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의도 신호등 추돌 교통사고는 엄연히 달라"
음주운전 혐의 1심 2심 거쳐 대법원 판단 '모두 무죄'
"제발 마녀 사낭식 여론 재판 좀 그만 하라." 방송인 이창명이 최근 가수 김호중의 교통사고 논란에 자신의 이름이 비교대상으로 등장한데 따른 불편함과 부당함을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방송인 이창명이 "제발 마녀 사낭식 여론몰이 좀 그만 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는 최근 가수 김호중의 음주 교통사고 논란에 자신의 이름이 비교대상으로 등장한데 따른 불편함과 부당함을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이창명은 20일 오전 <더팩트>와 통화에서 "8년 전 당시에도 온갖 추측성 기사가 도배되면서 온가족이 고통을 겪었다"면서 "이번 뺑소니 교통사고와는 엄연히 다른 사건인데 일부 언론들이 단정적으로 이번 사건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이미 법률대리인을 선임했으며, 해당 기사를 쓴 매체와 이를 인용 또는 유포하는 경우 명예훼손 등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진행하기로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더불어 "처음부터 정황적 판단만으로 '음주 범범자'란 여론몰이를 당해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제대로 해명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이제는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8년전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던 방송인 이창명이 두 번째 공판 참석을 위해 서울 양천구 신월로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무죄를 받았다. /더팩트 DB |
<다음은 이창명과 전화 통화 인터뷰 내용>
-당시 교통사고 후 현장을 이탈했다가 뒤늦게 경찰에 출석한 것 때문에 유사한 상황으로 비친다. 어떤 오류가 있다는 것인가?
명확히 다릅니다. 사고로 병원 응급실 치료를 받으러 간 것을 '도망'이란 표현으로 매도되고 있기 때문이죠. 당시 저는 안전벨트를 매고 30km 속도로 운전 중이었는데 차 앞 범퍼 한 가운데가 신호등을 들이받으면서 에어백이 터졌어요. 이 충격으로 가슴 압박의 고통 때문에 부득이 차를 놔두고 바로 옆에 있는 성모병원 응급실로 가 당장 치료부터 받게 된 것입니다. 경찰 조사로 다 밝혀진 일이지만, 제 차는 전기장치가 다운되면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에어백은 작은 충격에도 강제적으로 터지게 돼 있었습니다.
이창명은 2016년 4월 법인 명의의 포르쉐 카이엔을 몰고 가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바로 앞 20m 지점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이후 9시간여 만에 경찰에 출석했고,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사고 당시 이씨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가장 억울하다는 것인가.
일부 매체가 '암튼 도망가면 음주처벌 면하다'고 단정적으로 쓰고, '나쁜 선례'라며 비교대상으로 저를 언급하는 부분은 동의할 수 없어요. 저는 1심도 무죄 2심도 무죄를 받았고,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무죄를 받았어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건으로 판명이 난 것인데 8년이 지난 일을 다시 불러낸 것도 모자라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표현으로 저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기사를 마구잡이로 쏟아내 또 한번 죽이는 상황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경찰이 그의 음주운전의 증거로 내세운 것은 위드마크 공식이었다. 계산된 예상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인 0.16%로 산정했지만 위드마크로 계산한 수치는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채혈측정 같은 직접적인 증거로 채택되기 어렵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음주운전 혐의는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으로 확인돼야 적용 가능하다. 이는 이후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 결과로 확인됐다.
-지금 가장 고통스런 일이 무엇인가.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놨습니다. 억울해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당사자 입장에서 유명세를 낸다는 마음으로 8년 가까이 자숙하며 조용히 살고 있어요. 그런데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가족 모두가 악몽같은 8년전 사건 당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또 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관용도 없고 이해도 없고 매정함만 있는 현실이 너무나 저를 힘들게 합니다.
방송인 1992년 KBS 대학개그제에 출신이다. 대전 MBC 당시 동료였던 오승환이 선글라스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이창명의 조수 역할로 콤비를 이뤄 금상을 받았다. 데뷔 이후 콩트 코미디로는 크게 두각을 내지 못했으나 'TV는 사랑을 싣고' 리포터 역할을 맡으며 인지로를 키웠다. 이후 '출발 드림팀'의 MC를 맡아 타고난 순발력과 재치 입담을 보여줬고, 2시즌을 통틀어 약 11년 가까이 방송을 진행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