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 듯 '절절한 후렴', 어렴풋이 느껴지는 '민요풍 정취'
75년 '대마초 파동' 연루, 폐결핵으로 요절한 '비운의 가수'
김정호는 우리 가요사에 음악적인 재능이 특출났던 천재 가수 중 한명으로 남아있다. 그는 85년 11월 29일 "내 죽거든 앞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33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온라인커뮤니티(팬블러그) |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70년대 초반은 김민기 양희은 등이 포진한 포크 장르와 나훈아 이미자로 대표되는 트로트가 공존하던 시기다. 이장희의 '그건 너'가 73년의 대표자라면 김정호의 데뷔곡 '이름 모를 소녀'는 74년을 대표하는 포크의 돌연변이였다.
'이름 모를 소녀'로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김정호는 어니언스의 데뷔 앨범이 크게 히트하며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임창제의 곡 '작은 새', '사랑의 진실', '저 별과 달을', '외기러기', '외길' 등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짧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한 뮤지션이 남긴 '이름 모를 소녀'는 차분하지만 강렬한 노래다. 지금도 발라드의 원형처럼 남아있는 노래다. 김정호의 이름으로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긴 인생곡이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물결 바람에 이루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바라보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사라져간 이름 모를 소녀'(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 가사 1절)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이 곡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배어 있다. 팝의 일반적인 진행방식을 따르지 않는 곡 구조, 통기타의 느슨한 리듬, 불분명하면서도 신비로운 멜로디, 끊어질 듯 절절한 후렴, 어렴풋이 느껴지는 민요풍의 정취가 공유했다.
가수 고 김정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 한국의 정서인 한이 서린 노래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앨범표지 |
70년대 만연했던 대마초 파동은 우리 가요계의 아픔이자 성장통이었다. 노래로 인기를 얻으면 마치 특권처럼 대마초를 가까이 한 것처럼 비쳤고, 이는 승승장구하던 인기 가수들한테는 결국 무덤이 되곤 했다.
요절 가수 김정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75년의 '대마초 파동'이었다. 친구인 어니언스의 임창제와 함께 대마초로 방송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음악적으로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엔 음악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방송 뿐이었기 때문이다.
79년 해금조치를 받았지만 다른 가수들과 달리 김정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공백기간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치면서 호되게 앓은 감기로 인한 폐결핵을 진단받고 활동하지 못했다.
이듬해 오랜만에 앨범 '인생'을 발표하지만 건강은 좋지 않았다. 결국 폐결핵 증세가 악화돼 요양원에 입원했다. 최소 1년 이상 요양을 해야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그는 4개월만에 요양원을 뛰쳐나와 음악에 몰두한다.
그의 유작이 된 '님'(83년)은 건강 때문에 음반작업 속도가 매우 느렸다고 한다. 숨이 차서 한 소절을 녹음하고 휴식한 뒤에 다시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 탓에 무려 5개월이나 걸려서 겨우 한 곡의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짧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한 뮤지션이 남긴 '이름 모를 소녀'는 차분하지만 강렬한 노래다. 지금도 발라드의 원형처럼 남아있는 노래다. 이 곡은 김정호의 이름으로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긴 인생곡이다. /앨범표지 |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 한국의 정서인 한이 서린 노래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유작 녹음 당시에도 김정호는 유난히 꽹과리에 열중했는데 이런 한 서린 감성이 '님'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건강은 끝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85년 11월 29일 "내 죽거든 앞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33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우리 가요사에 음악적인 재능이 특출났던 천재 가수 중 한명으로 남아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6년에 한국 가요사상 최초로 추모앨범이 만들어졌다. 송창식, 윤형주, 김현식, 윤시내, 하남석, 이정선 등 쟁쟁한 가수들이 참여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조관우가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해 조명을 받기도 했다.
김정호의 음악적인 재능은 어머니쪽에서 물려받았다. 외가는 그야말로 국악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오래 생존했던 모친은 물론 외조부 박동실도 판소리 명창이었다. 외가의 5촌 아저씨는 국립국악원 아쟁 수석 단원을 역임한 박종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