 공연하는데도 적자가 이어진다. 지난달에도 약 1000만 원의 적자가 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2004년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은 임대료가 치솟아 힘들고 구역 밖의 소극장은 상대적으로 눈밖에 난다고 한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냐'는 질문에는 "건물주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되묻는다. 해당 소극장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깨끗한 환경이었다.

◆ 소규모 공연장, 안전하게 보는 건 사치인가요?

통로가 이렇게 좁으면… 대학로 소극장 중 300㎡ 미만 공연장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이들 소극장 대부분은 통로가 좁아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피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강희정 인턴기자
통로가 이렇게 좁으면… 대학로 소극장 중 300㎡ 미만 공연장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이들 소극장 대부분은 통로가 좁아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피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강희정 인턴기자

소극장이 이처럼 소방시설에 허점을 보이는 데는 제도적 문제도 한몫한다.

보통 공연장은 소방법, 건축법 등에 따라 소방장비와 안전시설에 대한 점검을 받고 있으나 300㎡ 미만 공연장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 공연장으로서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해 3월부터 3개월간 대학로 소극장을 대상으로 '대학로 소극장 특별안전점검' 결과 소방 관련 시설에 문제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로 소극장 129곳 중 66곳(51.2%, 확인 불가 포함한 수치)은 화재 시 소화장치인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32곳(24.8%)은 화재 감지 및 경보기가 아예 없거나 고장나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또 최소한의 소화장치인 수동식 소화기마저 없거나 불량인 곳도 46곳(35.7%), 피난구 유도등이 없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의 비율도 34%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대세트인 무대 마루와 커튼에 방염처리를 일부만 했거나 하지 않은 곳은 각각 81곳(62.8%), 105곳(81.4%)이나 됐다. 사실상 화재에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공연법에 따르면 바닥면적 50㎡ 미만 공연장은 등록대상에서 제외되며 안전시설 역시 규제받지 않는다. 이런 미등록 소극장은 대부분 영세해 화재 대비 안전시설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 무조건 법으로 규제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서울 종로구청 문화과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문체부 등에서 (미등록 소극장의) 안전점검을 했다. 그래서 그 문제점을 법제화한다고 해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50석 미만 소극장도 등록해야 한다. 영세극장도 무대장치나 시설에 대한 안전 기준이 강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고 소극장의 안전은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관객은 여전히 그곳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더팩트 | 대학로 = 강희정 인턴기자 kh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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