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 役 맡아 열연
"자유의지를 가진 인물에 끌려…이를 잘 가꿔서 퍼뜨리는 게 배우의 역할"
배우 고아성이 영화 '한국이 싫어서'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디스테이션 |
[더팩트|박지윤 기자] '여성 원톱 영화 수익률 1위'에 빛나는 배우 고아성이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그동안 청춘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던 그가 이번에는 20대 후반의 지친 여성상을 그려내며 관객들을 위로하고 응원한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가 됐지만 여전히 연기가 재밌다는 고아성의 '한국이 싫어서'다.
고아성은 지난 28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에서 주인공 계나로 분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이후 4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개봉을 앞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돼 호평을 받은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계나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그리고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15년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등을 연출한 장건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앞서 고아성은 인터뷰 전날 열린 '한국이 싫어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꼭 하고 싶었다.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날 그는 "꼭 마음이 가고 운명적으로 끌리는 작품들이 있어요. 영화 '항거'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도 그랬거든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고아성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뉴질랜드로 떠나는 20대 후반의 계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디스테이션 |
이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은 신이 부여한 선물'이라는 에라스무스의 말을 인용한 고아성은 "이것을 잘 가꿔서 퍼뜨리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작품을) 선택했던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자유의지와 이성이 뚜렷했거든요. 계나도 같은 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극 중 계나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고,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다. 그렇게 그는 직장과 가족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남자친구를 한국에 두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기 위해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이를 연기한 고아성은 흔들리는 20대 청춘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보는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계나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되잖아요. 저는 여기서 못 살겠다는 계나와 외국에 나가는 게 더 힘들다는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의 의견이 다 이해됐어요. 이렇게 복잡한 저의 첫인상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전까지는 명확한 메시지로 극을 끌고 가면서 많은 분이 동의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의 의견이 갈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감독님도 '모두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고요."
소설은 글로벌 세대의 문제적 행복론이자 절망 대처법으로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공감과 위안을 안기며 젊은 층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메가폰을 잡은 장 감독은 계나가 떠나는 곳을 뉴질랜드로 설정하고 주인공의 주변 환경을 바꾸는 등 새로운 설정과 캐릭터를 구축하며 원작과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에 따라 작품은 뉴질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계나와 한국에서 치열하게 사는 계나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를 묵직하게 이끄는 고아성은 지옥 같은 출근길에 오른 생기 없는 얼굴에서 뉴질랜드에 정착한 후 까무잡잡해진 피부와 달라진 메이크업 등으로 외적 비주얼의 변화를 꾀하며 수년간의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고아성은 "'한국이 싫어서'는 운명적으로 이끌린 작품"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디스테이션 |
한국과 뉴질랜드의 시간 순서가 뒤섞여서 대비되는 형식인 만큼 차이를 많이 두려고 노력했다는 고아성은 실제로 작품을 촬영했던 기간의 도움을 받았다고. 그는 "한국의 여름 분량을 가장 먼저 찍었어요. 그로부터 4~5개월이 지난 후 한국 겨울 장면을 촬영하고 뉴질랜드로 떠났어요. 이렇게 시간을 두고 촬영하는 프로젝트가 처음이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실제로 시간차를 두면서 마음 정리도 많이 됐고요. 몇 개월의 텀이 있다 보니까 다음 모습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영화는 시간을 받는 일이잖아요"라고 회상했다.
고아성이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계나의 흐름'이었다. 그는 "감독님께서 '꼭 이렇게 잘 차려입은 날에는 싸울 일이 생기고 유학가서 적응할 만할 때쯤 오만함에 주저앉을 일이 생긴다'라고 하셨거든요. 이러한 인간사의 흐름을 잘 캐치해서 담아내고 싶었어요"라며 "한국과 뉴질랜드에서의 명암을 뚜렷하게 옮겨 내기 보다는 설정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였지만 날씨가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텍스트에서 힌트를 얻어서 연기했어요"라고 설명했다.
"가장 힘이 된 건 원작이 있다는 점이었어요. 시나리오가 연구 대상이었다면 원작은 오리지널 소스였죠. 거기서 힘이 되는 문장을 엽서에 적어서 뉴질랜드에도 들고 갔어요."
그렇다면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장건재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수정 35고'가 적힌 시나리오를 봤던 때를 떠올린 그는 "평균적으로 5~10고 정도죠. 그런데 수정 35고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게 작업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 처음 던진 질문도 '각색하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였는데 '재밌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때 신뢰를 가졌어요. 현장도 신뢰의 연속이었고요"라고 두터운 신뢰를 내비쳤다.
"감독님께서 꼭 한국에 적용하지 않고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말을 듣고 감독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이해가 됐고 이 마음으로 영화를 끝까지 찍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어요."
고아성은 "시네마는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배우로서 살아가려고요"라고 말했다. /㈜디스테이션 |
1992년생인 고아성은 2004년 아역 배우로 데뷔했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과 '설국열차'(2013)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과 함께 강렬한 에너지와 존재감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오빠생각' '항거:유관순 이야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크라임 퍼즐' '트레이서' 시리즈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약 20년 동안 한길을 우직하고 꾸준하게 걸어온 고아성은 "이번에 홍보활동을 하면서 제가 '여성 원톱 영화 수익률 1위'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워낙 작은 예산의 작품들을 해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뿌듯하더라고요"라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지만, 유독 여성 캐릭터의 성장 서사를 담은 작품들에 많이 출연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고아성은 "현실적으로 고민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비슷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고요"라며 "제가 연기를 준비하고 촬영할 때 주변의 매력적으로 인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배우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면모를 지닌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고아성이 생각하는 '배우의 길'은 무엇일까. 이날 현재 촬영 중인 영화 '파반느'(감독 이종필)를 위해 10kg을 증량한 상태라고 밝혀 취재진을 놀라게 한 그는 "그래서 홍보하는 게 자신 없는데 이 또한 작품을 위한 일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길은 작품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것 같아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데뷔 20년 차의 여유와 함께 변치 않는 뜨거운 연기 열정을 장착하고 있던 고아성은 앞으로도 이를 잃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갈 예정이다. 그는 "사람에 관한 호기심이 계속되고 있어서 여전히 연기가 재밌는 것 같아요"라며 "흥행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꼭 찾아준다는 믿음이 늘 있어요. 얼마 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는데 극장에서 본다는 의미를 되새기고 있어요. 시네마는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배우로서 살아가려고요"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