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서 BJ 호루기 역으로 존재감 발산
배우 박예니가 영화 '그녀가 죽었다'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일리언컴퍼니 |
[더팩트|박지윤 기자] "저는 팔레트가 커요."
'그녀가 죽었다'에서 주인공을 저격하는 BJ로 스크린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배우 박예니가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기자와 만났다. 아직 대중이 그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얼굴이 있다는 걸 기대하게 만든 찰나의 순간이자 커다란 팔레트 속 다음에는 어떤 색깔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박예니는 5월 15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에서 호루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개봉 후 무대인사를 돌며 관객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은 그는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더팩트> 사옥에서 취재진과 만나 "다들 재밌다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아요"라고 근황을 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박예니는 "완성본을 보니까 완전 다른 느낌이었어요. 마치 흑백이 컬러로 살아나는 느낌이었죠. 모든 배우가 자신만의 색을 잘 살려내서 캐릭터와 '찰떡'이었죠"라고 영화를 본 소감을 전했다.
박예니는 저격전문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호루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
작품은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 분)가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 분)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를 그린다.
박예니는 1차 비대면, 2차 김세휘 감독과 만나 오디션을 치렀다. 그는 다른 BJ의 영상을 참고하지 않고 '만약 내가 방송을 진행한다면?'이라는 질문의 답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고. 이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인 배우를 찾고 있던 김세휘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께서 '전형적인 BJ 같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아프리카TV BJ들의 방송을 보지 않기를 원하셨고요. 대본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제가 이 대사를 맛깔나게 소화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누군가의 행동을 덧붙이려고 하지 않았죠."
극 중 호루기는 구정태가 한소라의 죽음을 추적하는 데 있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인물이자 저격전문방송 채널을 운영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솔직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다. 이 가운데 그는 한소라를 비방하는 방송을 하는 라이벌 BJ이면서도 그가 실종됐을 당시 가장 먼저 신고하는 미심쩍은 행동으로 작품의 미스터리함을 배가시킨다.
이를 연기한 박예니는 거침없는 욕설부터 파격 행동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남다른 포스를 뽐낸다. 또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카로운 카리스마부터 긴장하고 예민한 눈빛까지 장착하며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늘 제 안에 있는 걸 꺼내서 연기하자는 주의죠"라고 캐릭터 구축 과정을 밝힌 박예니는 이렇게 변요한 신혜선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해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예니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연기가 더 좋아졌다"고 연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에일리언컴퍼니 |
그렇다면 자신보다 경험과 경력이 훨씬 많은 변요한 신혜선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을까.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박예니는 "혜선 언니는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연기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저를 너무 잘 챙겨주셨고요"라며 "요한 선배님도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헤맬 것 같은 부분을 미리 체크하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죠"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포털에 박예니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뉴욕대학교 티쉬예술학교 연기과 학사' '하버드대학교 A.R.T. 연기과 석사 학위'라고 적혀있는 그의 학력이다. 5살 때 TV를 보다가 막연히 배우의 꿈을 갖게 된 박예니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을까.
"제가 5학년 때 연기 학원을 다니고 싶어서 부모님께 처음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대학교 간 뒤에 동아리로 시작해 보라고 하셨죠. 반대가 엄청 심하셨어요. 저는 FM 스타일이라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걸 좋아했어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고 뉴욕대 심리학과로 입학해서 전과했어요. 제가 순둥순둥해 보여도 지는 걸 싫어해요. 어릴 때도 남들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죠(웃음)."
학창 시절 한국 입시와 미국 입시를 병행하며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을 정도로 학업에 몰두한 박예니였지만 이 와중에도 그의 연기 열정은 절대 식지 않았다. 청심국제중학교 재학 당시 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는 그는 "되게 중독적인 거더라고요. 제가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들이 저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라고 회상했다.
"본격적으로 배우 일을 하면서 느낀 건 제가 연기를 하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면서 웃고 위로받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연기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박예니는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오래오래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배우로서의 목표를 밝혔다. /에일리언컴퍼니 |
물론 대학교 졸업 후 일사천리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건 아니었다. 유명세를 얻은 배우들도 '우리는 선택하는 게 아닌 선택받는 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늘 불안함을 갖고 있는데 '배우 지망생' 박예니의 걱정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안 됐다. 당시 자신이 상상하던 미래와 사뭇 다른 현실을 마주한 그는 EBS 작가 겸 강사로 활동하면서 소속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녹록지 않더라고요. '내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을 다녔죠. 바로 배우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EBS 강사로 활동하면서 소속사를 찾으러 다녔죠. 예전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소속사 대표님이 거기서 저를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운이 좋았죠. 그래서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신인 친구들에게 '뭐라도 해라'라고 해요. 어디서 누가 저를 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어릴 때 자신의 꿈을 반대했던 부모님은 이제 박예니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특히 부모님은 '그녀가 죽었다' 개봉 후 친구들과 함께 무대인사를 참석할 정도로 딸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단다.
박예니는 "대학원 졸업할 때 어머니가 오셨는데 그때 제 자취방에서 색조 화장품이 하나도 없는 걸 보고 '연예인이라는 보여지는 직업이 아닌 연기가 하고 싶은 거구나'를 느끼셨대요. 그 후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 데려다주시고 제가 진로를 헤맬 때 멘탈을 잡아주시기도 하셨죠"라고 말하며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는 자와 훔쳐사는 자의 신선한 스릴러로 호평을 받았지만 누적 관객 수 96만 명(4일 기준)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박예니는 "어두운 곳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면 훨씬 재밌는 영화에요. 중간중간 코믹 요소도 찰지게 녹아있고요. 극장에서 보면 훨씬 재미 포인트가 살 것 같아요"라고 많은 관람을 당부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귀띔했다.
열심히 오디션을 보면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배우로서 정말 오래 가고 싶어요. 엄마의 모습도, 할머니의 모습도 담아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를 보고 사람들이 오래오래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