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 영등포 '알몸 살인사건', 8년째 미궁
입력: 2014.12.04 10:08 / 수정: 2014.12.04 20:13

2006년 7월 4일 새벽 2시 10분께 영등포 노들길에서 20대 여성의 알몸 변사체가 발견됐다. 기괴한 수법의 이 살인사건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 있다. 아래 사진은 변사체를 발견한 노들길 배수로의 현재 모습이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당산동=고수정 기자
2006년 7월 4일 새벽 2시 10분께 영등포 노들길에서 20대 여성의 알몸 변사체가 발견됐다. 기괴한 수법의 이 살인사건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 있다. 아래 사진은 변사체를 발견한 노들길 배수로의 현재 모습이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당산동=고수정 기자

[더팩트|황신섭·고수정 기자]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오직 몽타주만 남았다.

지난 2006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20대 여성의 알몸 살인사건이 8년간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당시 여러 목격자가 있었는데도 뚜렷한 증거가 없어 범인을 잡지 못한 대표 미제 사건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 재수사 대상도 아니다.

<더팩트>는 경찰과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멀어진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을 다시 들추어 살펴봤다. 진실은 때론 뜻하지 않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괴한 알몸 변사체 '충격'

엽기적인 수법으로 살해 당한 서모(여·당시 23세)씨의 알몸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영등포 노들길 배수로 옆 도로의 현재 모습./고수정 기자
엽기적인 수법으로 살해 당한 서모(여·당시 23세)씨의 알몸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영등포 노들길 배수로 옆 도로의 현재 모습./고수정 기자

2006년 7월 4일 새벽 2시 10분.

택시 기사 김씨는 급한 볼일을 보려고 서울 영등포구 노들길 근처에 차를 세웠다.

노들길 아래 하수구에서 소변을 보던 그는 순간 얼어붙었다. 얼핏 살색 물체가 보여 다가갔더니 그곳에 떡하니 알몸 시신이 있는 게 아닌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더 놀랐다.

알몸 시신의 코와 성기에는 휴지가 들어있었고 아랫부분은 날카로운 물체로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목은 끈에 졸린 흔적이, 팔은 테이프로 감긴 자국(삭흔)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심상치 않다.'

경찰은 곧장 신원 확인에 들어갔다. 엽기적인 시신의 주인공은 관악구에 사는 서모(여·당시 23세)씨였다.

사연은 이렇다.

고향이 전북인 서씨는 대학 졸업 뒤 취업을 하려고 사건 발생 석 달 전에 서울로 왔다. 동생과 함께 살던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 홍대 주변에서 고향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러던 그녀는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택시를 타고 당산역 근처에 내렸다.

그러더니 서씨는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한 뒤 어두운 골목길로 갑자기 뛰어 들어갔다.

놀란 친구가 뒤따라갔을 때 서씨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서씨는 당시 취업 공부에 집중하던 터라 휴대전화도 정지한 상태였다.'곧 전화가 오겠지.'

그러나 친구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골목길로 뛰어가던 뒷모습이 마직막이었다.

서씨는 그렇게 검은 주검이 돼 돌아왔다.

◆혼란스러운 증거, 이리저리 헤맨 경찰

경찰은 상식에 어긋난 증거 탓에 초동수사 때부터 애를 먹었다. 오른쪽 사진은 피해자 서씨의 소지품을 발견한 당산 2동 노인회관 앞 비석./고수정 기자
경찰은 상식에 어긋난 증거 탓에 초동수사 때부터 애를 먹었다. 오른쪽 사진은 피해자 서씨의 소지품을 발견한 당산 2동 노인회관 앞 비석./고수정 기자

경찰은 처음부터 애를 먹었다. 상식과 다른 증거들이 많았던 탓이다.

서씨는 실종 당시 술을 먹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간혹 술을 먹지 않은 사람의 시신에서도 혈중 알코올 농도는 나온다.

하지만 이 사건은 되레 정반대였다.

보통 사람이 죽어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시체에 얼룩이 생기고 몸이 굳는다. 또 손가락과 관절이 딱딱해지고 각막은 혼탁하게 변한다. 법의학에선 이를 '시체현상'이라 부른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그녀가 12시간 가량 살아있다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시체현상 보다 시신의 코와 음부에 들어있는 휴지조각 등 엽기적 증거에 집중했다.

서씨 시신은 아랫부분이 훼손됐으나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깨끗했다. 겉옷과 속옷에서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는데, 범인이 한 번에 죽이지 못했는지 자국은 두 개였다.

팔에는 묶은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유류품은 당산 2동 노인회관 앞에서 발견했다. 가방과 돈은 그대로였다. 휴대전화만 사라졌다.

경찰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범인은 왜 이렇게 많은 증거를 뒤섞어 남겨놨을까?'

8년이 지난 지금도 경찰은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목격자들은 진짜 범인을 봤나?

당시 피해 여성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꽤 많았으나 신빙성은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다.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당시 피해 여성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꽤 많았으나 신빙성은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다.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당시 서씨를 봤다는 학생이 있었다.

당산역 근처 빌라에 살던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성 두 명이 한 여성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근처에 차도 한 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실종 당시 빨간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씨는 베이지색 바지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에 진척이 없던 경찰은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성급하게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했다.

경찰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이후 실종 당일 새벽 4시께 윗옷을 벗은 여성이 가슴을 가리고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환경미화원도 나타났다.

이 역시 노들길 살인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 서씨가 알몸 상태로 발견된 노들길에 차(아반떼 XD)를 대고 서성이던 수상한 남자를 봤다는 견인차 운전기사가 등장했다.

그는 "한 명은 운전석에, 다른 한 명은 하수구 근처에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견인차 운전기사의 진술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또 최면수사도 했다. 운전기사는 차량 앞 두자리 번호를 기억했는데 경찰은 이 번호를 가진 차량 1000여 대 소유자 중 남성만을 골라 유전자(DNA)를 채취했다.

결과는 허탕이었다.

경찰이 당시 목격자 진술에만 의존해 용의자를 남성으로만 좁힌 탓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의외로 여성 공범자가 많다는 수사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서씨 몸에서 구타 흔적이 나오지 않은 것도 여성 공범자의 유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추정한 채 수사를 끝냈다.

서울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은 새로운 증거나 목격자가 없는 상태"라며 "그런 이유로 영등포 노들길 살인사건은 현재 다시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이른바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사건)에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계속 수사를 한다"며 "우리나라는 개별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실적 압박 풍토가 심하다보니 이런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들길은 알고 있다. 범인의 정체를. 그를 쫓는 일은 이제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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