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지혜·나지연기자] "가요계요? 서로 비슷한 유형과 스타일을 복제하는 형국입니다. 음악도 그래요. 유행만 따르다보니 수준도 낮고, 다양성도 찾아볼 수 없고…. 극도의 흥행만 바라보는 대형 기획사의 상업적인 움직임만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한 음악평론가에게 국내 가요계 상황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그의 대답은 냉소적이었다. 대형 기획사가 시장을 독식해 수익 창출에만 매달리다보니 음악의 전체적인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 돈 되는 유행 음악만 쏟아져 장르의 다양성은 무시된지 오래고, 구조상 중소 기획사나 인디 계열 음반은 들어볼 기회조차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무대 위에 비친 가요계는 여전히 화려하다. 하지만 그 이면은 멍투성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에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아이돌은 판소리를 해도 먹히는 시대가 왔다. 물량공세 속에서 작은 음악은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실제로 아이돌을 내세운 대형 기획사는 뭘 해도 되고, 음악으로 승부하려는 독립 기획사는 어찌해도 안되는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규모의 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가요계. 부작용을 짚어봤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다양성 상실이었다.

◆ 상업성 쫓는 가요계 - 대형기획사 독식
1990년대 가요계는 활황이었다. 100만장 이상 팔린 앨범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음반 시장은 반의 반토막이 됐다. 앨범을 10만장 팔면 성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위축됐다. 결국 급격이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힘이 센 자. 즉, 상당한 자본과 힘을 축척한 대형 기획사 뿐이었다.
한 중소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판매가 크게 줄면서 영세한 기획사들은 줄줄이 부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수익이 줄었기 때문이다"라면서 "대형 기획사들의 경우 그동안 축척해놓은 자본과 막강한 파워를 앞세워 작아진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기획사는 음반 제작할 기회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대형 기획사의 대부분은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음악 역시 돈이 될만한 것으로 집중됐다. 그리고 그 해법은 아이돌이었다. 10대 고정팬들의 꾸준한 구매력, 광고 시장으로 진출, 드라마나 예능 등 다양한 분야로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요계가 10여년 전과 비교해 아이돌의 비율이 높아진데는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음반사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지다보니 수익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당장에 눈앞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이돌에 집중하게 된 것도 이런 시장상황과 무관치 않다. 새로운 음악이나 가수를 내놓는 것에는 성공에 대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수익이 보장된 아이돌에 집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 독식의 부작용 - 골라 듣는 재미가 없다
사업가가 이익을 쫓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대중이 직접 음악을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각종 음원 사이트 20위권내 진입된 곡 중 3분의 2는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의 대부분 댄스, 그것도 후크송이다. 이를 제외한 락, 힙합, 펑크, 레게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은 제작조차 되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대형 기획사들은 인기만 있으면 무조건이라는 생각이다. 음악의 내용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서 "기획자나 작곡자의 생각대로 유행만 따르다보니 다양성은 무시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진지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언더 그라운드에 있는 싱어송 라이터 정도다. 앞으로 이런 이분화는 더 심해질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가요계가 아이돌 홍수다보니 대중의 음악 소비 환경도 한정적이다. 제작된 앨범, 음원 사이트에 있는 음악이 대체로 아이돌 혹은 유행을 쫓은 음악이니 그 중에서 취향에 맞는 노래를 고를 수 밖에 없다. 아예 다른 음악은 들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결국 골라듣는 재미를 잃은 소비자는 떠나고, 가요 시장은 위축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대학생 김혜정(24)양은 "음반 매장에 가도, 음원 사이트를 접속해도 전부 아이돌 음악 천지다. 그나마 이들 노래가 다 일렉트로닉과 후크에 집중되다보니 뭘 들어야 하는지 고르는 과정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힘이 빠진다"면서 "그러다보니 자연히 가요를 덜 듣게 된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홍보도 약육강식 - 중소 기획사의 설움
물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 대중이 듣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요계 구조상 이는 불가능하다. 설령 음반을 만들었더라도 중소기획사나 인디 음악은 아예 홍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방송사 출연과 음원 사이트는 물론 뮤직 비디오 하나 트는 것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적용된다.
수년간 음반 제작에 몸담았던 한 기획자는 "케이블 방송에 뮤직 비디오를 틀려면 클립을 구매해야 한다. 보통 월 500만원을 내면 40~50회를 틀어주는 방식이다. 지상파 방송이 끝나면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피디가 친분에 의해 선정하는 형식이다"라며 "그러다보니 신인이나 중소 기획사에서 만든 뮤직 비디오는 나오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방송 출연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친분관계가 많이 작용한다. 음원 사이트는 더하다. 아예 음반 유통과 관계된 회사들도 있다보니 자신들과 제휴 관계가 돈독한 가수들의 음악을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새 앨범이 나왔다고 모두 사이트 상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다. 방송도 순차적으로 돌아오는 시스템이 아니다. 홍보도 약육강식인 셈이다.
한 신인 가수의 매니저는 "사실 케이블에 백 번 출연하는 것보다 지상파에 한 번 출연하는게 효과적인데 피디들에게 출연 권한이 있으니 친분 관계없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 음반 제작자는 "대부분의 음원 사이트는 날짜대로 신보가 올라오는 시스템이 아닌 자신들이 곡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돈이 되는 음악이 아니면 벨소리나 컬러링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고 하소연했다.

◆ 해결책 모색 - 꾸준한 투자와 자유로운 경쟁
물론 문화도 사업이다. 수익이 없인 또 다른 문화의 창출을 불가능하다. 대중성을 쫓다보면 유행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음반 시장, 나아가 가요계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없을까? 가요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여러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 음반 기획사와 유통사들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다양성있는 음악을 제작하고, 시장을 키우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한 음반 유통 제작사 관계자는 "사업 영역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록 페스티벌을 여는 등 음악적인 것에 꾸준히 투자해 실제 음악 시장을 키우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원 시장도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대형 기획사 소형 기획사 나누지 않고, 가수 자체의 인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 대중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획사와 유통사 상관없이 제작된 음반 자체가 공평하게 노출되고, 소비자에게 선택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자는 이야기다.
한 인디 음반 제작 관계자는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활성화된 시장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튠코어같은 시스템을 들 수 있다"라며 "힘의 논리에 의해 음악의 인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곡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다양성과 구조적인 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사진 = YG·SM·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각 사이트 화면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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