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극, 참을 수 없는 진부함의 매력…"뻔한 이야기에 빠진 까닭?" ①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8.11.11 12:44 / 수정: 2008.11.12 01:01

[ 김지혜기자] 참 많이도 꼬였다. 집안의 원수라 믿었던 사람은 알고 보니 동생의 친아버지. 여기에 힘들게 찾아온 두번째 사랑은 동생과 삼각관계로 얽혀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이기철의 두 아들 동철과 동욱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에덴의 동쪽 中)

참 더럽게 꼬였다. 친구라 믿었던 사람은 알고 보니 남편의 내연녀. 더 기가찬 것은 친오빠의 애인이다. 시집살이 또한 만만치않다. 게다가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의 갖은 구박을 다 견뎌야 한다. 이리저리 치이는 아내 은재의 운명은 참으로 서글프다. (아내의 유혹 中)

통/속/극. 통속적인 내용의 연극이나 드라마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속'이란 ▶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 혹은 ▶ 대체로 저속하여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것들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는 드라마 대부분은 통속극이다. 쉽다 못해 저속한 내용으로 안방극장을 공략중이다. 게다가 진부하고 뻔한 설정으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든다. 알고도 속고 뻔하지만 궁금한 통속극의 매력을 살펴봤다.


◆ 통속극 전성시대…"욕 먹는 드라마를 만들자"

달력은 2009년을 향하고 있지만 브라운관은 30년 뒤로 후퇴하고 있다. 철저히 과거 지향적 소재로 승부하고 있는 것. 복잡한 인물관계에 진부한 갈등, 뻔한 복수, 그리고 화해. 첨단을 살고 있어도 드라마의 케케묵은 소재들은 변할 줄 모른다. 여전히 했던 이야기를 또 우려내고 있다.

실제로 통속극 대부분이 ▶ 집안의 원수가 알고보니 동생의 친부고(에덴의 동쪽), ▶ 남편의 내연녀가 알고보니 내 친구고(아내의 유혹), ▶ 가난한 그녀가 재벌집 시집살이에 눈물을 흘리고(유리의 성), ▶ 혼전임신에 발목 잡혀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하는(내 사랑 금지옥엽) 해묵은 소재를 반복하고 있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에 따르면 통속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칭찬하며 안보는 드라마보다 100배 낫다는 것. 그는 "시청률이 광고를 좌우하는 시장 상황에서 고상한 이야기는 일부 마니아층을 만들지 몰라도 폭넓은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학습효과의 결과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중장년층으로 넘어가면서 독창성은 금기가 된 것.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씨는 "중장년층은 새로운 실험보다 안정을 추구한다"면서 "권선징악 등 과거 갈등 공식을 재조합하는 게 훨씬 낫다는 학습효과가 통속극을 대세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참을 수 없는 진부함…"반복, 그 장면에 그 대사"

오래된 반복 탓일까. 통속극은 주인공 관계에서 상황설정, 갈등전개가 눈에 훤하다. 심지어 다음 장면과 대사가 너무 쉽게 예측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창작물의 크레이티브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판에 박힌 클리세(Cliche)만 가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에덴의 동쪽'의 뻔한 명장면(?) 역시 복습의 연속이다. 동철과 영란의 애틋한 감정신은 집안이 갈라 놓는 뻔한 러브 스토리, 주먹질하는 동철과 공부하는 동욱은 환경이 갈라 놓는 운명적 형제애, 동철과 태환의 싸움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반복된 원수의 집안이다.

새로 시작한 '아내의 유혹' 불륜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재벌집에 시집간 은재는 신데렐라 스토리, 그러나 못된 시어머니의 구박과 함께 전개되는 고부간의 갈등, 남편에게 버림받고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아내의 복수극 전형이다.

대사 또한 진부하기 짝이 없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그 장면엔 언제나 그 대사가 등장한다. 가령 엇나간 형에겐 "니 동생 앞길을 막지마라"라는 어머니의 걱정이, 가난한 며느리에겐 "어디서 저런 애가 들어왔는지"라는 시어머니의 빈정이 기다리고 있다.

◆ 진부함에서 찾는 매력…"갈등해소의 카타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속극에 빠져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서 모지란 역을 맡았던 김희정은 문영남 작가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았다. "선생님은 우리네 엄마를 위해 글을 씁니다. 하루종일 일상에 시달린 어머니, 드라마 만큼은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게 하고 싶데요. 안그래도 피곤한데 드라마로 머리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세요."

이는 불황인 요즘 통속극이 더 잘 먹히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드라마를 통해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돼 있다는 것. 구로에 사는 임형수(36)씨는 "안그래도 피곤한 인생이다. 드라마까지 머리 쓰면서 보고 싶지 않다. 1시간 그냥 생각없이 보며 웃고 울면 그만이다"고 통속극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통속극 속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 주는 묘한 매력도 있다. 그 속에서 진행되는 긴장과 이완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이야기. 평론가 이문원씨는 "리모콘을 장악한 3040 시청자들은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고, 갈등과 이완 구조가 정확한 걸 좋아한다"며 "갈등이 분출하고 화해에 이를때 오는 카타르시스의 마력이 있다"고 평했다.

물론 통속극은 시청률 면에서 효자상품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킬링 타임용으로 이만한 게 없다. 하지만 통속극의 매력보다 통속극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이문원씨는 "드라마가 창조의 산물이라 가정할 때 시청률 때문에 뻔한 통속극을 선택하는 것은 창작의 과정에서 악수다"고 지적했다.

<사진=드라마 관련 사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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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기자들이 풀어 놓는 취재후기 = http://pre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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