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극장] "그곳에 가면 추억이 상영된다" (종합)

  • 김지혜 기자
  • 입력: 2008.07.24 09:36 / 수정: 2008.07.24 15:38

[ 김지혜 · 나지연기자] "손님, 거스름돈 받아 가셔야죠?"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드림 시네마에는 가끔씩 영화표값을 두고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된다. 책정된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가겠다는 관객과 절대 이를 받을 수 없다는 매표소 직원간의 실랑이다.

매표소 직원 : 3천원 받아가시라니까요?

손님 : 거스름돈 필요없어요. 그냥 다 받으세요.

직원 : 왜요? 우린 그럴 수 없어요.

손님 : 7,000원으로 보기 아까운 영화에요.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데….

40대 주부인 왕솔하(가명)씨에게 그까지(?) 1만원은 대수가 아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의 꿈틀거리는 힘줄을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이곳은 1만원, 아니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추억을 상영하는 옛날 극장이기에 가능한 에피소드다.

옛날 극장을 찾았다. 손으로 그린 간판, 삐그덕 거리는 의자, 낡은 스크린…. 그래도 상관없다. 그곳에는 추억이 있다. 향수가 있다. 낭만이 있다. 바다극장, 화양극장, 허리우드극장.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올드팬의 감성을 자극하는 옛날 극장 3곳을 찾았다.

◆ 20년전 청춘스타를 다시 만나다

"어머~ 윤발이 오빠네. 이게 언제적 사진이야!"

화양극장(現 드림 시네마)을 찾은 가정주부 김순희(38)씨와 김경애(36)씨는 휴게실에 전시된 주윤발 모형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트렌치 코트를 입고 검정 선글라스를 쓴 주윤발은 요즘 쓰는 말로 '간지폭풍'. 김순희씨는 주윤발 목 위에 얹어진 총을 가리키며 "저 총에 맞아 죽어도 괜찮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김씨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드림 시네마를 찾아 스트레스를 푼다. 지난 4월 영화 '더티 댄싱'으로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21년전 엄마 치마를 훔쳐 입고 '더티 댄싱'을 본 기억이 있다"며 "최근 암 투병중인 스웨이지의 멋지 자태를 드림 시네마에서 다시 만났고,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서대문역 앞에 위치한 드림 시네마는 화양극장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옛날 극장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외관부터 오랜된 향수를 물씬 풍긴다. 특히 화가가 직접 그린 영화간판은 극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투명 유리판으로 만들어진 매표소를 통해 티켓을 사고 받는 과정 또한 낭만적이다

내부 역시 옛날 극장 특유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휴게실 벽면에는 '영웅본색', '로마의 휴일', '미션', '플래툰'과 같은 20년은 족히 넘은 옛날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한쪽 구석에는 80년대 다방의 DJ박스를 연상케 하는 뮤직박스가 설치돼 있고 LP판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드림 시네마 관계자는 "요즘은 재개봉관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20여년 만에 재개봉한 '더티 댄싱'은 1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며 "옛날 영화 중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명화를 엄선해 상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극장 측은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스크린 크기를 늘임과 동시에 좌석까지 개보수했다.

◆ 세대를 아우르는 옛날 극장의 감성

"내가 왜 이 극장을 찾는지 알아?"

허리우드극장에서 만난 50대 아저씨는 옛날 포스터를 보는 재미가 쏠솔하다고 귀뜸했다. 김철민(54)씨는 "종로통에 있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모두 최신식으로 새단장을 했다.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극장은 이제 허리우드밖에 없다"면서 "오래돼서 더 정겹다. '로마의 휴일' 포스터만 봐도 오드리 헵번이 살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의 명물 허리우드극장. 불과 20년전만 해도 종로를 대표하던 극장이었다. 당시 허리우드극장 매표소 줄이 파고다 공원까지 이어졌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허리우드극장은 문전성시였다. 실제로 1979~80년대 '스타워즈' 시리즈와 '타워링', '헬 나이트' 등 대작 영화들이 이곳을 통해 맨 처음 소개되기도 했다.

20년 뒤. 허리우드극장은 예전과 달리 한가하다. 종로를 가득 채운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외롭다. 그래도 허리우드극장이 종로의 유일한 문화쉼터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만 해도 그렇다. '클래식'관에서는 영화 '미션'(1986)이 상영중이며 '아트'관에서는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극장을 찾은 직장인 김지은(26)씨는 "CGV에서 '놈놈놈'을 봤다. 갑자기 김지운 감독이 모티브로 삼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허리우드극장을 찾았다. 스크린으로 옛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며 옛날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이야기했다.

허리우드극장의 김은주 대표는 옛날 극장의 매력을 '감성'으로 꼽았다. 그는 "영화는 시청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감성을 자극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엄마와 딸이 공유할 수 있는 감동이 바로 옛날 극장이 추구하는 추억의 맛이다"고 말했다. 주말 오후 4시 클래식관에서 '미션'을 보고 나온 40대 엄마와 20대 딸의 눈시울이 김 대표의 설명을 뒷받침했다.

◆ 남루한 극장, 그러나 최고의 쉼터

"5,000원으로 하루 종일 놀 수 있어. 여긴 내 놀이터야"

서울에서 가장 낡은 극장. 하지만 가장 인심 좋은 극장. 청계 4가에 위치한 바다극장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바다극장의 티켓 가격은 5,000원이다. 그것도 두 편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가격이다. 요즘 상영 중인 영화는 '스피드 레이서'과 '연을 쫓는 아이'. 5,000원으로 하루 종일 앉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싼 만큼, 아니 오래된 만큼 시설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가건물 3층에 위치한 극장 내·외관은 4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뭍어난다. 버스표를 연상케 하는 입장권은 물론 오래된 벨벳 쇼파와 공중전화 박스, 촘촘히 붙어있는 포스터와 끈끈한 바닥까지 옛날 극장,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을 찾는 관객에게 바다극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관이다. 극장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마음 편한 극장이 없다. 영화를 보다 지루해지면 휴게실 쇼파에 앉아 수다도 떨고, 또 담배 생각이 나면 밖에 나와 한 모금 내뱉는다"며 극장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바다극장 측에 따르면 관객의 대부분은 40~60대 중장년층. 주로 단골손님이 많다. 극장 관계자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 등이 오셔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곤 한다"면서 "2주에 한 번씩 영화가 바뀌는데 주로 한국영화 위주로 틀고 있다"고 말했다. 1968년에 개관해 40년 동안 '씨네마 키드'를 키워왔고, 지금은 '씨네마 올드'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오래되면 될 수록 가치를 발하는 것들도 있다. 올드팬에게 옛날 극장은 그런 공간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네온사인은 없지만 그래서 더 편하다. 마음 속 고향처럼 그리워하는 관객이 있는 한 옛날 극장의 역사는 계속되지 않을까. 그곳에 가면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는 옛날 극장>

▶ 드림 시네마 영사실. 20년전 느낌 그대로다. '외인출입금지'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 한국의 '알프레도' 이길웅씨. 20여년간 드림 시네마 영사실에서 필름을 돌렸다.

▶씨네 포워드. 이길웅씨의 오랜 벗이자 필름이 스크린에 쏟아지는 첫번째 관문이다.

▶ 요즘 드림 씨네마에서 상영중인 영화는 '미션'. 로버트 드니오의 명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 드림 씨네마는 서울 시내 유일한 단관극장이다. 극장 한켠에 자리잡은 20년전 기사 스크랩

▶ 영화관 곳곳에는 옛날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7080 정서들이 가득하다.

▶ 추억의 뮤직박스. 추억의 DJ 김광환씨가 직접 나와 옛 음악을 들려준다.

▶ 종로 낙원상가에 자리잡고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 세대를 아우르는 종로의 문화 심장이다.

▶스웨이지의 그윽한 눈빛과 그레이의 섹시한 목선. 옛날 포스터는 옛날 극장만의 재미다.

▶영화관 내에 설치된 주윤발 조형물. 40대 아줌마의 발길을 붙잡는 이유다.

▶ 옛날 극장이라 해서 중장년층만 애용하는 건 아니다. 젊은 커플도 종종 눈에 띈다.

▶ 서울의 마지막 동시 상영관. 청계천에 위치한 바다극장이다.

▶ 망설일 필요가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2편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 바다극장은 여전히 옛날식을 고수하고 있다. 티켓 가격은 5,000원.

▶손으로 그린 좌석 배치도. 종이가 바랬지만 그래서 더 정겹다.

▶ 바닥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보너스. 바로 휴게실이다. 영화를 보다 잠시 담배 한 모금도 허락된다.

<사진 =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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