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추적] 공모전, 취준생들 '열정'을 도둑질하다
입력: 2015.02.26 09:58 / 수정: 2015.02.26 11:53

이번엔 되겠지? 최근 기업들이 공모전을 주최한 뒤 갑자기 수상작을 발표하지 않아 취업준비생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열심히 준비한 작품을 하루아침에 도둑질당한 이들은 하소연해 보지만 별다른 방지책이 없다. 25일 오후 8시 20대 여대생들이 공모전 준비에 한창이다. / 금천구 = 서민지 인턴기자
"이번엔 되겠지?" 최근 기업들이 공모전을 주최한 뒤 갑자기 수상작을 발표하지 않아 취업준비생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열심히 준비한 작품을 하루아침에 '도둑질'당한 이들은 하소연해 보지만 별다른 방지책이 없다. 25일 오후 8시 20대 여대생들이 공모전 준비에 한창이다. / 금천구 = 서민지 인턴기자

"'공모전'이라 쓰고 '도둑질'이라고 읽는다"

좁아질 데로 좁아진 취업의 문 때문에 오갈 곳 없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서럽고 눈물겨울 정도다.

이런 가운데 가뜩이나 어깨가 무거운 취준생의 열정을 훔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19일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취준생과 학생들을 울리는 어이없는 공모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기껏 열심히 준비했더니 공모전 주최 측이 브랜드 방향성에 적합한 출품작이 없다는 이유로 수상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본격적으로 상반기 취업 시즌을 맞이한 취준생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이른바 '공모전 도둑(?)'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됐다. <더팩트>는 이들을 두 번 울리는 공모전의 실태와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 공들인 작품…하루아침에 '공중분해'

공모해놓고, 수상은 취소? 지난 19일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취준생과 학생들을 울리는 어이없는 공모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수많은 취준생들의 공분을 샀다./스펙업 카페, 다음 아고라 화면 갈무리
'공모해놓고, 수상은 취소?' 지난 19일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취준생과 학생들을 울리는 어이없는 공모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수많은 '취준생'들의 공분을 샀다./스펙업 카페, 다음 아고라 화면 갈무리

공모전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많게는 석 달에 걸쳐 시안을 짜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자 머리를 싸맨다. 오랜 시간 매달려 공들인 작품이라면 누구나 수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사연 속 S호텔은 '호텔 시리즈 광고 공모전'을 주최하고, 대상 1팀 상금 500만 원과 S호텔 숙박권 2매, 금상 1팀 상금 100만 원과 S호텔 숙박권 2매, 은상 2팀 상금 50만 원을 내걸었다. 하지만 "지향하는 브랜드 방향성에 적합한 출품작이 없다고 판단돼 이번 수상은 진행되지 않음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S호텔 공모전 참가자는 "공모 요강에 있는 단 몇 줄만으로 참가자들이 기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 한 명도 기업이 지향하는 브랜드에 맞는 응모작을 못 냈다는 건 오히려 브랜드 방향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주최 측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사)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에서 개최한 '보드게임콘 로고·포스터 공모전'의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차 심사결과 응모작 수와 점수 미달로 갑자기 공모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해당 공모전에 지원했던 익명의 누리꾼은 "공모전 마감 사흘 전까지 밤 샜다. 수술 후 회복 덜 돼서 안 좋은 상태라 피눈물을 흘려가며 가까스로 마무리 지었는데 소중한 시간만 낭비했다. 이제 다시는 공모전을 위해 저의 시간과 노력을 쏟을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상 없는 공모전, 수상자 없는 경우도 속출! 매년 일부 공모전이 주최 측 사정으로 수상작 없음으로 처리되거나 상금내역 변경,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 보드게임콘, 철도건설, 걷기좋은서울 공모전 포스터
'대상' 없는 공모전, 수상자 없는 경우도 속출! 매년 일부 공모전이 주최 측 사정으로 '수상작 없음'으로 처리되거나 상금내역 변경,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 '보드게임콘', '철도건설', '걷기좋은서울' 공모전 포스터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난해 주최한 '제1회 철도건설 사진공모전'은 대상이 없었다. 이들은 "외부 심사위원님들이 모든 응모작을 심사했으나, 공모전 취지에 부합되는 작품의 부재로 제1회 철도건설 사진공모전의 대상작을 선정치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지난달 서울특별시와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녹색교통이 주관한 '걷기좋은서울 시민공모전' 역시 대상을 선정하지 않았다.

"적합한 출품작이 없다"거나 "취지에 부합되는 작품이 부재하다" 등의 모호한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취준생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꽁꽁 감춘 '수상 기준', 아이디어 '먹튀'

아이디어 먹튀 나빠요! 많은 누리꾼들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아이디어 먹튀에 관해 거센 비판의 글을 올리고 있다./다음 아고라 게시판
아이디어 '먹튀' 나빠요! 많은 누리꾼들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아이디어 '먹튀'에 관해 거센 비판의 글을 올리고 있다./다음 '아고라' 게시판

문제의 공모전들은 하나같이 '제출 작품 수준에 따라서 수상작이 없을 경우 시상되지 않을 수 있음', '접수 상황에 따라 시상내용 조정될 수 있음', '응모작수 또는 평가결과에 따라, 대상 수 및 포상규모는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을 포스터에 제시했다. 하지만 응모자들은 유의 사항을 보고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제출 작품 수준'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S호텔 관계자에게 '해당 공모전의 심사 기준'을 묻자 "내부 심사팀이 있고, 심사표가 미리 정해져 있다. 상마다 평균 기준 점수가 있고 점수를 넘어야 하는데 모두 기준에 못 미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심사 기준은 '내부' 심사팀만 알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모전 참가자들은 아이디어 '먹튀'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주최 측이 수상작이 아닌 작품의 아이디어에 몇 가지를 추가해 상용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리꾼 백 모 씨는 "저작권이 넘어가는 공모전, 수상작 없다 하고 출품된 작품 약간 바꿔서 광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고 신뢰가 안 간다.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라고나 할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 '0*** ' 씨는 "공모전 공고 하나 달아놓고 좋은 아이디어 나오면 조금 변형해서 사용하려는 술수. 도둑놈 심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멍 난 공모전 가이드라인 주최 측은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도 취득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도용해도 별다른 규제 방안이 없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구멍 난 공모전 가이드라인' 주최 측은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도 취득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도용해도 별다른 규제 방안이 없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하지만 공모전 주최 측은 "브랜드 광고 공모전이다 보니 회사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광고로 쓸 수 없다"며 "수상자가 없을 수도 있다고 제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작하고 준비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아이디어 '먹튀'에 관한 규제는 없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공모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취득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상 아이디어 도용에 관련해선 별다른 방지책이 없다.

문체부 저작권정책 관계자는 25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저작물은 '표현'에 관한 창작물로 정해져 있다.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응모된 아이디어를 활용했다고 해서 저작권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신 응모한 창작물이 지나치게 유사하다든지, 보고 베낀 수준이라면 응모자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고 민·형사적 규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더팩트 | 서민지 인턴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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