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아이돌①] ‘영턱스클럽’ 최승민 “새 앨범 수입 ‘0원’…허탈·분노”
입력: 2011.06.22 14:10 / 수정: 2014.06.20 13:39

춤꾼서 ‘아이돌 1세대’로 명성…공연기획·제작자로 제2의 삶
한때 사채 쓰다 빚더미·산중 기거…“그래도 난 아티스트다!”

[손현석 기자·공경민 객원기자] 2011년, 아이돌 돌풍이 매섭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할 기세다. 최근 여러 아이돌 스타를 보유한 국내 한 연예기획사가 주최한 프랑스 파리 공연은 숱한 화제를 모으며 유럽의 한류 열풍을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이제 아이돌이 대중문화 최고의 아이콘이라는 데 이견을 달 이는 없을 듯싶다. 이 모든 게 ‘1세대 아이돌’의 성장과 발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1세대 아이돌’은 방송가나 연예계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인기는 한낱 거품”이란 외마디만 남긴 채 전직하거나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이 허다하다. 물론 재기를 노리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일 뿐이다. 이런 시점에서 더팩트 매거진 섹션 ‘선데이(SUNDAY)’에선 1990년대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로 활동했던 이들을 차례로 만나 ‘대한민국 아이돌’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국제빌딩의 한 사무실. 모자를 눌러쓴 30대 중반의 한 남성과 마주쳤다. 언뜻 보기에 일반 직장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연예인 포스’도 느껴지질 않았지만…. 직업정신에 우러나온(?) 신상 파악에 정신 없던 찰라에 그가 먼저 취재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때 그 아이돌’의 첫손님인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이었다.

“전설의 아이돌? 앨범 내도 10만원 벌이가 안돼…”

최승민은 솔직히 말해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턱스클럽’ 원년멤버이자 실력파 춤꾼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특히 ‘영턱스클럽’은 그에겐 잊지 못할 ‘훈장’과도 같은 존재다. 아직도 놓지 않은 ‘끈’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오랜 절친’ 박성현과 손잡고 객원 멤버 이민경을 영입, 새 앨범 ‘어라이즈(Arise)’를 발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재기를 향한 몸부림의 결과는 예상보다 참담했지만.

근황을 묻는 질문에 먼저 새 앨범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겉으로 드러내려 안 했지만 다소 속상한 모양이었다. “(새 앨범 낸 후) 아직까지 음원 유통사에서 한 푼도 못 받았어요. 다음달에 정산된고는 들었지만 가수들이 음원이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받아볼 수도 없고,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니…. 더 웃긴 건 음원 수입이 10만원 이상 되질 않으면 적립된다는 거죠.”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음원 수익 논란도 있었지만 ‘덜 유명한’ 가수들의 경우에 음원을 통한 돈벌이가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주장이었다.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그에겐 낯설고 힘든 환경이다. ‘영턱스클럽’은 1990년대 후반 ‘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의 기획 아래 ‘정’ ‘질투’ ‘타인’ ‘하얀 전쟁’ ‘아시나요’ 등 히트곡을 내세워 왕성할 활동을 펼쳤다. 충분히 ‘전설의 아이돌’ 계보에 낄만했다. 그러나 3집 이후 주축 멤버들의 탈퇴로 쇠락했고, 2002년 원년 멤버들의 재합류로 부활을 꾀했으나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 임성은, 송진아, 한현남 등 높은 인기를 얻었던 여성 멤버들은 각자 새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아이돌로 바쁘게 보낸 20대…“이주노에게 서운했다”

처음부터 아이돌 스타를 꿈꾸진 않았다는 최승민. 지금도 자신을 ‘아티스트’ ‘춤꾼’이라 불러달란다. “춤꾼들의 성지, 이태원 문나이트 클럽에 드나들 때 ‘상위 레벨’로 인정받았어요. 그러다 존경하던 현석이형(양현석)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죠. 그때가 23살이었던 거 같네요. ‘서태지와 아이들’ 백댄서 생활도 하게 되고…. 그러던 중에 주노형(이주노)이 댄스그룹을 만든다며 저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고심 끝에 수락했고, 현석이형 측근들한테 ‘배신자’라는 소리도 듣기도 했죠. 참, 현석이형과는 영턱스클럽 2집 이후 미국서 활동하면서 서운했던 관계를 풀었어요.(웃음)”

그 후 소위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가 됐다. 물론 자신보다 다른 멤버들한테 인기가 더 쏠렸지만 최승민은 개의치 않았다. 춤을 마음껏 추고 인기도 얻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금전적 이익이었다. 그는 “가요차트 1위도 하고 그랬지만 항상 월급 200만원 받았어요. 백댄서 시절에 받던 금액의 2배 밖에 되질 않았죠. 매일같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는데 말이죠”라며 “지금도 주노형한테 악감정은 없지만 그때는 정말 서운했어요. 그래서 성은이(임성은) 누나도 먼저 나가고, 저랑 다른 멤버들도 결국 나가고…”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당시 최승민의 모토가 그랬다. 잠시 이주노 곁을 떠났지만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의리란 게 뭔지…돌아와서 후배들을 키우는데 주력했어요. 고릴라크루나 팝핀현준 같은 친구들이 그때 탄생했죠”라며 “그런데 다시 돈도 없는 힘들 생활이 시작됐고, 주노형은 ‘돈 없다’며 외면하고…결국 99년도에 주노형을 떠나 KMTV 힙합 강사로 취직해 돈을 벌어서 일본으로 건너가 실력파 춤꾼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어요”라고 전했다.

공연문화 기획자로 도전과 좌절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이주노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일본 춤꾼들을 국내로 데려오니깐 주변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워낙 반응이 좋아서 ‘아, 이들과 뭔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또다시 주노형한테 연락이 왔어요. ‘다시 판을 내니깐 같이 해보자’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이주노 솔로 1집 ‘무제의 귀환’이었어요. 하지만 그 야심찬 프로젝트는 흥행 실패로 이어졌고, 주노형과 마지막으로 결별하고 말았죠.”

그런 다음 그가 뛰어든 분야가 공연문화 기획이었다. 너무나 유명해진 ‘비보이 배틀’의 원조 격인 ‘힙합 배틀’ ‘하우스 배틀’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댄스 실력보단 화려한 스킬과 흥행에 관심 많은 투자자들한테 치이고 상처를 받았다. 그러다 제 뜻도 펼치지도 못한 채 2002년 소속사가 바뀐 ‘영턱스클럽’ 멤버로 합류해 6~8집 활동을 임했다. 그의 말대로 “무대에 서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영턱스클럽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걸 느끼고 댄스스쿨을 차렸어요. 최고 랩퍼나 댄서들이 모이는 집합소였죠. 때마침 모 업체에서 클럽 운영과 공연기획 책임자로 초빙했어요. 그때부터 비보이 챌런저 같은 대회, 하우스 파티 등을 기획하며 지냈는데, 이마저도 적자 행진과 후배들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접어야만 했습니다. 슬픈 마음에 레게 머리도 다 풀고 정장 입고 ‘별사탕’이란 업체에 들어가 댄스교육 강사로 일했지만 그 업체에서도 일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교육사업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죠.”

산중에 칩거하다 발견한 ‘희망의 빛’…“이제부터 시작!”

이후 음반 제작 및 공연 팀도 운영도 해봤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그는 “그나마 모아둔 돈도 다 날리고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사채 때문에 빚도 6000만원으로 불어났어요. 진짜 힘들었던 시기였죠”라며 “더는 살 의욕도 없어져 경기도 연천의 한 산으로 들어가 기거했어요. 거기서 살다 죽으려고… 그렇게 산속에서 지내길 20일째, 갑자기 인근 군부대에서 한줄기 빛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남들한테 말하기 쑥스럽지만 그 빛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죠”라고 털어놨다.

2년 전 다시 일어선 최승민은 박성현과 다시 의기투합해 ‘영턱스클럽’ 타이틀을 걸고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는 “성현이한테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외부 행사나 밤무대 활동으로 빚을 정리했죠”라며 “빚을 정리한 뒤 통장에 남은 돈이 3000원이었어요. 그러고 나니 후배들을 다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당 5000원에 대여 가능한 연습실을 빌려 열정 있는 이들을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라고 무척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일정한 수입 유지를 위해 ‘영턱스클럽 최승민의 방과후 학습’이란 타이틀로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밖에 기타 수입으로 꽤 자리를 잡았고, 연습실도 확장해 나갔다. 또 이미 언급했지만 ‘YTC(영턱스클럽)’ 새 앨범도 낸 데 이어 신개념 음원 유통을 꿈꾸는 ‘튠CC’ 사이트와 손을 잡고 가수(아티스트) 중심의 공연기획을 진행하는 등 ‘긍정의 힘’을 몸소 체험 중이다.

인터뷰 도중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는 ‘1세대 아이돌’ 출신의 자부심과 회한이 동시에 깔려있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꿈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직까지 무대로 뛰고 싶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실은 제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춤을 1~2분 이상 추게 되면 척수에 이상이 와서…그런데도 무대에 서고 싶은 열정이 남아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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