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지혜·서보현기자] "작은 드라마요? 호평은 받겠죠. 하지만 시청률은 얻지 못합니다. 그럼 할 수 없는겁니다. 방송국도 일단 수익을 내야 하는데 돈이 안되는 드라마를 하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지금 상태에서는 사실상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KBS '천추태후'와 '산 넘어 남촌에는'의 연출을 맡은 신창석 PD의 한탄 아닌 한탄이다. 신 PD는 지난 2000년 KBS 단막극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가?'로 데뷔했다. 신 PD에게 단만극은 연출가의 첫 발을 딛게 한 기회였고 대작을 만질 수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 PD같은 연출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2008년을 끝으로 방송 3사의 단막극이 모두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규모와 시청률 전쟁에서 밀린 결과였다. 이후 작은 드라마는 기회를 잃었다.
드라마의 편식이 심해지고 있다. 일단 사이즈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10년 라인업만 봐도 그렇다. 현재 방송 중인 '추노', '제중원', '명가'를 비롯해 '동이', '거상 김만덕', '가야', '자이언트', '로드 넘버원', '전우' 등 초대작이 줄이어 방송 대기 중이다. 그에 반해 작품성있는 소규모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드라마도 '블록버스터'를 외치는 시대가 됐다. 드라마 편식으로 인한 문제점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짚어봤다. 또한 그에 대한 현장 제작진의 입장도 들어봤다.

◆ 드라마는 편식 중
드라마도 규모의 경쟁이다. 요즘은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살아남는 상황이다. 극단적인 예로 단막극과 특집극과 같은 '작은 드라마'의 부재를 들 수 있다. 현재 단막극을 유지하는 공중파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 MBC-TV '베스트극장'은 지난 2007년 폐지됐고 KBS-2TV '드라마시티' 역시 지난 2008년 종영됐다.
장르 편식도 무시할 수 없다. 주 시청자 층을 위한, 자극적이고 볼거리 위주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방송 3사의 드라마 중 미니시리즈는 20~30대 젊은 시청자에, 아침 및 주말 드라마는 40~50대 여성시청자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 농촌 드라마, 노인 드라마, 청춘물 등 소수를 위한 드라마는 자취를 감췄다.
드라마 뿐 아니라 그 내부에도 편중은 존재한다. 스타 PD, 작가, 배우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실력보다 이름값이 우선시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아이돌 가수가 드라마 주연을 맡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입 제작진과 신인 및 중견 배우들은 실력과 가능성을 알릴 기회 조차 얻기 힘들다.

◆ 다양성 부재, 드라마의 독
이 같은 쏠림 현상으로 생긴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박 공식을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만 계속해 나오고 있다. 신창석 PD는 "다양성 없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스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만 제작되는 것은 제 살 깎아 먹기식의 자기 복제가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적 팽창에 신경을 쓴 탓에 내실을 다지지 못하는 것도 경계할 점이다.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은 비례하지 않는다. 초호화 제작비와 톱스타로 기대를 모았던 SBS-TV '로비스트'가 혹평으로 시청률에서 고배를 한 것이나 KBS-2TV '아이리스'가 시청률과 별개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을 봐도 그렇다.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 안수경 간사는 "규모가 크다고 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로 '아이리스'는 규모는 상당했지만 할리우드 영화 짜깁기라는 오명과 함께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내실을 키우지 않고 몸집만 불린 부정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방송 인력의 자생력 여부도 문제다. 단막극과 실험극은 각 방송사의 PD의 연출 데뷔작이었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장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기회가 극히 제한됐다. 가뭄에 콩 나듯 나는 방송사의 미니시리즈 공고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드라마의 토대인 단막극이 무너지고 있다"며 "단막극 폐지는 궁극적으로 한국 드라마의 퇴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 시청률 지상주의, 현실의 벽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방송사는 '시청률→광고료→수익금→프로그램 존폐 결정' 구조로 움직이다. 작품성은 둘째치고 시청률과 광고료가 높아야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다. 드라마 라인업을 짤 때도 시청률은 고려 대상 1순위다. 방송사에서 시청률은 곧 생명이다.
신창석 PD는 "비주류 드라마는 제작 자체가 쉽지 않다"며 "PD와 작가는 전작의 시청률에 따라 후속작 방송 여부가 결정된다. 시청률이 낮은 작은 드라마에 제작진이 몰릴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신입 PD는 더하다. 연출을 하기 위해 '잘 될 것 같은' 드라마에만 몰두한다"고 밝혔다.
드라마 제작 시스템 변화도 편중 현상을 초래했다. 방송사 자체제작이 줄어 들고 외주 제작사의 참여가 급증하면서 수익을 강조하는 스타일이 자리를 잡았다. 최소의 제작비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드라마의 부익부 빈익빈을 극대화시킨 꼴이다.
단막극에 주로 출연했던 한 중견 연기자는 "외주 제작이 늘어나면서 편중 현상이 심해졌다"며 "외주 드라마는 무엇보다 수익을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스타를 선호하고 최저 인원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크다. 제작비가 부족하면 자연히 중견 배우는 퇴출 1순위가 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 드라마, 쏠림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작 드라마가 많아진 것 자체는 문제없다. 문제는 쏠림 현상이다. 상업성과 공익성, 주류와 비주류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곧 드라마의 질과 생명력과 직결된다. 마이너 없는 메이저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교수는 "실력있는 제작진과 참신한 소재 등 내실을 차리는 것이 급선무"라며 "상업논리를 이유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상황 묘사만 계속하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는 결국 드라마를 파괴하는 독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다양한 시청권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채로운 콘테츠 제공이 선행돼야 한다. 시청자가 스스로 안목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는 것이 공익을 추구하는 방송국의 덕목이다.
안수경 간사는 "이미 익숙한 것을 재탕만 하면 전반적으로 문화적 수준이나 안목이 발전하기 어렵다. 비주류가 주류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좋은 프로그램은 상업성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KBS,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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