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 인터뷰] ‘한국맛집 579’ 食客 황광해, “한식의 맛은…”
입력: 2014.11.18 10:39 / 수정: 2014.11.18 10:39
식객 황광해가 최근 한식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점점 무너져가는 한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30년간 3500여 음식점을 누비며 찾아낸 한국맛집 579를 내놓았다. / 공덕=김아름 기자
식객 황광해가 최근 한식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점점 무너져가는 한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30년간 3500여 음식점을 누비며 찾아낸 '한국맛집 579'를 내놓았다. / 공덕=김아름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책에서 소개한 집들은 그나마 장(醬)맛이 살아있는 곳들로, 죽기 전 꼭 한 번 가볼 만 하다.”

식객 황광해, 누구보다 음식 맛에 대해 냉정하고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맛은 주관적일 수 없으며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누구보다 한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식객 황광해.

<더팩트>는 최근 30년간 전국 3500여 음식점을 누비며 찾아내 ‘한국맛집 579’를 펴낸 식객 황광해를 만났다. 그가 말한 한식의 맛은 무엇이고 새 책 ‘한국맛집 579’에 실린 맛집은 어떻게 꼽았는지를 들어봤다.

◆ “한식의 맛? 삭히고 섞인 맛의 조화…장(醬)맛이 좋아야”

그가 쓴 한국맛집 579에는 그나마 장맛이 살아있는 집들이다. 그는 한식에는 레시피가 없다. 집집의 장맛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광해 제공
그가 쓴 '한국맛집 579'에는 그나마 장맛이 살아있는 집들이다. 그는 "한식에는 레시피가 없다. 집집의 장맛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광해 제공


곳곳에 널린 게 맛집이다. 맛집이라니 너도나도 한 번쯤 찾아가 본다. 그런데 그 ‘맛’이라는 것을 도통 모르겠다. 맛있다 하니 그냥 맛집이구나 하기 일쑤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식객 황광해가 ‘한국맛집 597’를 내놓았다. 전국에 그렇게 음식점이 많고 맛집이라 곳만 꼽아도 이보다 많다. 그런데 고작 579곳이라니…. 참, 깐깐하고 까다롭다.

‘한식의 맛’은 무엇일까.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한식은 맛없는 생선, 고기, 채소를 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진귀한 음식재료로 만드는 것만이 한식의 맛을 살린다고 할 수 없다. 너도나도 음식재료 고유의 맛을 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실제 다녀본 맛집 중 그런 집은 많지 않다.”

알 것 같은 말이면서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다. 맛없는 것들을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한식의 맛은 삭히고 섞인 맛의 조화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장(醬)맛이다. 한식은 장이 식재료의 맛을 살리면서 섞어서 삭힌 맛과 함께 제3의 맛이다. 한식의 맛은 장맛이다.

고 백남준 씨의 비디오 아트는 비빔밥이다. 충돌하고 화합하기 때문이다. 한식의 맛이 바로 그렇다. 한식엔 레시피(recipe: 음식을 만드는 방법)가 없다. 집집의 장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이 60종 정도 된다고 치면 바탕은 된장이다. 그런데 장맛은 오래전에 망가졌고, 음식재료의 개량(改良: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침)은 개악(改惡: 고치어 도리어 나빠지게 함)이 됐다.”

우리가 찾는 식당과 집에서 사용하는 감미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육수를 내고 비법 양념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설탕, 간장, 된장, 고추장 등등은 대동소이하다.

◆ “밥상은 아직 식민지배 아래에 있다”

그는 한식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황광해 제공
그는 한식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황광해 제공


그는 '한국맛집 579’ 머리말에서 ‘한식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라고 적었다. 한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요즘처럼 한식이 세계 곳곳에 소개되고 있는데 ‘한식의 식민지배’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술상의 안주를 밥반찬으로 받고 희희낙락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방향을 잃은 한식밥상이 채 원래 모습을 되찾지도 못했는데 ‘한식세계화’는 진행되고 서양, 일본 음식은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다.

밥상은 아직 식민지배 아래에 있다. 문화와 산업이 뒤범벅이다. 음식문화는 정립되지 않았는데 음식산업은 저 멀리 앞장을 서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서 먹고 있는 밀가루, 설탕, 소금, 간장, 술 등등 대부분이 해방 후 일본에서 고스란히 가져온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한국의 맛을 내는 재료들로 착각하며 만들고 그것을 먹는 셈이다.”

말에 거침이 없다. 인터뷰 중 특정 기업이나 일부 음식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했다. 또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들도 사실은 일본이나 중국 등이 이른바 원조였다. (어떤 음식인지 말하고 싶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어 적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음식들이다.)

◆ “맛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는 수많은 블로거가 음식 맛은 주관적이라고 하는데 잘못됐다. 맛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아 주관적이라고 결론 내린다고 지적했다./황광해 제공, 김아름 기자, 네이버 한식 블로그 검색 갈무리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는 "수많은 블로거가 음식 맛은 주관적이라고 하는데 잘못됐다. 맛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아 주관적이라고 결론 내린다"고 지적했다./황광해 제공, 김아름 기자, 네이버 '한식 블로그' 검색 갈무리


거침없는 그의 말에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맛있다고 먹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는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먹는 것을 배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음식은 기호식품이며 각자가 맛을 느끼는 게 다른데 맛을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40대의 맛집 블로거가 대다수다. 블로그 하는 사람들 말이 ‘가봤다’다. 가봤으니 음식에 대해 말해도 된다는 식이다. 우리는 의·식·주 중에서 ‘식’은 공부를 안 한다. 그렇다 보니 막상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맛은 주관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공부하지 않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음식은 기호식품으로 개인마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주관적’이라는 말이 맞는다고 느껴질 수밖에…. 그런데 아니란다.

“화장은 먼저 한 사람이 가르쳐준다. 화장하는 법을 배우면 그 방법을 알고 뭐가 뭔지 안다. 그런데 음식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니 잘 모른다. 그나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좀 낫다. 의식주 중에서 유일하게 식(食)을 배우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조미료에 익숙해져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 가도 음식재료 고유의 맛을 모른다. 마치 조미료의 맛이 음식재료 맛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맞는 말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다저렇다 말한들 설득력이 없다. 그가 펴낸 새 책 ‘한국맛집 579’는 지금껏 그가 말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런 집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심지어 그는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집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국맛집 579’에 소개된 집들은 최근 1~2년까지 다녀본 곳이다. 나름 장맛이 아직 남아있는 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책 속에 *표시된 곳은 한 번쯤 가볼 만하다.”

사실 새 책 ‘한국맛집 579’를 위한 인터뷰였다. 그런데 정작 책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도 책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 것 같다. 그가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썼고 맛집을 꼽아서 넣었는지….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직장인들, 우리의 맛을 찾는 어르신, 가족들과의 외식,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고민하는 남성, 맛집 여행자 등 그의 책 ‘한국맛집 579’는 바이블이다. 하루에 한 집씩 찾아다닌다 해도 1년을 훌쩍 넘긴다. 또 이 책에는 이미 우리의 먹을거리로 한자리 차지한 ‘자장면’과 ‘짬뽕’ 맛집도 실렸다.

여전히 회사 근처 또는 주말 나들이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국맛집 579’는 분명 선택장애를 도와줄 나침반이 될 것이다.

cuba20@tf.co.kr
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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