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아이가 희망이다
[TF이슈현장] '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사교육 부채질 하는 교육부"
입력: 2018.04.17 00:01 / 수정: 2018.04.23 16:35
교육부가 오는 3월부터 어린이집 영어 교육을 금지시켜 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했다. 현장에선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조부모의 손을 잡고 등원하는 어린이의 모습. /김소희 기자
교육부가 오는 3월부터 어린이집 영어 교육을 금지시켜 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했다. 현장에선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조부모의 손을 잡고 등원하는 어린이의 모습. /김소희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아이를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선배 학부모'들은 영어교육을 받고 입학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차이가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영어학원을 따로 보내야 하나 걱정이에요."(서울 목동 6살 아이 학부모)

"한달에 100만 원 한다는 영어유치원은 왜 규제 대상이 아닌 건가요? 한달에 3만 원만 내도 아이가 영어 흥미를 붙일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서울 신당동 3살 아이 학부모)

교육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학부모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자녀를 등원시키고 있는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는 예고편이었냐"며 "비싼 영어유치원만 배불리는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27일 교육부가 만 3~5세에게 적용되는 누리과정에서 한글과 영어 교육을 배제하고 자유놀이를 중점에 둔 교육을 하라는 내용의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관련 보도가 나간 후 학부모와 어린이집 측은 즉각 반발했다. 육아·교육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성토 글이 쏟아져 나왔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28일 "결정된 바 없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과 지난 2일 보건복지부에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집도 새 학기부터 영어 특별활동 수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교육부는 5일 "(어린이집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곧 새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달 안에 결론지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사실을 인정했다. 교육부는 전국 9000곳(70만 명) 유치원을, 복지부는 4만1000곳(145만 명) 어린이집을 관할한다.

누리과정 교육 제도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유치원·어린이집과 소통하는 교육청은 교육부의 입장 번복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일선 유치원에 공문 등을 통해 12월 중순 교육부로부터 통보받은 금지 방침을 전달한 상황이다. 이에 17개 시도교육청 유아담당 장학관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많은 어린이집은 월 3~4만 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 특별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S어린이집 교사 김모(24) 씨는 "뉴스에서 봤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졌다"며 "벌써 영어유치원을 언급하는 학부모들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상당수 어린이집은 한달에 3만~4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현재 상당수 어린이집은 한달에 3만~4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4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박모(37) 씨는 "맞벌이 학부모들은 직접 아이를 가르칠 시간이 없어서 사교육을 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제도 도입 시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이뤄졌고, 방법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하소연 한다. 유아교육 관련법이나 교육과정을 개정 없이 교육부가 '행정지침'이라며 밀어붙이는 건 일방적인 행정처리라는 논란도 나온다.

복지부는 행정절차상 교육부의 요청 대로 당장 3월 영어교육 금지를 시행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어 수업을 금지하려면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하고, 개정안을 만들어 40일간 입법 예고를 거쳐야 한다. 현재 복지부는 어린이집 특별활동을 하루 3과목 이내로 제한하는 것 외에 별다른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

교육계에서는 앞서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 때처럼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미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된 만큼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정부가 같은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육아·교육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틀째 성토 글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유치원 방과 후 영어 수업 폐지 반대 글이 계속하여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육아·교육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틀째 성토 글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유치원 방과 후 영어 수업 폐지 반대' 글이 계속하여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아울러 공교육 정상화라는 취지를 살리려면 영어 사교육을 규제하는 게 먼저라는 목소리도 높다. 방과후 영어수업을 계속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십 개가 넘는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폐지 반대' 글이 올라왔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아니라 영어학원 활성화법", "학원에서도 영어수업을 금지해주세요"라는 글도 있다. 영어유치원 시장 규모는 지난해 2700억 원을 넘겼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로 영어 사교육 시장만 커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며 "교육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어린이집 교육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교육 현장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고 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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