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 곽경택 감독 "맨날 부산 남자? 난 늘 새로운 이야기를 해왔다"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8.08.04 12:53 / 수정: 2008.08.04 16:22

[김지혜기자] 인터뷰를 하다보면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아무도 꺼내지 못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나름의 압박이다. 이런 강박관념은 때로는 독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그랬다.

"감독님, 맨날 부산 남자 아닙니까?"

곽경택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부산'과 '남자'다. 데뷔 10년, 총 8편의 영화를 찍는 동안 그는 변함없이 부산과 남자를 이야기해왔다. 아니 실상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영화 '챔피언'에는 강원도 출신의 김득구가 나오고, 영화 '태풍'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 곽경택하면 '부산'과 '남자'가 먼저 떠오르 게 사실이다. 새롭게 선보인 신작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이이) 역시 부산이 등장하고 거친 남자가 충돌한다. 늘 그랬듯이 마초들의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곽경택 감독이 돌아왔다. 신작 '눈눈이이'를 들고 1년 만에 관객 앞에 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메이드 인 곽경택' 영화다. 부산이 배경이고, 사내가 싸운다. 하지만 이는 곽경택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그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맨날 부산 남자요? 선입견입니더. 저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했어예. 그럼 그 이야기부터 합시더!"

"맨날 부산 남자? 난 늘 새로운 이야기를 해왔다"

▶ 영화 '눈눈이이'. '억수탕', '친구', '태풍', '사랑'에 이어 이번에도 부산이 등장한다. 또 하나 '친구', '똥개', '챔피언', '태풍'에 이어 이번에도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부산과 남자는 그의 상징이다. 독한 말로 '지겹다'는 사람도 있다.

"겉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늘 새로운 이야기를 추구했습니다. '억수탕'에서는 모든 배우가 옷을 벗지만 절대 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닥터 K'는 캐릭터 갈등의 변화를 시도한 영화입니다. 인물간의 갈등이 아닌 한 캐릭터 안에 내재된 여러가지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친구'는 향수로 포장되긴 했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도전이 있었어요. 홍콩식 느와르가 아닌 우리 특유의 정서가 담긴 한국식 느와르를 해보자는 거였죠. 이번 '눈눈이이' 역시 제게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돈에 대한 시각. 그 어느 때 보다 화면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래도 인물이 가진 돈에 대한 가치를 정확히 짚어주고 싶었어요."

▶ 그렇다. '눈눈이이'는 곽 감독이 만들었던 그 어느 영화보다 빠르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액션영화처럼 잠시도 두 눈을 쉴 수 없다. 스펙타클한 화면의 움직임을 숨가쁘게 따라가야 한다. 적어도 속도감에 있어서는 전작과 확실히 다르다. 이 역시 새로운 시도일까.

"'눈눈이이'는 이전 영화와 스토리 자체가 다릅니다. 전작이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인물 중심이라면 이번 영화는 사건이 중심이죠. 캐릭터가 부딪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싸고 캐릭터가 얽혀있어요.

때문에 스피드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미장센보다 컷의 리듬에 신경을 쓴거죠. 개인을 쫓아가기 보다 사건을 풀어가는 게 중요하다 판단했거든요. 때문에 전작의 연출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죠. 그러고 보니 이 역시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아닌가요? 관객이 그렇게 봐주길 바랍니다."

"눈눈이이? 빠르다. 하지만 내 정서는 살아있다"

▶ 곽경택 감독은 음악가로 치면 '싱어 송 라이터'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한마디로 북도 치고, 장구도 치는 스타일. 기자 역시 작가주의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어 '싱어 송 라이터'형 감독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곽 감독도 그럴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약 글을 따로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연출에 집중할 수 있죠.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장면만 생각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제 경우 글부터 시작하다보니 어렵습니다. 영화 한 편 들어가면 웬만하면 8고까지 들어가거든요. 일단 거기서 진이 다 빠져요.

이번에도 역시나 힘든 작업이었어요. 이미 찍은 장면을 편집하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야 했고, 앞으로 찍을 부분에 대해 다시 시나리오를 써야 했거든요. 영화 '사랑'을 끝내고 별로 쉬지도 못한 상태라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고요.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다면 전 샷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되는데…. 후회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요."

▶ '눈눈이이'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자인 안권태 감독이 먼저 메가폰을 잡았고, 스승인 곽경택 감독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사실 곽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그만의 색깔을 머금고 있는 감독이다. 안 감독과 곽 감독의 합작영화. 어떤 색깔을 낼지 궁금했다.

"원래 안 감독이 이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반대했습니다. 경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죠. 지금 만약 '태풍'을 다시 찍는다면 한 50억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바로 경험이 주는 노하우죠. 20억원 짜리 영화는 스케줄 하나 펑크나면 몇백만원 날라가지만 100억원 짜리 영화는 스케줄 하나에 몇천만원이 깨지는 게 현실이거든요.

약간의 예상된 우려가 촬영이 진행되며 현실로 나왔고…. 그렇다고 원래 이야기가 훌륭한데 그걸 바꿀 수는 없었어요. 안 감독이 도움을 청해왔고 같이 가기로 결심했죠. 잘못되면 같이 욕먹고, 잘되면 같이 칭찬받자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스타일 차이는 안날 겁니다. 작가주의 영화일 경우 아무도 손 못대겠지만 '눈눈이이'는 분명 오락영화거든요."

▶ 몇 년 전 만났을 때도 곽 감독은 스스로를 오락영화 감독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는 작가주의 감독 못지 않은 그만의 향기가 난다. '눈눈이이' 역시 그만의 색깔이 뭍어난다. 예를 들면 결국 사람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가 감독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영화는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것이죠. 전 LA가 아닌 뉴욕에서 공부를 했어요. 뉴욕은 독립영화가 발달한 곳이죠. 그럼에도 불구 학교에서 배운 것은 '영화는 프로듀서의 것'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자본이 없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 색깔을 포기할 순 없는 부분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동의해주는 투자자를 만나면 행복한 거죠. '눈눈이이'의 경우 궁합이 잘 맞았다 볼 수 있어요. 철저히 오락영화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었거든요. 눈코 뜰 새 없는 빠른 전개가 볼거리를 준다면 돈과 사람에 대한 드라마는 생각할 거리를 줄겁니다."

"충무로 불황? 이미 예상됐다. 문제는 산업이다"

▶ 영화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누구나 말하는 충무로 불황.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국 영화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 '친구'로 800만 관객 시대를 연 곽 감독. 그 역시 충무로 불황이 남 일처럼 여겨지진 않을테다.

"한국영화 불황.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에요. 몇 년 전 일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러다 위기가 오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례로 일본에 갔는데 듣도 보도 못한 자국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는겁니다. 게다가 한국영화를 수입해도 틀지를 않는거에요.

순간 홍콩영화의 성장과 몰락이 오버랩됐죠. 예전 홍콩영화의 르네상스는 우리가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홍콩 인구 800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제작비였거든요.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일본이 만들었다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제작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때도 있었어요. 한데 요즘 충무로로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제작여건이 그만큼 안좋아 진거죠."

▶ 그렇다고 일본을 탓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나라 관객 역시 한국영화를 외면하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막자본'으로 '막영화'를 찍어댔기 때문은 아닐까. 곽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원래 호황일 때 버블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냥 대충 만들어서 개봉해도 관객이 습관적으로 찾아오니 너도 나도 막 찍어대거든요. 이게 바로 거품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거품은 쉽게 빠진다는 거죠. 고민없이 찍은 영화에 관객이 염증을 느끼는 순간, 치명적인건 산업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거죠.

요즘도 충무로 사람을 만나면 듣는 이야기…. '그래도 곽 감독은 행복한 겁니다. 영화도 찍고, 개봉도 하니까요' 입니다. 그럴 때 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중간 중간 엎어지는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니거든요. 1년 개봉작이 40편 이하로 줄어들면 산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40편 이하에서는) 현상소가 문을 닫게 되고요. 이런 식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겁니다."

▶ 대기업의 거대자본이 충무로의 토양을 나쁘게 만든 것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큰 영화가 극장을 점령하다 보니 작은 영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강철중'과 '놈놈놈'이 스크린을 70% 이상 차지하고 있어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불만도 있다.

"글쎄. 제 생각은 달라요. 일단 시장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올림픽에서 탁구가 금메달을 따면 탁구장이 잘 되는 것과 같은 원리 아니겠어요. 우선 덩치 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충무로에 돈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실험도 할 수 있는거에요. 해볼 게 없는 바닥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사실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로 들어오면서 좋은 인력도이 많이 생겼어요. 주먹구구식 기획이나 정산이 아닌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진거죠. 영화 산업이 예전에 비해 깨끗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그들이 들어 오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도 많았어요. 문제는 그 좋은 인력이 하나 둘 영화판을 떠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영화,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 어찌됐든 현재 한국영화가 고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강철중'이 구원투수로 등장하고 있지만 '괴물'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화 '놈놈놈'이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지만 이는 관객의 선택권을 박탈(?)한 과도한 스크린 싹쓸이 덕분이다. 한국영화, 그래도 희망이 있을까?

"1~2년 안에는 회복할 것 같습니다. 아니 회복돼야 해요. 아카데미 영화제는 분명 미국 자국 영화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어권 영화들은 대부분 도메스틱으로 칩니다. 게다가 미국 자본이 들어갔다하면 그 역시 자국영화로 간주해요. 할리우드 역시 여러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비슷한 문화권의 영화를 묶어 시장을 확대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비슷한 문화권을 갖고 있어요. 한국,일본,중국은 한자 문화권아닙니까. 또한 생김새 역시 비슷해 이질감이 덜하죠. 전 외국에 나가면 중국사람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아요. 한국 스타가 미국에서 유명해지긴 힘들겠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가능해요. 이미 검증도 받았잖아요. 산업이 붕괴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분명 온다고 믿습니다."

▶ 좀 더 구체적인 대안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한국배우들의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진출한 건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아시아 시장을 타겟으로 한다며 영화보다 배우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완성도 부분에서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종의 변형된 합작영화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때 같은 세트를 미국팀과 멕시코팀이 동시에 나눠 쓴 적이 있어요. 반나절은 미국팀이 미국배우로 찍고, 나머지 시간은 멕시코팀이 멕시코 배우로 찍었죠. 같은 내용의 영화가 양국에서 동시에 만들어져 각각 따로 공급되는 겁니다.

우리의 경우 한국과 일본, 중국이 동시에 같은 영화를 만들어 진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산술적인 계산이지만 제작비는 줄이고, 판로는 늘일 수 있죠. 쉽게 말하면 배우는 (각국 배우로) 더블 캐스팅을 하고 세트는 쓸 수 있는 만큼 재활용하는 겁니다. 여러가지 방법적인 면을 계속 모색중이에요."

곽 감독과의 인터뷰 도중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곽 감독은 가끔씩 강의를 나갈 때 "예술이 뭡니까"라고 묻는 학생때문에 머뭇거린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 역시 똑같이 물었다. "감독님, 예술이 뭡니까?"

곽 감독은 당시 답답했는지 사전을 찾아봤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정의는 '진실한 것, 새로운 것'. 곽 감독은 얼마나 진실되게 찍었는가, 또 얼마나 새롭게 찍었는가에 따라 오락영화도 예술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사진 = 이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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