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예계도 규모의 경제"…대중문화, 쏠림현상의 명과 암
[김지혜·나지연·서보현기자] 반찬 투정하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편식하지마. 건강에 안 좋다."
편식 1.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해 한쪽을 과잉 섭취하는 식생활을 말한다. 부작용은 심각하다. 우선 영양의 균형이 깨진다. 어린이의 경우 발육부진 등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편식 2. 편식의 대상이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그 대상이 문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문화의 기본이 다양성인 이상, 문화 편식은 정신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2010년, 대중문화는 편식 중이다. 영화, 방송, 가요 등 연예산업이 불균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연예계를 지배하며 생산자는 돈, 다시 말해 유행만 쫓게 됐고, 이는 생산자의 '편향'과 소비자의 '편식'으로 이어졌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의 산업화가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문화적 기반이 되는 다양한 토대들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뿌리에 물을 주지 않고 잎사귀만 닦는 식이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영화, 방송, 가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편식현상을 점검했다. 실제로 영화계에는 남성시대가 열렸다. 방송계에서는 장편의 뼈대가 되는 단막극이 사라진지 오래다. 가요계는 여전히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었다.

◆ 편식 적신호…"오직 하나만 쫓는다"
영화, 드라마, 음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기획하는 사람과 창작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표현하는 사람들까지도 하나의 유행 트렌드만을 쫓아가고 있다. 2010년 영화계는 남자 배우들이 지배하는 스릴러와 액션 일색이고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몸집 큰 영화들의 제작이 줄을 잇고 있다. 자연스레 여배우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고 독립 영화 역시 소외되고 있다.
드라마 역시 창의성과 아이디어 위주의 기획보다는 스케일과 스타를 앞세운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월화수목금토일. 주 7일간 방송되는 드라마는 총 20편, 그야말로 '드라마 천국'에 살고 있지만 신진 연출자와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단막극은 방송 3사를 막론하고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가요계는 아이돌 천하다. 아이돌의 춤과 노래와 대중들의 눈과 귀를 지배한지 오래다. 특히 기획형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후크송'과 같은 단순 반복 음악이 주류로 떠올랐다. 앨범 형태는 1~2곡만 수록하는 미니 앨범이 대세다. 아티스트의 음악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정규 앨범을 발매한 가수는 JK타이거, 서영은, 김태우 등 극소수 가수뿐이었다.
음악 방송 출연 역시 아이돌 위주, 이 마저도 대형 기획사의 지원 없이는 출연할 수 없는 권력 구조가 형성돼있다. 이로 인해 TV음악 프로그램에서는 더이상 록, 힙합, 트로트를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가요계는 이미 아이돌=주류, 비아이돌=비주류라는 경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편식의 부작용…선택 폭 하락vs문화 질 저하
쏠림 현상은 대중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듣고 싶고 음악이나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즐길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즉 소비자가 문화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닌 공급자가 제공해주는 데로 즐길 수밖에 없는 기이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는 산업 전반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요는 인스턴트화, 영화는 오락상품화, 드라마는 막장화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의 눈과 귀는 즐겁지만 정작 가슴을 울리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대중가요의 경우 수명이 1달을 넘지 못하는 인스턴트 노래가 대부분이다. 음악이라기 보다는 상품에 가깝다. 영화의 경우 스릴러, 액션 등 특정 장르 위주의 제작이 집중돼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 30%를 돌파하는 대박 작품들이 여러편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자극과 갈등을 범벅한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작품들이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교수는 "스케일은 화려해졌지만 이야기는 퇴보 중이다. 작품성을 담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볼거리만 강화하다 보니 드라마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산업 자체의 토양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되는 물량들은 손아귀 안의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편식, 왜…"돈 쫓는 연예계, 되는 것만 해라?"
그렇다면 연예 산업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는 쪽으로만 기획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불황이 가속화 되면서 연예산업 전반이 다수가 즐겨 찾는 쪽으로 기획과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며 "작품의 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업성을 미리 계산해 되는 것만 기획하는 식이다"라고 꼬집었다.
즉 영화는 흥행, 방송은 시청률, 음악은 판매가 최고 목적이다. 실제로 영화계는 성공한 영화의 장르와 공식만을 답습하고 있다. '추격자'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연이어 남성 투톱을 내세운 스릴러가 등장하고 있고 '해운대'가 대박을 터트린 후에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투자가 쏠리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드라마 역시 광고 수익이라는 방송사의 최대 목표 아래 작품의 질이나 시청자 평가와는 무관하게 시청률이 잘 나오는 막장 드라마의 제작을 가속화하고 있다. 가요계는 주수익이 앨범에서 음원으로 바뀌면서 컬러링이나 벨소리를 고려한 짧고 중독성 강한 '후크송'을 너도나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시장 자체가 작은 한국 연예 산업 구조가 야기한 결과이기도 하다. YMCA의 안수경 간사는 "우리나라는 영상, 음악 시장 자체가 매우 작아 다양성을 추구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그러다 보니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만 만들게 된다. 영화가 대표적이고 드라마, 음악도 최근 이런 경향이 가속화 되고 있다"고 전했다.

◆ 뿌리잃은 대중문화…"외형과 함께 내실을"
편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고르게 추구하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균형잡힌 발전을 할 수 없다. 수용자 역시 편향된 문화를 접하다보면 연예 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단기적으로는 돈이 되는 작품들이 산업의 규모는 키울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며 "크고 작은 작품들이 균형있게 기획돼 내·외실 모두를 튼튼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대중문화의 균형을 위해서는 산업의 토대가 되는 작품의 제작이 활발해져야 한다. 영화계는 독립영화, 드라마는 단막극, 가요계는 정규 앨범 등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미래를 염두해둔 다양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제작자들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다양성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열린 마음도 있어야 가능하다"며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경계 없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즐기는 선직 의식이 연예산업의 발전의 큰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각 영화·드라마 포스터, 앨범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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