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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브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 개인 훈련방에서 랩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노시훈 기자 |
[심재걸 기자] 오전 6시. 열일곱살의 여고생 한예지는 여느 또래처럼 등교를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치고 교문 앞을 나서는 오후 5시, 한예지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꿈을 향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예지는 가수 기획사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서울 청담동의 연습실을 향한다. 이 생활도 어느덧 1년 6개월이 흘렀다. 제2의 포미닛, 지나, 에이핑크를 꿈꾸며 매일같이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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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컬 트레이너가 연습생의 발성 교정을 하고 있다. /사진=노시훈 기자 |
◆제발 하루가 40시간 정도 됐으면…
연습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춤 연습과 유산소 운동은 필수 코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가창에 필요한 복식·단전 호흡을 위해 편안한 복장은 없어선 안 된다.
오후 10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쉴 틈이 없다. 가창의 이론과 실제를 아우르는 보컬 레슨, 춤 연습, 외국어·연기 수업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주말에 치러지는 주간 평가의 미션도 틈틈이 챙겨야 한다. 이번 주엔 '꿈'을 주제로 프리 스타일 랩을 선보여야 한다. 월말 평가가 겹치는 주에는 더욱 바쁘다. 때문에 건물 두 개층을 연습실로 사용하는 큐브엔터테인먼트는 해만 떨어지면 곳곳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로 가득찬다.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쏟다 보니 끝무렵이 되면 다소 출출해지지만 야참은 꿈도 못 꾼다. 밤에 섭취하는 음식은 다이어트에 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연습에 앞서 저녁식사도 지정 식당에서 다이어트 식단이 제공될 정도니 간식은 참아야 한다.
숨 가쁘게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시침은 12를 가리킨다. 학교 과제, 인터넷 서핑 등을 하고 침대에 몸을 맡길 쯤이면 새벽 2시가 돼 있다. 네 시간은 잘 수 있다.
눈을 감고 잠이 들 때까지 속에선 한바탕 소용돌이가 친다. '오늘도 이렇게 끝났구나', '가수 되기가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네', '오늘은 노래가 왜 그렇게 안 됐을까',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데 이쯤에서 그만둘까' . 한예지의 경우는 이랬다. "꿈을 보고 참는다. 나를 위해…."

▲연습생들이 안무실에서 춤을 맞춰 보고 있다. /사진=노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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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실 입구 한 쪽 벽면에 연습생을 위한 조언들이 쓰여 있다./사진=노시훈 기자 |
◆음악 실력만 키우는 게 아니다
큐브엔터테인먼트에는 현재 30여명의 연습생이 있다. 이들을 지도하는 전문 강사와 관리자도 20명 가까이 있다. 보컬 트레이너엔 현직 가수도 포진됐다. 육성 시스템은 단순히 가창 능력을 키우는 수준을 넘어 인성적인 내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학교의 담임 교사와 같은 일을 하는 인원이 대여섯 명 있다. 이들은 연습생들의 수업 태도, 상벌점 제도 운영 등을 비롯해 고민 상담 및 학교 성적까지 관리한다. 숙소 생활을 하는 연습생들에겐 엄마 구실까지 한다. 매달 1~2회씩 인근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몸에 배도록 하기도 한다.
신민정 신인개발팀장은 "인성, 근성, 실력 등 연습생이 갖춰야할 덕목 중 1순위는 인성"이라며 "노래나 춤은 가르치면 실력이 향상되지만 인성은 오랜 기간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홍승성 대표의 철학이기도 했다. 홍 대표는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은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 열정과 가능성"이라며 "항상 이들에게 '너흰 소속 가수가 아니라 공동의 투자자'라고 알려준다. 그만큼 말과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신인 발굴은 제작자로서도 상당한 끈기를 요구한다. 인재를 뽑아서 수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큐브엔터테인먼트도 매출의 30%를 꼬박 신인 육성에 쏟아붓는다. 춤 연습실 두 곳, 체력 단련장, 5개의 개인 보컬 연습실, 레슨실, 어학강의실 등 수준급의 시설을 갖췄다.
홍 대표는 "엔터테인먼트도 기업화로 가는 길목에 있다. 좋은 인재는 좋은 교육에서 나온다"며 "우리 연습생들은 연예계 10년 미래를 말해 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아시아 스타가 곧 월드 스타가 되는 날을 향해 신인 양성을 게을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