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 '밥' 먹여주나요?"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법(法), 참 어렵습니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선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수많은 법을 쏟아내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단어 자체도 딱딱하고, 법안을 발의했으나 낮잠을 자는가 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19대 회기 종료로 9800여 법안이 자동폐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런데도 20대 국회 역시 초반부터 '입법 전쟁'이 펼치지고 있습니다. <더팩트>는 법안 취지를 조명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과 향후 전망 등을 SNS 툴을 이용한 [@법안]으로 해부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지난달 1일 한 패스트푸드업체에서 배달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던 20대 청년이 택시에 부딪혀 숨졌습니다. 청년과 택시 운전자 모두 신호를 어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km를 넘는 거리를 '20분' 안에 햄버거를 배달하고자 청년은 오토바이 악셀을 당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년의 죽음으로 5년 전 폐지된 줄 알았던 패스트푸드업체들의 '30분 배달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최근 초선의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분 배달 강요''동전 월급' 등을 근절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규제 조치를 담은 이른바 '알바존중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습니다.
'알바존중법'은 청년들의 눈물을 닦을 수 있을까요?
☞트윗(@THE FACT) '이용득 의원, 청년 애환 담은 알바존중법 발의'

이 의원이 지난 20일 대표 발의한 '알바존중법'은 우선 '강제 근로 유형'을 구체화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규제토록 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조 중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을 ▲작업 중 출입문 폐쇄 등 근로자의 육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 ▲근로자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괴롭힘 등에 의한 부당한 업무 강요 ▲그 밖에 사회통념상 부당한 구속수단으로 인정되는 업무 등으로 세분화했습니다.
또 제8조 중 "하지 못한다"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폭언을 하는 등 근로자를 정신적·정서적으로 학대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로 강제성을 부여했습니다.
이와 함께 근로 장소 및 종사 업무 근로계약서상 명시 의무화(제17조), 임금의 지폐 지급 또는 계좌입금 의무화(제43조 2항) 등을 명시했습니다. 이는 임금 체불에 문제 제기를 하거나 진정을 하면 일부 사업자들이 보복성으로 동전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43조의2에 따라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는 이 법이나 그 밖의 노동 관계 법령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제43조의3)는 내용도 포함했습니다.
이 의원은 법안 발의 당시 국회 기자회견에서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국내 대형 패스트푸드 회사 배달원으로 종사하던 청년 노동자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접했고, 그 원인으로 '30분 배달제'가 지적됐다"며 "어른들과 대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매년 희생되는 배달 청년노동자들이 있었고, 이 문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트윗(@ken******) "이전에도 청년을 죽여놓고, 정신 못 차렸네"

'30분 배달제' 사망 사고와 관련 법안 발의 소식에 누리꾼들은 "청년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30분 배달제가 없어진다고 했을 때 그렇게 기뻤는데... 20분 배달제로 부활했었군요. 배달 노동자 또 사망... (@labor*****)""저게 기든아니든 저런 메뉴를 생각해낸 자체가 제대로 사고가 박힌 사람인가? 30분 배달제로 사람 죽여놓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ken******)""안전이 최우선인데 근본적으로 배달을 재촉하는 인식이 사라져야 된다(@th*****)""빨리빨리만 없었어도.....(@akj*****)"등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사실 '30분 배달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2월, 피자 배달 알바를 하던 18살의 한 청년 역시 버스와 부딪혀 사망했습니다. 당시 청년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업주가 30분 내에 배달을 강요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배달원에게 벌금을 물어 시간에 쫓기게 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곧 시민사회단체의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으로 이어졌고, 피자업체들은 뒤늦게 '30분 배달제'를 폐지키로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20대 청년의 죽음이 보여주듯 일터에서 '빨리빨리'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20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1086명의 알바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배달 아르바이트 도중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지' 묻자, 21.2%의 응답자들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사고 이유로 '촉박한 배달시간과 과도한 배달물량 등에 따른 무리한 운전'이라는 답변이 52.6%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팔로(@THE FACT) "'빨리빨리' 문화, 인식 개선 뒷받침돼야"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패스트푸드업체들이 여전히 각 알바들의 시간 내 배달 실적을 챙기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청년유니온은 지난 3일 성명에서 "청년 노동자를 위험과 죽음으로 내모는 배달 경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며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배달 노동자들이 배달에 나설 때에는 고객에게 이미 안내 된 '도착 예정시간'이 주문서와 POS(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를 통해 제시된다. 배달 제한시간은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며, 매장에 따라 직원의 인사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시간 내 배달제 폐지'를 감시할 제도의 부재입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배달 알바생들의 교통사고의 경우 고용노동부는 지침 상 재해조사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아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문화와 인식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청년들의 눈물은 계속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주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7일 '프레시안'에 '피자30분 배달제, 어떻게 사라졌나? 햄버거는?'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와 시민의 공동의 책임'을 넘어선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며 "노동자의 안전 등을 기본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법과 정책을 통한 규제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이 의원은 앞서 회견에서 "향후에도 청소년, 청년노동자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부당한 영업 형태를 근절하고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근로감독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