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극' 설명형 가고 vs '현대극' 역할형 왔다
[김지혜기자] 혹자는 '라디오'냐고 조롱한다. 드라마라면 보여줘야지 왜 들려주냐며 고개를 흔든다. 또 혹자는 '다큐멘터리'냐며 빈정거린다. 드라마라면 보여줘야지 왜 설명을 하냐며 정체성까지 의심한다.
하지만 이는 나레이션의 역할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영상의 한계를 설명으로 떼운다고 폄하하면 곤란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속 나레이션은 쉼표다. 그리고 마침표다. 주인공의 속내을 엿보며 잠시 숨을 돌리고,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며 점을 찍을 수 있다.
나레이션은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조금씩 진화해왔다. 최근 MBC-TV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이하 돌지매)가 선보인 나레이션 역시 진화의 한 단계다. '돌지매'의 경우 이전 드라마가 보여준 ▲ 설명식 혹은 ▲독백식 나레이션에서 약간 벗어나 ▲객관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

◆ 나레이션의 역사
드라마 속 얼굴 없는 소리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영화나 연극 등에서 장면의 해설을 위해 사용되던 나레이션이 최근 브라운관으로 옮겨와 형식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성장통도 있다. 나레이션은 시청자 입장에서 익숙치 않은 방식. 과도한 친절아니냐며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레이션은 이미 오래 전 부터 안방극장에서 종종 선을 보여왔다. 시초는 사극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레이션은 정보 전달의 기능이 강했다. 역사적 사실을 축약해 전담함으로써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목적으로 사용됐다.
현대극에서 본격적으로 쓰인 건 2004년 방영된 KBS-2TV '부모님 전상서'(김수현 극본·정을영 연출)에서다. 아빠가 일기를 쓰는 형식으로 그 후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다시 한번 나레이션을 살렸다.
나레이션은 이후 현대극 또는 퓨전사극에서 그 기능을 달리하며 진화했다. 나레이션이라는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형식과 역할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KBS-2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독백형과 '돌아온 일지매'의 전지적 작가시점이 그 예다.

◆ 나레이션의 역할
흔히 나레이션을 '사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레이션은 필요없는 덧붙임이 아니다. 보완재 기능이다. 특히 현대극에서 쓰이는 나레이션의 경우 드라마의 전개를 윤택하게 만드는 윤할유 역할을 한다.
일례로 '부모님 전상서'에서 쓰인 아빠의 일기, '엄마가 뿔났다'에서 쓰인 엄마의 일기는 드라마를 오히려 사실적으로 만드는 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식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즉 나레이션은 행동이 아닌 마음의 표현수단인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또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일기형 나레이션이 감정 표현의 수단이라면 '그사세'의 독백형 나레이션은 상황 정리 역할을 담당한다. 주인공 심리를 독백으로 정리하며 극적 갈등에 마침표를 찍는 것. 에피소드식 블록쌓기에 효과적이다.
'돌아온 일지매' 역시 또 한번 진화를 거듭했다. '돌지매'의 경우 인물의 심리를 알리는 역할이 아니라 극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드라마 속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만든다. 기존 사극이 보여준 단순한 정보전달과 다른 모습이다.

◆ 나레이션의 효과
"그리고 그 책 속에 적힌 일지매란 사내도 그러한 시대가 잉태한 영웅이었다"
'돌아온 일지매' 1회에 등장한 나레이션이다. 일단 낯설다. 기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분명 장애물이다. 그러나 '돌지매' 속 나레이션의 역할을 이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윤석진 교수에 따르면 '돌지매'의 나레이션은 객관화에 보탬이 되고 있다. 윤 교수는 "관찰자 시점의 나레이션은 사건이나 인물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이런 객관화는 드라마 속에서 현실을 돌아보는 성찰적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단, 지나친 개입으로 인한 극의 단절은 주의해야할 요소다. 나레이션의 기능이 정보전달 이상이라고 해도 주객이 전도될 수는 없는 법. 극의 흐름까지 방해해서는 곤란하다. 윤 교수는 "나레이션 때문에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힘들다면 문제가 있다"면서 "나레이션은 어디까지나 형식적 시도일 뿐 극을 이끄는 주체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는 늘 새로움을 시도한다. 나레이션 역시 그 시도의 부산물이다. 낯설다고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어색했던 아빠의 나레이션이 '엄마가 뿔났다'에서 재밌었던 까닭. 새로운 시도도 이해하면 즐겁고, 익숙하면 반갑기 때문이다.
<사진 =MBC,KBS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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