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추적] '뺑소니+절도' 강남 벤틀리 차량 사고…불구속 수사, 왜?
입력: 2015.01.14 16:28 / 수정: 2015.01.14 16:32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언주로 대로변 한복판에서 발생한 벤틀리 교통사고 현장에는 도로가 움푹 패여 있고 유리파편이 흩뿌려져 있다. 당시의 사고가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강남=신진환 기자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언주로 대로변 한복판에서 발생한 '벤틀리 교통사고' 현장에는 도로가 움푹 패여 있고 유리파편이 흩뿌려져 있다. 당시의 사고가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강남=신진환 기자

[더팩트ㅣ강남=이철영·신진환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보기 드문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고급 외제 세단 차량 벤틀리(3억~4억 원대)는 바퀴가 빠졌지만 멈추지 않고 500m를 더 내달렸다. 이 과정에서 다른 차량을 들이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벤틀리 차량 운전자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길가에 있던 아반떼 차량을 절도해 도주했다. 운전자는 도주하던 중 금호터널에서 BMW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결국, 이 운전자는 출동한 서울 중부경찰서 경찰관에 의해 체포됐다.

뺑소니, 절도, 교통사고 등 '삼 종 세트' 범죄를 저지른 이 벤틀리 운전자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구속 수사 중일까. 일반적 상식과 달리 이 벤틀리 운전자는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불구속 수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누리꾼들은 '벤틀리'라는 고급 세단을 탈 정도면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일 것으로 본다. 사고를 낸 '벤틀리'는 영국 브랜드로, '롤스로이스'와 함께 최고급 호화 세단을 만드는 업체다. '벤틀리 컨티넨탈'의 국내 출시가격만 3억80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최고급 차량이다.

누리꾼들은 불구속 수사에 "왜?"라는 물음표를 달았다. 수억 원대 벤틀리 운전자는 누굴까. '삼 종 세트' 사고를 낸 운전자는 유명 유아 물티슈 업체 몽드드의 유정환(37) 대표이사다. 운전자의 신원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누리꾼들의 목소리는 정당한 것일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이번 사건에 대한 시선이 고울리 없다. <더팩트> 취재진은 누리꾼들의 주장처럼 불구속 수사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추적에 나섰다. 취재진은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사고 현장과 회사를 직접 찾았다.

◆ 움푹 팬 도로는 '만신창이'

벤틀리 차량은 바퀴가 빠진 채 주행해 도로가 할퀸 것처럼 깊게 파여 있다./강남=신진환 기자
벤틀리 차량은 바퀴가 빠진 채 주행해 도로가 할퀸 것처럼 깊게 파여 있다./강남=신진환 기자

12일 취재진이 찾은 서울 강남구 언주로 도로는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다. 그만큼 교통량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당시 대로변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셈이다.

도산사거리 방면 500m 이전 지점이 당시 사고 현장이다. 현장에는 당시 사고 차량을 표시하기 위한 래커스프레이가 뿌려져 있다. 스프레이를 보면 벤틀리 차량은 이 지점에서 2대의 차를 부딪쳤다.

40여m를 거슬러 올라가니 가로수에 깨진 유리파편이 널려 있었다. 유리조각이 벤틀리 차의 것인지, 추돌사고가 난 차량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고 당시 차 유리가 파손될 만큼 충격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20m 앞 지점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만약 평일 아침 출근길이었다면 버스정류소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부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도로 곳곳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선명히 나 있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도로가 파인 이유는 앞바퀴가 빠진 벤틀리 차량이 멈추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

바퀴가 빠졌지만 유 대표는 벤틀리 차를 더 몰고 질주했다. 한 식당 앞에 선 도로표지판 기둥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기둥 옆에 세워진 식당 소유의 난로 역시 파손됐다.

벤틀리 차량은 한 식당 소유의 난로를 들이받았다. 식당 직원은 난로는 못 쓸 정도로 부서져서 새로 샀다고 말했다. 난로 옆 연석에는 긁힌 자국(원 안)이 선명하다./강남=신진환 기자
벤틀리 차량은 한 식당 소유의 난로를 들이받았다. 식당 직원은 "난로는 못 쓸 정도로 부서져서 새로 샀다"고 말했다. 난로 옆 연석에는 긁힌 자국(원 안)이 선명하다./강남=신진환 기자

식당 직원은 "사고 당시 출근을 안 해 직접 보진 못했지만, CCTV로 확인해 보니 벤틀리 차가 (표지판) 기둥과 난로를 박았다. 난로는 못 쓸 정도로 부서져서 새로 샀다"며 "이후에도 차가 계속 달리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다"고 직접 사고 지점을 가리켰다.

난로 앞 도로 5차선에는 10m 정도 바퀴에 긁힌 자국과 스키드 마크(급브레이크나 회전 때문에 노면 상에 생긴 검은 타이어 자국)가 선명하다. 엄청난 속도로 막무가내로 내달린 흔적이다. 도로는 만신창이 상태다.

게다가 신호등 바로 이전 1·2차선에도 래커스프레이 자국이 보인다. 유 씨는 이곳에서도 차량을 들이받았다. 그야말로 '광란의 질주'를 벌인 셈이다.

이후에도 유 대표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흰색 아반떼 차량을 훔쳐 달아나다 금호터널에서 BMW 차량을 들이받은 후에야 멈췄다. 유 대표는 금호터널 사고로 출동한 중부경찰서 경찰관에게 체포됐다.

◆ 귀가 조치?…"절차상 문제다"

유 대표는 고속으로 주행하면서 연쇄추돌사고를 냈다. 또 주차돼 있던 차량을 타고 절도해 도망가는 범행을 저질렀다. 부딪힌 차량 한 대는 차가 전복될 정도로 충격이 컸다. 또 유 대표는 훔친 차를 타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BMW 차량 한 대를 들이받았다.

유 대표는 도주 과정에서 뺑소니와 차량 절도의 혐의를 받고도 체포되지 않은 채 풀려난 셈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탓에 누리꾼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유 대표는 구속 수사가 아닌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됐을까.

누리꾼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돈 많은 중소기업 CEO이기 때문인 걸까. 경찰관과 법률전문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강남경찰서 측은 법적 절차상의 문제에서 빚어진 오해라는 견해를 밝혔다. 강남서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중부경찰서에서 1차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영장주의에 의해서 재체포나 긴급체포에는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며 "뺑소니는 사건을 조사하고 추후에 신병처리 한다. 사전영장으로 신병 결정을 하는 게 형사소송법의 규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체포의 대상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오보다"라며 "음주 상태 또는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체포가 가능하나, 피의자는 음주 상태가 아니었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또 신원이 확인됐기 때문에 조사 후 신병을 결정한다. 이는 영장주의의 절차상 문제다. 피의자는 1차 현행범으로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따라서 재체포를 해야되는 상황이다. 그 때는 엄격한 규정이 더 따른다. 물적 피해는 보험상계나 도덕적 합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앞서 나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 대표의 사고 소식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일부 언론은 14일 경찰이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14일 피의자를 소환해 조사한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소환일은 알려줄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취재진은 법률 전문가의 자문도 구했다. 여전히 구속 여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법률상 문제는 다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원 교수는 "피의자의 신원이 확실하고 동종 전과의 사례가 없다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없다고 경찰에서 판단할 수 있다"며 "체포 이후 영장없이 재체포한다면 불법체포의 소지가 있다"고 경찰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 촉망받는 기업가 유 씨는 누구?

벤틀리 차량 소유주로 알려진 유 대표는 유아용 물티슈 제조업체 몽드드의 최고경영자이다. 13일 취재진이 찾은 몽드드 사무실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강남=이철영 기자
벤틀리 차량 소유주로 알려진 유 대표는 유아용 물티슈 제조업체 몽드드의 최고경영자이다. 13일 취재진이 찾은 몽드드 사무실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강남=이철영 기자

취재진은 유 대표의 대답과 당시 사고 후 도주 등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13일 오후 회사를 찾았다. 몽드드 사무실은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6층 건물의 2층에 있다. 1층에는 어린이집과 함께 건물엔 교회 등이 있다.

취재진이 찾은 몽드드 사무실에는 약 20여 명의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벤틀리 사고' 때문인지 사무실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취재진은 '벤틀리 차량 사고'를 직원에게 물으며 유 대표를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한 직원은 "우리도 잘 모른다. 기사를 보고 알았다.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다. 담당자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현재 자리에 없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유 대표가 회사에 출근했는지와 이전에도 회사에 상근했는지를 묻자 "평소에도 출근을 매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표와 관련된 내용도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오전 취재진은 연락이 없는 몽드드 측에 다시 한 번 대답을 듣기 위해 연락했다. 하지만 몽드드 측 담당자와의 연결은 불발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연락했지만 몽드드 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몽드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벤틀리 사고를 낸 운전자가 몽드드 유 대표가 맞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회사 측이 12일 유정환 대표가 사퇴했다는 천편일률적인 답변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몽드드 홈페이지 갈무리
몽드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벤틀리 사고를 낸 운전자가 몽드드 유 대표가 맞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회사 측이 '12일 유정환 대표가 사퇴'했다는 천편일률적인 답변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몽드드 홈페이지 갈무리

유 대표는 30대로, 유아용 물티슈 업체 1위를 경영하는 기업가다. 나이에 비해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촉망받는 기업가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선이다. 그러나 유 대표의 기이한 행동으로 몽드드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몽드드 홈페이지에도 제품을 사용했던 소비자들의 문의와 비난이 빗발쳤다. 몽드드 측은 유 대표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12일 유정환 대표 사퇴'라는 답글을 달았다. 유 대표 사퇴가 사실인지를 몽드드 측에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을 피했다.

한편 몽드드는 지난해 9월 일부 매체의 보도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당시 몽드드의 물티슈 제품에 인체에 유해한 독성 물질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들어간 물티슈가 유통되고 있으며, 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심각한 중추신경계 억제를 유발해 흥분과 발작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이 들어 있다고 보도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동으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0.1% 이하로 화장품에 보존제로 사용 가능한 안전한 물질'이라고 밝혀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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