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률, 한국 당구 국제무대 개척자
'한국 당구의 선구자' 김경률(전남당구연맹)이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한국 당구를 세계 무대로 이끈 주인공이었지만, 완전히 꽃피기 전에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환한 미소로 당구 팬에게 널리 알려진 김경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한국 당구계 텃밭을 일구고 떠난 그의 업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23일 국내 당구계에 충격적인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국 당구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현재 국내 랭킹 8위, 세계 랭킹 18위 김경률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경찰은 김경률이 22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의 자택인 아파트 20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밝혔다. 23일 자기 생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주위에선 자살 가능성이 언급됐다. 하지만 김경률은 지난 9일 당구대 천 업체 '이완 시모니스'와 후원 계약을 맺으며 선수 생활에 의지를 보였다. 대한당구연맹은 23일 '김경률이 자택 아파트 베란다를 정리하다가 실족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확실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경률은 변방이던 한국 당구를 세계 무대로 끌어올린 개척자다. 16살 늦은 나이에 당구를 시작해 2003년 SBS 당구대제전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국내 당구계를 대표하는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국내 무대에서 주축에 머물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2004년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투어에 나섰고 2006년 세계랭킹 12위에 오르며 한국 당구가 감히 넘보지 못한 세계 정상을 향한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국제 대회 시드권을 받아 누구도 가지 못한 길에 서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초반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김경률은 2007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서 공동 3위로 입상하며 기량을 뽐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며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김경률의 상승세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08년과 2009년 수원에서 열린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선 각각 준우승과 공동 3위를 차지했다. 2010년 터키에서 열린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서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18년 만에 한국 당구계에 국제 대회 우승을 안겼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그는 2011년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고 2013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김경률의 성공은 최성원(38·부산시체육회), 조재호(35·서울시청), 강동궁(35·수원시청) 등 국내 동료 선수들의 국제 대회 선전으로 이어졌다. 김경률이 선구자 임무를 톡톡히 한 것이다. 이들은 먼저 도약한 김경률의 업적을 바라보며 거부감 없이 세계 무대에 도전했다. 김경률 혼자서 힘들게 갈고 닦은 터전이었다. 스스로 돈까지 들이며 국제 대회에 출전한 김경률의 노력이 없었다면 국내 당구계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을지 모른다. 김경률의 노력은 개인의 발전을 넘어 한국 당구계에 커다란 역사다.
지난해 김경률은 여러 부침을 겪었다. 선수로는 최근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슬럼프에 빠졌다. 사업가로 변신해 개인 당구장을 열고 보험업 등에 뛰어들었으나 지지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죽음의 원인이 자살인지 실족사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항상 환한 웃음으로 한국 당구계를 위해 애쓴 그의 노력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아쉽게 요절하며 다시 한번 세계 정상을 휩쓸 기회를 놓쳤지만, 한국 당구계와 팬들은 그의 공헌을 인정한다. 한국 당구의 세계 무대 도약에 이바지한 김경률의 명복을 빈다.
[더팩트|김광연 기자 fun350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