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고 현장에 가짜 영웅이 판치고 있다. 일부 언론이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이를 분별 없이 보도하면서 가짜 영웅을 재생산하고 있다./영화 '피노키오', 더팩트DB |
[더팩트 | 김아름 기자] 사고 현장엔 어김없이 영웅이 등장한다.
영웅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사람을 구한다. 자기 목숨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모두가 영웅의 활약상을 앞다퉈 말하며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실제 사고 현장엔 영화에 나오는 진짜 영웅보단 영웅이 되려는 피노키오가 더 많다.
<더팩트>는 생사를 다투는 사고 현장에서 일어난 '가짜 영웅담'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깔린 영웅 신드롬을 살펴봤다.
지난 17일 일어난 '판교 환풍기 붕괴 사고' 당시 40대 남성이 다친 사람을 구했다고 말해 영웅이 됐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더팩트DB |
◆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살신성인 40대' 모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당탕!'
외마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수십 명이 순식간에 20여 미터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강모(47)씨가 무너져내린 환풍기 속으로 뛰어 들었다. 강씨는 다친 사람을 하나 둘 끌어올리며 구조 활동을 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도 크게 다쳤다. 분당제생병원에서 2시간 가까이 치료를 받은 강씨의 구조담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는 "나도 환풍기 아래로 떨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10분간 의식이 남은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사고 현장에 보이지 않은 영웅이 나타났다'고 보도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그의 활약상은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판교테크노벨리에서 발생한 환풍기 붕괴 참사 현장에서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강씨의 영웅 행세는 얼마 못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고대책본부가 언론 보도 뒤 강씨 이름을 확인했으나 부상자 명단과 구급 일지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논란이 일자 강씨는 사고 이튿날 "사람을 구했다는 얘기는 모두 거짓"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사고 당시 환풍구 시설 끝 시멘트에 걸터앉아 있다가 환풍기 바깥쪽으로 넘어졌다"며 "거짓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평소 존재감이 없고 사회 지위가 낮은 '외톨이'가 관심을 끌려고 영웅 행세를 종종 한다"며 "주로 이들은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 이를 엉뚱하게 표출한다"고 설명했다.
윤성옥 경기대학교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대중은 미담과 영웅담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언론이 정확하지 않는 정보를 퍼뜨리면서 이런 이상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가짜 영웅담은 군에서도 일어난다. 지난 2011년 8월 김포 한강 하구에서 물에 빠진 후임병을 구한 육군 병사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역시 군이 조작한 내용이었다./MBN 뉴스방송 갈무리 |
◆ '軍도 영웅 조작' 의로운 죽음 알고 보니 '단순 실족사'
임 병장(당시 22세)은 지난 2011년 8월 김포 한강 하구에서 물에 빠진 후임병을 구한 뒤 목숨을 잃었다.
언론과 군은 그의 죽음을 '정의로운 희생'이라며 앞다퉈 알렸고 숨진 임 병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부대원들의 진술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발표와 달리 임 병장은 혼자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고 되레 구조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진 후임병이 임 병장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헌병대 등이 재조사를 해 사실을 확인했다.
의로운 죽음은 단순 실족사였고 이를 조작한 부대 상관은 보직 해임 당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군은 폐쇄성이 짙어 사회 감시를 덜 받다 보니 이를 미화하고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피해는 감추고 좋은 이미지만 만들려는 군의 잘못된 문화가 큰 문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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