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좌충우돌 '게이○' 취재기, 'A부터 Z까지'
입력: 2015.01.31 09:08 / 수정: 2015.01.31 12:03

불 밝힌 그들만의 아지트 28일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울 종로의 게이○으로 모여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불 밝힌 그들만의 아지트' 28일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울 종로의 '게이○'으로 모여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너 게이 좀 만나고 와야겠다."

평화로운 오후 5시. 날벼락이 떨어졌다. 내가 잘못 들었나. 노트북 화면에서 얼굴을 들어 팀장을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왜. 싫어?"

입사 3개월 차, 사고회로가 잠시 멈췄다. 정치사회팀으로 배치된 지 3일 만에 주어진 이 엄청난 '아이템'에, 팀장을 바라보는 새내기의 동공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인턴 사전에 '못하겠습니다'란 없는 법.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 채 짐을 챙겨 조용히 회사를 빠져나왔다.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머릿속에 걱정만 가득 들어찼다.

◆ '게이들과의 첫 만남'

둘만의 오붓한 시간 이날 카페 안에는 3명 이상이 함께 앉은 테이블보다 둘이서 한구석을 차지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더 많이 포착됐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둘만의 오붓한 시간' 이날 카페 안에는 3명 이상이 함께 앉은 테이블보다 둘이서 한구석을 차지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더 많이 포착됐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목적지는 서울 종로 일대의 유명 커피숍 '게이○'. 소문이 파다한 곳이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인터넷에 퍼져 있는 '~카더라' 식의 소문들을 검색하며 질문 거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그곳에 다다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 1층 카페. 전면이 통유리다.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개방적이다.

순간 스스로 고정관념에 화들짝 놀란다. 평소 '오픈 마인드'를 모토로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은연중에 게이들은 어두컴컴하고 폐쇄된 장소에만 있을 거로 생각했던 걸까. 도착하자마자 성 소수자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문을 열고 카운터로 향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주문을 받고 있다. 계산을 하면서 이 중 한 명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여기 게이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하는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아르바이트생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아뇨. 전 아는 바가 없어서요"라고 말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순순히 대답해줄 거라 생각진 않았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 줄이야. 뭐 괜찮다. 조금씩 분위기를 보면서 생각해 보도록 한다.

카페 내부는 생각보다 넓다. 실내를 한 바퀴 둘러 보니 누가 봐도 '게이'인 듯한 사람들이 다수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다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왼편에서 훤칠한 이목구비를 가진 게이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연스레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말을 걸긴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숫기 없는 성격과 기자로서의 본분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타이밍만 노리다 한 시간이 흘렀다.

◆ '여자들이 반할 만한 외모', 그런데 남자가 좋단다

빈자리 없이 들어찬 손님들 평소 게이들이 자주 찾는다는 서울 종로의 한 카페 내부.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빈자리 없이 들어찬 손님들' 평소 게이들이 자주 찾는다는 서울 종로의 한 카페 내부.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울 종로구=김민수 인턴기자

그러던 중 한쪽 끝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 둘이 일어섰다. 한눈에 봐도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에 범상치 않은 패션 센스. 촉이 왔다. '지금이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는 둘을 살며시 뒤따라 나갔다. 조심스레 다가가 턱 끝까지 차 있던 질문을 드디어 내던졌다.

"저기…혹시 게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초년생 기자의 두서없는 인터뷰가 시작됐다. 비록 취재를 위해 말을 걸었지만, 난생처음 나눠보는 게이들과의 대화는 흥미진진했다.

10대 고등학생, 20대 휴학생, 30대 직장인, 그리고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까지. 알게 모르게 박혀 있던 '게이=어린 남자'라는 공식이 깨졌다. 겉모습은 남자지만 속은 여자였다. 주변의 시선과 내적 갈등 사이에서 고뇌가 느껴졌다.

취재를 다녀온 다음 날인 29일. 기사가 출고됐다. 곧바로 다양한 피드백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재밌다' '참신하다'는 의견과 '불쾌하다' '아웃팅' '당하면 책임질 거냐'라는 항의 메일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나에게 낯설고 흥미로운 기사가 어떤 사람에겐 비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 소수자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춰내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틀린 게 아니라고. 다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일 뿐이라고. 나도, 당신도, 그들도 틀리지 않았다고. 우리는 단지 서로 '다른' 사람들일 뿐이란 걸 말하고 싶다.

하지만 멋모를 초년생 기자의 오지랖으로 인해 피해를 보신 게이분들이 계신다면 한마디 하고 싶다.

"다음에 술 한잔 같이하실까요. '남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더팩트 | 김민수 인턴기자 hispiri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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