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팬의 하루] "오빠! 미안해요, 사랑해요"…그들은 어떻게 사생이 됐을까? (종합)

  • 나지연 기자
  • 입력: 2009.09.29 13:39 / 수정: 2009.09.29 14:47

[ 나지연기자] "우리 오빠들의 개인 생활이 저같은 팬들로 인해 없어졌다는 건 미안해요. 가끔은 심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죠. 그렇지만 사생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오늘 봐도 내일 또 보고 싶고…, 너무 좋아하니까요"

저희들은 열혈 사생팬입니다. 처음에는 동방신기, 빅뱅 등 아이돌 가수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응원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2년 전 CD를 구입하면서 시작한 팬생활이 어느새 오빠들을 따라다니는 일로 바뀌어 있더군요.

사실 그전까지 스타들은 가깝고도 먼 존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오빠의 작은 표정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됐죠. 오빠가 웃으면 나도 웃고 오빠가 울면 나도 울고…. 이제 사생은 선택이 아닌 생활의 일부가 됐답니다.

우리들이 처음 만난건 인터넷 팬사이트를 통해서였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각각 달랐지만 한 그룹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짧은 시간에 친분을 쌓을 수 있었죠. 물론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달랐지만 정보를 공유하면서 금새 마음이 통했어요.

저희는 일주일에 적어도 2~3번은 오빠들의 집을 방문합니다. 이 뿐이 아니에요. 음악 방송, 콘서트, 시상식, 음식점, 카페 등 오빠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운이 좋은 날은 하루에 몇 번씩도 오빠를 만날 수 있죠. 하지만 얼굴조차 못보는 날도 허다하답니다.

그래도 사생은 저희에게 아주 중요한 일과랍니다. 오빠를 만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스타의 뒷모습이라도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이 제겐 큰 행복이거든요. 스타보다 더 바쁜, 때론 기자보다 더 많이 아는 우리들의 울고 웃는 사생 스토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 "안방순이에서 사생으로"

누구나 한 번쯤 가수를 좋아한 경험이 있을거에요. 저희들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답니다. TV에 나오는 오빠들의 모습을 모니터하고, 팬카페에 가서 스케줄을 확인한 뒤 응원글도 남기는 그런 일 말입니다. 아, CD를 구입하는 것도 포함되겠네요. 한 마디로 모든 팬 활동을 방안에서 했던거죠.

그런데 모니터로만 오빠들을 보다보니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팬카페를 통해 스케줄을 확인한 뒤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방송국으로 향했죠. 음악 프로그램 생방 녹화가 있는 날이었거든요. 오전 10시부터 줄을 선 끝에 드디어 녹화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오빠들의 공연. 6시간의 기다림과 4분의 만남. 그래도 그땐 마냥 좋았죠.

그러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무실이나 미용실, 집 앞으로 가면 오빠들을 더 자주 볼 수 있단 사실을요. 하루종일 기다리다 무대 위에 선 오빠의 콩알만한 얼굴을 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게됐죠. 게다가 운 좋으면 오빠의 평상시 모습도 볼 수 있고, 또 쌩얼도 볼 수 있고. 제게는 신천지와 같았습니다.

오빠의 일거수 일투족이 올라오는 사생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서 일정을 확인하고, 오빠들의 숙소와 자주가는 미용실 등을 확인했죠. 그리고 친한 친구와 함께 무턱대고 갔는데…. 헉, 저 말고도 오빠를 기다리는 팬들이 10여명 있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오빠의 밴이 등장.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운 좋으면 살짝 웃어주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저의 사생 생활은 시작됐습니다.

◆ "사생의 기본단계, 공항치기"

공부하랴, 쫓아다니랴, 일주일이 바쁘겠다고요? 그건 그 때 그 때 달라요. 방학 때는 저처럼 중·고등학생 사생이 많은데 개학을 하고 나면 대학생 사생과 직장인 사생이 많아요. 대학생과 직장인도 오빠를 쫓아 다니냐고요? 저희보다 더 잘 뛰어요(사생팬은 쫓아 다닌다는 말을 뛴다고 표현했다). 개인차를 가지고 있는 언니들도 많고, 아무튼 기동력이 되니깐 훨씬 빠릅니다.

방학 때는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일주일 내내 오빠를 쫓아다니기도 했어요. 요즘은 수업때문에 주말만 겨우 다니는 정도죠. 만약 사생을 하면 어떻게 쫓아다니냐고요? 동방신기 오빠들을 예로 들어 볼께요. 만약 오빠들이 공연 때문에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이면 오전 7시 숙소로 달려갑니다. 숙소에 가면 사생팬 20여명은 이미 모여 있어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오빠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시아준수 오빠는 보기와 달리 너무 소탈해요. 목욕탕 슬리퍼같은 걸 신고 나올 때도 있어요. 그렇게 오빠들이 밴에 올라타고 공항으로 향하면 우리는 대기해 놓은 사택(사생택시의 약자. 시간당 3만원을 받고 사생팬을 태워 스타를 쫓아가는 택시를 말한다)을 타고 쫓기 시작합니다.

이미 봤는데 왜 또 따라가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신기한게 보고나도 1시간이 지나면 또 보고싶은걸 어떡해요. 게다가 한번 출국하면 며칠은 못보니깐 가기전에 계속 봐야돼요. 물론 공항에서는 경호원에게 엄청 욕을 먹기도하죠. 하지만 괜찮아요. 오빠들의 뒷모습을 한번 더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위안이 됩니다.

◆ "스케줄 없는 날도 문제 없어"

스케줄이 있는 날은 솔직히 쉬워요. 숙소 앞에 있거나 헤어샵 앞에 있으면 거의 90% 만날 수 있어요.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볼 수 있냐고요? 운이 좋아야죠.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에요. 오빠들이 잘가는 카페나 식당을 알고 있으면 가능해요. 거의 가는 단골집이 정해져 있거든요.

예를 들면 동방신기 오빠와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있어요. 그 앞은 언제나 팬들로 북적되죠. 물론 매일 오진 않죠. 하지만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겁니다. 얼마전 한 오빠가 또 다른 스타친구와 함께 가게를 찾았어요. 그런 날이 대박이죠. 그래서 무작정 기다리죠. 또 언제 어떻게 나탈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사생팬이 서로의 정보원이 되어 오빠의 움직임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서로 친한 팬들끼리 오빠가 있는 곳을 문자로 주고받죠. 물론 혼자만 오빠를 공유하고 싶을 때도 있죠. 정말 희귀한 곳에서 오빠를 봤을 때죠. 이른바 우리 세계에서 '단독'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팬들을 따돌리기 위해 '낚시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오빠 지금 신사동 사거리에 있어요" 이렇게요.

아, 택시 아저씨도 정보를 줍니다. 사생팬만 태우는 사생택시죠. 그 아저씨들은 오빠들의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법니다. 그 택시를 타면 시간당 돈을 내야 되니까요. (취재 도중 마침 한 택시기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 오빠스타의 위치를 알리는 문자였다.) 만약 돈과 시간이 돼 택시를 부르면 아저씨가 하루 종일 쫓아다녀줘요. 근데 요즘 경쟁이 치열해서 시간당 3만원까지 올랐어요.

◆ "미안하다, 사랑한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이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걱정이 늘었습니다. 우리 오빠들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죠. 여기에 '사생팬들은 자기 오빠들의 일이라면 잘잘못도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며 비난하는 여론도 높아져 최근 저희들의 입지도 상당히 좁아진 상태입니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팬심이 오빠들을 향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사생팬들이 맹목적으로 옹호한다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물론 일부 팬들이 삐뚤어진 팬심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사생팬들은 비판할 땐 확실히 비판하면서 오빠들의 롱런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사생팬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생각없는 아이들, 무분별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큽니다. 그래서 반 친구들에게조차 내가 사생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은 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들은 그냥 가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열정이 강했을 뿐이니까요.

사생을 향한 여러가지 안좋은 말들도 많고, 체력적으로 고생스러운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오빠들을 사랑합니다. 오빠들로 인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내가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들의 사생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 사진 = 김용덕·이승훈·이호준·송지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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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기자들이 풀어 놓는 취재후기 = http://pre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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