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봤으면 말을 마세요"…'막드'에만 있는 울화통 터지는 재미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9.01.13 16:01 / 수정: 2009.01.13 20:06

[김지혜기자] 고고한 척 하던 아빠가 변했다.

"뉴스 좀 챙겨봐. 드라마만 보지 말고. 또 불륜 이야기야? 이딴걸 왜 봐?"

TV 앞에서 넋을 잃은 엄마에게 늘 '뉴스나 보라'며 잔소리를 하던 아빠. 그런 아빠가 요즘 7시가 땡하기 무섭게 현관문을 두드린다. 가방을 거실 한 구석에 내팽겨치곤 하는 말.

"시작했어? 아, 한다. 해. ♬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아빠는 요즘 막장 드라마, '미드'보다 중독성 강하다는 '막드'에 푹 빠졌다.

비단 노고산동에 사는 '소라'네만 그런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막장 드라마 열풍이다. 막드의 최공봉에 선 SBS-TV '아내의 유혹'의 경우 아버지의 퇴근 시간을 바꿔놨다고 해서 '귀가시계'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통속'이라는 장르적 폄하에서 '막장'이라는 내용적 비하에도 불구 도대체 무엇이 그 고상하던 아버지의 TV 취향을 흔들었을까.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는 막드의 울화통 터지는 재미를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통해 파헤쳤다.

① "이봐, 은재! 자네 왜 그렇게 착한가?"

"쟤는 왜 맨날 당하는거야. 아이구 속터져."

막드의 중독은 그렇게 시작된다. 속 터지는 착한 주인공과 염장 지르는 나쁜 주인공. 바보처럼 멍청한 주인공을 동정하고, 악마처럼 영악한 상대편을 욕하면서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일일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자. 가난한 집안의 착한 딸로 태어난 은재(장서희 분)는 한마디로 천사표다. 껄렁한 남편(변우민 분)의 무시와 까칠한 시어머니(금보라 분)의 구박을 '네, 그럴게요' 정신으로 견뎌낸다.

반면 은재의 원수 애리(김서형 분)는 어떤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니 몹쓸 짓을 골라서 한다. 은재의 남편을 유혹해 뺏고, 심지어 은재를 사지로 내몬다. 친자식처럼 키워준 은재의 부모에게 소금을 뿌리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막드의 이런 극단적 대립은 드라마 초반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낚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자가 지구에서 가장 악한 여자에게 당하는데 그 어떤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나쁜…"을 입에 붙이면서 막드의 재미에 빠져드는 것이다.

② "언제까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건가?

"넌 참을거야? 난 참을 수 없는데"

막드에 빠진 시청자 중 열이면 열 하는 이야기. 속 터져 죽겠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착한 주인공은 일단 당하고 본다. 은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애리의 교활함과 교빈의 뻔뻔함, 그것도 부족해 시어머니의 까칠함까지 사방이 적이다.

보면 열받고 안보면 궁금해 미치는 시청자의 심리. 앞서 말한 극단적 인물구조가 막드의 미끼라면, 지금 이야기하는 극한적 갈등구조는 중독의 촉매제다. 무차별적으로 가하면 무조건적으로 당하는 설정이 시청자의 울화통과 드라마의 시청률을 동시에 터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막드의 단골소재인 운명의 장난도 시청자의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원수의 여동생이 내 딸이고, 원수의 아들이 내 남편인 케케묵은 출생의 비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 시한폭탄 같은 비밀이 막드를 사수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물론 꼬일대로 꼬인 드라마는 막장스럽다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꽈배기 설정은 카타르시스를 위한 도구라는 것. 한 제작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비밀이 많고 갈등이 클수록 막장이라고 욕을 합니다. 아이러니는 욕을 하면서도 비밀과 갈등을 좋아한다는거죠. 꼬인 만큼 풀릴 때의 카타르시스가 크기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갈등과 끝도없이 꼬인 비밀이 막드의 두번째 매력아닐까.

③ "밝혀낼꺼야, 그리고 부숴버릴거야!"

지금까지 살펴본 막드의 공식. 사실 진부하기 짝이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또 참는 '캔디'과 주인공이 모진 비 바람 견디고 복수를 한다는 설정.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 이 뻔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자들은 캔디의 분풀이가 보고 싶은 것이다. 어떤 '칼'을 사용해 복수를 하고, 어떤 '창'을 이용해 파멸로 이끄는지 그 과정이 궁금한 것이다. 실제로 '아내의 유혹'만 해도 이미 결말은 훤히 눈에 보인다. 되로 받은 상처를 말로 되갚을 게 뻔하다.

예를 들어 은재는 교빈과 애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자신이 흘린 눈물을 피눈물로 갚아주라는 통속극 공식에 충실한 채. 민여사(정애리 분) 역시 '1타 2피'의 쾌거를 거두지 않을까. 정하조(김동현 분)를 망가뜨리고 잃어버린 딸(오영실 분)을 되찾는 그림도 뻔히 보인다.

다시, 노고산동 소라네 이야기. 이번에는 통속극 전문가인 소라 엄마에게 물었다.

"뻔한 이야기 왜 보냐고요? 착한 사람 잘되고 못된 사람 망하는 꼴 보려고요. 세상이 그렇잖아요. 나쁜 놈이 더 잘살아. 그래도 드라마에서는 나쁜 놈이 망해 다행이야. 난 그게 보고 싶은 거에요. 어떻게 망하는지…."

이것이 바로 참을 수 없는 막드의 매력아닐까. 울화통 터뜨리며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는…. 사랑, 불륜, 출생, 원한, 비밀, 복수, 진실 등으로 조각난 퍼즐이 '권선징악'으로 맞춰질 그날을 기다리며 대한민국 시청자는 오늘도 막드에 빠진다.

<사진= SBS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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