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 스피어스, 파란만장 10년…"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까?"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9.02.07 12:08 / 수정: 2009.02.07 12:08

[ 김지혜기자] 누군가는 말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신세가 됐다고.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섹시함은 동네 애완견에게 줘버린듯 하다고. 지난 2007년, 삭발을 하고 파파라치의 자동차를 몽둥이를 내리친 이후부터였다. 이날 스피어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자 팬들은 "브리트니의 시대는 끝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스피어스는 보란듯이 재기했다. 지난해 12월 발매한 6집 앨범의 싱글 '우머나이저(womenizer)'가 빌보드 싱글 차트의 1위에 등극했다. 무려 9년만에 찾은 정상의 자리였다. 물론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을 외치던 깜찍 발랄한 소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농익은 성숙함을 과시하며 무대를 달궜다. 과연 여왕의 귀환다웠다.

올해로 스피어스는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미국 팝 음악계 역사상 가장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지만 그녀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를 그녀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을 통해 정리해봤다.

◆ 두번의 도전 "꿈은 이루어진다"

1981년 미국 루이지애나 켄트우드에서 태어난 스피어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끼를 자랑했다. 춤과 노래에 있어서 놀라운 재능을 가졌던 스피어스는 각종 노래 자랑 대회에서 상을 휩쓸다시피했다. 스피어스는 8살이 되던 해 첫번째 기회를 맞았다. 미국 디즈니 채널의 인기 쇼프로그램 '미키 마우스 클럽(MMC)' 오디션에 응시한 것.

당시 수백여명의 아이들과 경쟁한 스피어스는 넘치는 끼로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실의에 빠진 스피어스는 이후 뉴욕으로 넘어가 CF와 연극 등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했다.

스피어스는 92년도에 다시 한번 MMC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합격. 실력과 외모에 있어 또래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 MMC는 향후 팝 음악계를 뒤흔들 재목들이 대거 소속돼 있었다. 스피어스와 함께 호흡을 맞춰던 멤버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였다.

그로부터 6년뒤 스피어스는 미국 팝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미국 유명 음반회사 자이브(Jive)와 25만 달러(한화 3억 6백만원)계약을 체결하고 1999년 1집 앨범 '베이비 원 모어 타임'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싱글 차트, 앨범 차트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가수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 "케빈 페더라인, 모든게 너 때문이야"

스피어스는 1집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er time)으로 전세계에서 1천 7백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팝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후 2집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Opps, I did it again) 2천만장, 3집 '브리트니'(Britney)1천 5백만장, 4집 '인 더 존'(In the zone) 8백만장을 팔아치우며 월드 스타의 입지를 굳혔다.

브레이크 없이 고속 질주했던 스피어스에게도 시련의 시간은 다가왔다. 200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소꿉친구 제이슨 알렉산더와 초고속 결혼식을 올리고 50시간만에 이혼한 해프닝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과거 연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백댄서 출신 케빈 페더라인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같은해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스피어스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첫 아들 숀을 출산한 후부터 페더라인과 끝없는 불화설이 흘러나왔고 2006년 둘째 아들 제이든을 낳은지 두달만인 11월에 LA고등법원에 이혼 청구 서류를 접수했다. 이혼 사유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였다. 결국 1200만 달러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페더라인과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짧은 결혼 생활은 스피어스의 많은 것을 앗아갔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2년간 음악 활동을 하지 못했다. 대신 사생활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트러블 메이커로 낙인찍혔다. 또 남편과의 불화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과 약물에 손을 댄 스피어스는 건강 악화와 체중 증가 등으로 몸까지 망가졌다.

◆ "파파라치 날 좀 내버려둬"

이혼 소송과 양육권 분쟁으로 몸와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스피어스는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혀왔던 파파라치에게 전면전을 선포한다. 재활 치료원에 들어갔다 하루만에 머리를 삭발하고 병원을 나온 스피어스는 파파라치와 대립했다.

특히 2007년 2월 자신를 찍기 위해 기다리던 파파라치의 차를 우산으로 내리친 사건은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사진마저도 파파라치에게 찍혀 스피어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스피어스는 파파라치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이다. 24시간 스피어스의 뒤를 쫓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렌즈에 담았다. 일상 생활은 물론이고비키니 사진에서부터 키스 사진까지 포착했다. 한 파파라치가 스피어스의 팬티를 포착해 화제를 모으자 파파라치들 사이에서 스피어스의 치마속을 찍기 위해 경쟁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피어스는 적과의 동침을 하기도 했다. 2008년 초 영국 출신의 파파라치 애드넌 갈리브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역시 스피어스는 파파라치와는 상극이었다. 짧은 교제후 결별한 갈리브는 "스피어스의 섹스 비디오가 있다"는 주장을 하며 스피어스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션&제이든 "금쪽같은 내 새끼"

굴곡진 20대를 보내고 있는 스피어스에게 희망같은 존재가 있다. 사랑도 잃고 결혼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스피어스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 션과 제이든이 있다.

페더라인과 이혼하면서 스피어스는 양육권을 빼았겼다. 이혼 당시 스피어스 술과 약물에 빠져 무분별한 생활을 했기에 법원에서는 페더라인에게 양육권을 넘겨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 션을 자신의 품에 안은채 운전하는 모습과 아이를 한손으로 안아 떨어뜨릴뻔한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연이어 포착되면서 스피어스의 엄마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스피어스의 모성은 여느 엄마 못지 않았다. 재활 치료를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한 스피어스는 아이들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베버리힐스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 결심을 세운 스피어스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두 아이들을 데리고 새집을 다녀왔다. 션과 제이든이 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하루 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는 글을 남기며 자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스피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 맥스 마틴 "동반자이자 은인"

스피어스가 최고의 팝가수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맥스 마틴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자이브 레코드사에서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프로듀서하면서 유명세를 떨친 마틴은 스피어스를 발굴해 키우면서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룩했다.

마틴은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 '크래이지', '럭키', '오버프로텍트' 등 스피어스의 히트곡들을 대부분 작곡했다. 그는 청순함과 섹시미가 공존하는 스피어스의 외적 매력을 음악에 연결시켜 최고의 팝스타로 만들었다.

스피어스를 오랜 수렁에서 건져낸 것도 마틴이었다. 할리우드의 호사가들은 5집 '블랙아웃'이 실패하자 "다시 가수로서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마틴은 스피어스의 6집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서커스'를 만들었고 9년만에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스피어스의 신곡 '서커스'는 내가 이제까지 만든 음악중에 최고다"라고 말했으며 "스피어스는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 최고의 가수다"라는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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