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최근 경남 양산 자택에서 칩거 중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시점 때마다 페이스북에 올린 시(時)로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2일 문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시와 함께 한 산행'이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시인인 더민주 도종환 의원의 '여백'과 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두 편의 시를 소개했다.
'여백'은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나무 뒤에서 말없이/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라고 쓰여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어디 한 두 번이랴/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오늘 일을 잠시라도/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낮게 낮게 밀물져야한다/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라는 내용이다.
문 전 대표는 "어제 (경남) 진주의 부부 몇 쌍과 함께 함양에서 남원 실상사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면서 "처음 경험한 일인데 그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시를 함께 낭송했더니 놀랍게도 산행 내내 시가 머리 속에 맴돌아 시와 함께하는 산행이 됐다"고 근황을 전했다.

미묘하게도 문 전 대표가 두 편의 시를 페이스북에 올린 날은 더민주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당내에서는 사실상 김 대표 체제 연장인 전대연기론이냐, 7~8월 조기 전대 개최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3일 더민주는 8월~9월 말 열기로 한 전대까지 김 대표 체제를 연장키로 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달 24일엔 이해인 수녀의 '산을 보며'라는 시를 올렸다. 김 대표와 지난달 22일 만찬 회동 후 차기 당권 문제 등에 대해 양쪽 설명이 엇갈리며 갈등할 때였다. 이 시는 '늘 그렇게/고요하고 든든한/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나는 창을 열고/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6일 밤엔 페이스북에 고(故)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란 시를 올려 눈길을 끌었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고정희 時 '상한 영혼을 위하여 中)
당시 문 전 대표와 더민주 탈당 전 안철수 의원(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이 '혁신 전당대회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던 때로, 시 내용대로 문 전 대표가 "꺾일 때 꺾이더라도 가야할 길은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은둔하고 있는 문 전 대표의 다음 '시(時)'와 '심(心)'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