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추적] '잔혹한' 다이어트, '동대문 언니약'의 실체
입력: 2015.02.24 15:36 / 수정: 2015.02.24 20:54

안 되는 줄 알면서 손이 가요 손이 가 24일 오후 동대문 언니약이 성행하고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6가의 동대문 쇼핑 타운을 찾았다. 오후 7시 무렵 늦은 시각인데도 약을 처방 받고자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안 되는 줄 알면서 '손이 가요 손이 가' 24일 오후 '동대문 언니약'이 성행하고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6가의 동대문 쇼핑 타운을 찾았다. 오후 7시 무렵 늦은 시각인데도 약을 처방 받고자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3개월 만에 30kg이나 빼주는 약이 있대"

어떤 여성이 솔깃하지 않겠는가. 겨우내 두꺼운 옷 사이에 숨겨뒀던 살들을 보며 한숨짓던 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소리다. 이 기가 막힌 약을 일찌기부터 알고 있는 '얼리어답터'들이 있었으니. 바로 '동대문 언니들'이다. 마법 같은 효능에 '동대문' 일대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약을 파는 병원은 '성지(聖地)'로 불린다.

하지만 단기간에 살을 뺀 만큼 부작용도 엄청나다는 뒷말도 많았다. 단순히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부터 어떤 이는 심지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지적장애까지 앓게 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미 부작용이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 5~6년이 흐른 아직까지도 복용하는 이들이 있을까?

무성한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고자 <더팩트>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동대문'을 직접 찾아 실체를 추적했다.

내가 바로 동대문 언니! 이른바 동대문 언니들이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손님을 맞거나, 거울을 보며 점포의 상품들을 진열하고 있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내가 바로 '동대문 언니'! 이른바 '동대문 언니들'이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손님을 맞거나, 거울을 보며 점포의 상품들을 진열하고 있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동대문 언니약' 파는 곳, 혹시 알 수 있나요?"

이날 오후 4시, 붐비는 인파사이로 쇼핑몰을 비집고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중국어를 자연스레 구사하며 이 옷, 저 옷을 추천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늘씬한 몸매에, 자신들의 점포 스타일에 걸맞은 패션 센스까지 갖췄다. 어떤 이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점포 앞에 세워진 마네킹과 같은 짧은 봄옷을 입고 각선미를 자랑한다.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쏠린다. 어느새 '저 옷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들은 이른바 '동대문 언니들'이다.

날씬한 몸매의 '비결'을 전수받고자 쇼핑몰을 서성였다. 예쁜 옷을 하나 고른 뒤 카운터에 있는 정모(45) 씨에게 다가갔다. "이 주변에 다이어트 약을 파는 데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들어보셨어요?"라고 묻자 놀라울 정도로 곧바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안 먹는데, 나랑 같이 일하는 친구가 먹어요. 오늘 그 친구가 일을 안 나와서…."

정 씨는 약을 직접 먹진 않지만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동대문 언니약'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정 씨는 조심스럽게 카운터에서 동료의 약 봉투를 꺼내 보여주며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한 달 분 정도 지어온 것 같아요. 처방전은 없었던 것 같은데? 효과는 글쎄. 사람마다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근데 마른 체격에 먹으니깐 울렁증이 좀 있다고 하던걸요. 이쪽 주변 사람들 이거 꽤 먹는 걸로 알고 있어요. 먹을 당시에 쭉쭉 빠지는 건 확실하고요. 그런데 끊으면 요요가 바로 온대요."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주 분 7만 원'

약 색깔이 다양하네 약국에서 2주 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처방전에는 무려 10개의 비급여 의약품이 처방돼 있다. 약의 성분은 식욕억제제부터 간질약, 감기약 등 다양하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약 색깔이 다양하네' 약국에서 2주 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처방전에는 무려 10개의 비급여 의약품이 처방돼 있다. 약의 성분은 식욕억제제부터 간질약, 감기약 등 다양하다./중구=서민지 인턴기자

"여기 약국 아세요? 다이어트 약 판다고 하던데…."

약국을 수소문했다. 쇼핑몰 내 여러 매장을 다니며 해당 약국에 관해 물었다.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동대문 언니들'은 "우리 건물은 아니고요. 다른 쇼핑몰에 있어요"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10평 남짓의 약국엔 5~6명의 사람들이 약 조제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줄줄이 사탕처럼 달린 엄청난 약의 양을 봉지째 받아간다.

약 구매를 시도했다. 약사는 "옆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오라"고 했다. 약국이 병원과 같은 층에 있는 터라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이어트 약'을 처방 받으러 왔다고 말하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적어도 2주는 하셔야 돼요"라는 설명을 듣고 체성분 분석 기계에 올랐다. 병원 코디네이터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병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은 "처음 드시는 거죠? 이거 읽어보시고요. 수면장애가 있으실 거에요. 입 마름, 손 떨림, 어지럼증도 있고요. 설명 한 번 보세요"라며 세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처방전은 1주에 만 원, 2주 분을 처방받았다.

처음 찾은 그 약국. 처방전을 손에 들고 다시 찾았다. 문에 들어서자 약사가 반갑게 맞았다. 처방전을 내밀고 "부작용은 없느냐"고 묻자, 약사는 "그렇게 따지면 약국에 있는 모든 약이 부작용이 없겠느냐"며 반문했다.

◆ 한 봉지에 6알, '이상한' 약 처방

무슨 약이 이렇게 많아! 처방전(왼쪽)을 살펴보면 모두 10개의 비급여 의약품이 처방됐다. 동대문 언니약을 손에 쥐기까지 병원비(오른쪽 위)는 2주 분을 처방 받아 2만 원, 약값은 5만 200원을 냈다. / 중구=서민지 인턴기자
무슨 약이 이렇게 많아! 처방전(왼쪽)을 살펴보면 모두 10개의 비급여 의약품이 처방됐다. '동대문 언니약'을 손에 쥐기까지 병원비(오른쪽 위)는 2주 분을 처방 받아 2만 원, 약값은 5만 200원을 냈다. / 중구=서민지 인턴기자

약값은 2주 분에 5만 원이 넘었다. 이유는 모두 '비급여' 의약품을 처방했기 때문이다. 처방전엔 약 1봉지 당 6가지 의약품을 처방토록 적혀 있다. 비급여라는 것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않는다는 뜻이다.

대한약사회 홈페이지에서 처방전에 적힌 약의 성분을 찾아봤다. '다이엔캡슐'은 비만 또는 과체중 시 체중감소를 위한 보조 약물이며, '아디펙스정'은 적절한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m2 이상의 환자에게 처방해주는 약이다.

비전문가인 취재진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는 해당 병원 검사에서 BMI 19로 해당 사항이 없는데도 아디펙스정을 처방받았고, 경고사항에 분명 이 약은 다른 식욕억제제나 체중감량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약과는 병용하지 않고 단독으로만 사용하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지질대사 개선에 도움을 주는 리놀민 등 다이어트 약 여러 개와 함께 처방됐다.

먹어도 되는 거 맞나? 병원에서 준 약물복용에 대한 주의사항 전단지다. 정 씨가 부작용으로 설명했던 입마름, 손떨림, 어지럼증 등  일부가 언급돼 있다. / 중구=서민지 인턴기자
먹어도 되는 거 맞나? 병원에서 준 약물복용에 대한 주의사항 전단지다. 정 씨가 부작용으로 설명했던 입마름, 손떨림, 어지럼증 등 일부가 언급돼 있다. / 중구=서민지 인턴기자

이해할 수 없는 약의 성분들도 있다. '토핀정 25mg'의 경우에는 간질과 편두통 예방 효과가 있는 약이다. 대신 식욕 부진이라는 장애요인이 있다. '카엘정'은 감기 증상을 완화하며 '마노엘정'은 변비 증상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과연 이 처방의약품은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비만전문병원 의사에게 처방전을 보여주고 조언을 받아보기로 했다. 처방전을 해당 의사에게 보냈다. "처방전으로 봤을 때 향정신성의약품 최대용량이나 병용처방에 대한 부분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권고안을 어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고, 처방전만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잘못된 처방이다, 아니다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비급여 의약품인 경우 부작용에 대한 보상도 쉽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도 받지 않는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이날 <더팩트>와 통화에서 "급여 의약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를 거치게 되지만, 비급여 의약품의 경우 모니터링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의약품 사용에 있어 부담을 덜 느낀다"며 "게다가 의사 처방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의사 본인의 윤리 의식에 맡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재를 위한 것이었지만 문제의 '동대문 언니약'을 건네받고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에 잠겼던 20대 여기자는 마음을 단숨에 접었다. '살과의 전쟁'은 계속될지라도 '약물 중독자'는 되고 싶지도, 돼서도 안되니까.

[더팩트 | 중구=서민지 인턴기자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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