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보현기자] "내가 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겠어요.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SBS-TV '스타일'이 종영한 지난 20일, 류시원은 이해불가 캐릭터로 혼란을 겪었음을 고백했다. 연기경력 20년 차의 배우가 급변하는 캐릭터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비단 류시원 뿐 아니다. 현재 KBS-TV '아가씨를 부탁해'(이하 '아부해')에 출연하고 있는 정일우도 비슷한 이유를 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들어 연기자가 캐릭터에 동화되지 못한 채 논란을 제기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그것도 드라마 주연들이 대부분이다. 시점도 눈에 띈다. 전에는 드라마 종영 후에나 이런 말이 나왔다면 이제는 방송되고 있는 중간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그동안 쉬쉬해왔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 지금까지 쉬쉬해왔던 드라마 제작 환경과 연기자의 자질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드라마를 이끄는 캐릭터가 이해불가 애물단지가 되면서 드라마가 방향을 잃고 있다. 이해불가 캐릭터 논란,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 "캐릭터 혼란 겪는 주인공, 누구?"
연기자들이 공개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때문에 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연기자들의 공통된 입장. 류시원, 정일우, 이다해가 대표적인 예다.
류시원은 지난 20일 SBS-TV '스타일' 홈페이지에 캐릭터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류시원은 "보통 드라마를 하면 4회 정도 안에 캐릭터에 적응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며 "대본이 나올 때마다 생각하지 못한 상황과 대사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정일우는 지난 18일 '아부해' 현장공개에서 본인의 역할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극중 태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초반에는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완벽하기만 하다. 워낙 드라마 전개가 빠르다보니 캐릭터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MBC-TV '에덴의 동쪽'의 이다해가 그 주인공. 이다해는 홈페이지를 통해 "어느때부터인가 연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며 "내가 혜린이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시청자를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 "이해불가 캐릭터, 그 이유는?"
연기력은 곧 캐릭터 소화력이라 했다. 여기에는 연기자가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해야한다는 것과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한다는 전제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근 캐릭터 논란은 이와는 한참 벗어나 있다. 연기자 본인도 자신의 캐릭터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고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드라마 상당수가 동시제작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쪽대본과 생방송 촬영이 횡행하고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가 수정되는 것이 동시제작 시스템의 현실. 결국 당초 시놉시스와 다른 캐릭터가 나오게 되면서 연기자의 감정 조절 및 연기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연기자의 아쉬움을 사게 되기 마련이다. 시놉에는 매력적인 남성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미지근하게 그려졌던 류시원과 드라마 초반과 달리 극 비중이 확연하게 줄어든 이다해가 논란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작 시스템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 논란의 원인은 연기자에게도 있다. 특히 배우가 상상력이 부족해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질 문제라고 볼수도 있다.
정일우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아부해' 속 정일우 캐릭터는 시놉에서 설명된 캐릭터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고 비교적 평이한 캐릭터. 하지만 이를 버거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그 원인을 캐릭터에 돌린 것은 연기자 스스로에 대한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 "캐릭터 논란, 누구의 잘못인가"
계속되는 연기자의 캐릭터 논란. 더군다나 방송되고 있는 중에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드라마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심하면 내부적인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연기자 스스로가 부끄러워하는 드라마를 시청자들이 곱게 볼리 만무하다. 실제로 연기자들이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했던 드라마는 낮은 시청률과 혹평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의 요구대로 극 내용과 캐릭터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결국 반응에 따라 드라마가 휘둘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드라마와 연기자, 그리고 시청자 모두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 씨는 "이해불가 캐릭터 논란을 이해할 시청자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봐야한다"며 "국내 드라마에 어려운 캐릭터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을 나오는 것은 제 살 깎아먹기"라고 꼬집었다.
결국 책임감이다. 이 같은 논란을 풀기 위해서는 서로 책임감과 배려심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진은 시간과 시청률에 쫒기기보다 기획의도에 맞는 연출과 대본으로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이끌어야 한다. 연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캐릭터에 온전히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치열한 노력이필요하다.
<사진=MBC,KBS,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