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20년은 잠시 잊으세요…신인 연기자 오영실입니다"(인터뷰)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8.12.01 13:16 / 수정: 2008.12.01 15:43

[ 김지혜기자] "40살의 나이에 10살 지능을 가진 캐릭터 정하늘을 아세요? 그 배우가 아나운서라면 믿을 수 있나요?"

SBS-TV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애청자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본다. 드라마를 관심 있게 지켜본 시청자라면 정하늘로 분하고 있는 연기자의 얼굴이 익숙하면서도 낯설 것이다.

그 배우의 이름은 오.영.실. 20년간 아나운서 직함을 달고 방송가를 주름잡았던 프로 방송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연기자의 전직이 아나운서였을까'하고 자문하게 된다.

아나운서 오영실이 변신했다. 어쩌면 빙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능수능란, 자연스럽다. 자신 앞에 늘 붙어 다니던 아나운서의 꼬리표를 떼고 조금씩, 그러나 완벽하게 연기자의 옷을 입어가고 있다.

기자는 신인 연기자를 인터뷰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오영실은 알려야 할 것이 많은 신인 배우처럼 착실하게 대답했다. 아나운서이자 연기자, 가정주부까지 무려 3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 오영실. 최근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연기 도전기를 전한다.

◆ "신인 연기자 오영실입니다"

"소설은 글로써 다른 이의 인생을 살고, 성우는 목소리로써 그 사람이 되죠. 배우는...연기를 통해 비로소 그 캐릭터가 되잖아요. 참 멋진 일이라 생각했어요"

신인 연기자로 막 첫걸음을 뗀 오영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슴 한편에 배우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년 전 대학 시절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남몰래 배우의 꿈을 품었지만 남자친구(현재 남편)와 집안의 만류로 나래를 펼 수 없었다.

KBS아나운서 10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10년. 방송이라면 대본 없이도 진행할 달인(?)의 수준까지 올라선 그녀는 요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초짜 신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인공 은재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강사 역으로 1회만 특별 출연을 하기로 했었는데 제작진이 제 가능성을 높이 사 주조연급인 '정하늘'이라는 역할을 줬어요. 저에겐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기회였죠"

방송사에 익숙한 그녀에게 드라마 현장은 낯설었다. 베테랑 아나운서 오영실에게 NG란 없었다. 대본을 100%이해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애드리브를 추가하면서 누구보다 완벽한 방송을 이끄는 그녀였다. 그러나 드라마 현장에서는 뭐든 어설플 수밖에 없는 신인이다.

그녀의 가장 든든한 연기 선생님은 다름 아닌 현장에 있다. 함께 연기하는 파트너인 금보라와 김동현, 그리고 장서희, 변우민 등이 오영실의 연기의 단점을 체크하고 보완해주고 있다.

◆ "지적장애인 캐릭터, 전 이렇게 연기했어요"

'아내의 유혹'에서 오영실이 분한 캐릭터 정하늘은 나이는 40살, 지능은 10살에 머물러 있는 지적장애인이다. 그러나 정하늘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졌던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할 말은 다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캐릭터다.

"교빈이 그 놈 당장 짤러! 정신 나도록 죽도록 패주구! 은재 맨날 괴롭히고 그 놈 아주 나쁜 놈이야!"

22일 방송에서 하늘이 던진 명대사(?)중 하나다. 교빈(변우민 분)과 애리(김서형 분)의 기막힌 불륜 행각과 늘 당하기만 하는 은재(장서희 분)를 보면서 분통이 터졌던 시청자들에게 하늘의 호통은 막힌 가슴을 뻥 뚫리는 듯 한 쾌감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은재를 괴롭히는 올케(금보라 분)에게도 유일하게 싫은 말을 하는 캐릭터가 하늘이다.

드라마 데뷔작에서 맡은 첫 캐릭터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라 쉽지 않았을 터다. 말하는 톤과 얼굴 표정, 그리고 행동 패턴까지 스스로가 설정해야 했다. 오영실이 내린 결론은 현명했다.

"기관에 가서 그분들과 생활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작가분이 나에게 맡긴 역할은 극중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양념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하늘이를 장난꾸러기 아이 같은 그러면서도 정감 가는 캐릭터로 설정했어요"

오영실은 영화 '오아시스'의 문소리나 '말아톤'의 조승우를 롤모델로 삼지 않았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에 전문성을 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청자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연기를 하되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희극적인 캐릭터가 되면 충분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캐릭터 '정하늘'은 창조됐다.

◆ "시청자의 눈은 아주 정확해요"

오영실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연기를 복습하고 바로 잡는다. 비판과 악플을 두려워하는 여느 연기자들과 사뭇 다르다.

"저는 방송할 때도 시청자 게시판을 꼬박꼬박 확인해요. 시청자들의 눈은 누구보다 정확하단 걸 알거든요. 아직까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네요. 아무래도 아나운서였으니까...'아나운서 치고 잘하네' 이런 반응이시겠죠"

오영실은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녀를 향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늘이의 독설 때문에 혹은 귀여운 땡깡(?) 연기에 드라마를 본다는 시청자들도 다수다. 더불어 연기자 오영실에 대한 점수도 아주 후하다. 아나운서 출신이기에 약할 수 있는 감정 이입은 아주 훌륭한 편이고, 장점이 될 수 있는 발음은 베테랑 연기자만큼 정확하다는 호평이다.

그러나 오영실은 스스로에게 가혹하다. 자신의 연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파악하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문제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최근 촬영을 마친 소시지 땡깡신을 예로 들어 자신의 연기가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하늘이가 소시지를 안준다고 해서 우는 신이 있었어요. 표정은 울상이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어요. 머릿속에 '소시지 그까짓 거 안 먹으면 되지 왜 울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봐요. 그러니 자꾸 엔지(NG)가 날 밖에요"

결국 그날 촬영은 다음날로 미뤄졌다. 스스로도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결국 난관은 선후배 연기자의 조언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장)서희한테 "나 안약이라도 넣고 울까?"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서희는 신인시절부터 선생님들한테 "안약 쓰는 건 똥연기자나 하는 짓"이란 말을 신조처럼 여겨왔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또 한 선배 연기자가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말해줬어요. 소시지가 아니라 네가 진짜 갖고 싶었던 것을 거절당했을 때의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고요"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결국 오영실은 몇 차례의 연습 끝에 그 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결론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어깨에는 힘을 빼야 한다는 거였어요. 골프도 3년을 해야 어깨에 힘이 빠진다는데 하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연기는 오죽할까요. 이러니 제가 신인 연기자일 수밖에 없죠. 모자란 것 투성이니까요"

◆ "뻔한 불륜극? 재밌는 요소는 다 갖춘 대중 드라마!"

방송 3주차. '아내의 유혹'은 교빈과 애리의 불륜이 본격화 되면서 은재의 시련기도 잔인하게 그려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회를 더할수록 커지고 있다. 초반부터 파격적인 에피소드와 자극적인 갈등을 그리고 있는 '아내의 유혹'은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많다. 뻔한 불륜극이라는 평가에서부터 통속극의 고리타분한 클리셰는 다 등장한다는 혹평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오영실의 생각은 다르다. 드라마는 허구의 이야기일 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미에 집중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시청자들은 불륜 드라마라고 하지만 작가 선생님은 권선징악의 드라마라고 말하세요.(웃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드라마라는 것이 건강하고 밝은 소재를 다루면서 재미와 감동까지 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러나 착한 드라마는 재미는 없잖아요. 인간관계의 갈등이 깊은 만큼 화해의 카타르시스도 큰 건 사실이에요. 그러다보니 작가와 감독님은 재밌는 요소를 좀 더 많이 강하게 넣으신 거죠"

방송을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인 동시에 경영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오영실은 덧붙여 이야기했다. 안보는 드라마보다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가 필요로 하는 것이 상업 방송의 논리라는 것이다.

방송 20년차의 베테랑 아나운서가 드라마에선 바보 연기를 한다. 시청자는 낯설면서도 즐겁다. 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늘 바른 말, 잔소리만 하는 엄마의 모습만을 떠올리는 두 아들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오영실은 요즘 아나운서일 때보다 신인 연기자로 사는 하루가 더 즐겁다.

"스태프들이 저 때문에 웃는데요. 하늘이가 보여주는 진상 연기 때문에요. 얼마 전에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을까"하면서 눈물짓는 것을 연기하는데 조명 스태프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걸 봤어요. 드라마 현장에서 10년 이상을 일 해온 전문가들이 신인인 제 연기를 보면서 울었데요. 어찌나 보람 있던지. 나로 인해 누군가 웃고 우는 것을 볼 때 배우들은 가장 보람을 느낀단 말 저도 조금씩 실감하고 있답니다"

<사진 =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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