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파고든 AI②] "편집 속도·창의성 놀라워"…예능국에 등장한 AI PD
입력: 2024.04.09 00:00 / 수정: 2024.04.09 00:00

'PD가 사라졌다!' 최민근 PD 인터뷰

PD가 사라졌다!는 세계 최초 AI PD 엠파고가 MBC에 입사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이다. /MBC
'PD가 사라졌다!'는 세계 최초 AI PD 엠파고가 MBC에 입사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이다. /MBC

AI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이제 AI 프로그램에 몇 단어만 집어넣어 넣으면 누구나 사진 작업을 하고,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인간이 AI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방송가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AI를 활용하기 시작한 가운데 AI가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까지 쓰이고 있을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 | 공미나 기자]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직접 던진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세계 최초 AI PD가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과정을 보여준 MBC 'PD가 사라졌다!'다.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3회에 걸쳐 방송된 'PD가 사라졌다!'는 AI PD 엠파고가 MBC에 입사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과정을 담았다. AI PD의 지시에 따라 출연자들이 서바이벌에 임하고 그 과정을 보여준 일종의 사회실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를 기획한 최민근 PD는 2020년 챗 GPT가 공개되고 사람처럼 소통하는 생성형 AI에 큰 충격을 받고 이것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AI PD 엠파고를 만든 핵심 기술은 두 가지다. 디지털 휴먼과 실시간 편집이다. 출연자와 소통하는 디지털 휴먼은 기술은 국내 AI 스타트업 회사 클레온이, 실시간 편집을 하고 출연료를 산정하는 기술은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김건희 교수가 만든 회사인 리플AI가 담당했다.

프로그램을 만들며 인간 PD들이 "결과가 어떻든 절대 개입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최 PD는 "개입하고 싶은 유혹과 욕구가 많았다. 그러나 어설프게 개입하면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아서 캐스팅부터 온전히 AI를 따랐다"고 말했다.

처음 엠파고가 거론한 출연자 후보는 조정석, 김수현, 차승원 등 유명 스타들이다. 제작진은 엠파고에게 '출연료가 비싸니 합리적으로 다시 선별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지금과 같은 후보자들이 나왔다. 이와 함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한 이들을 추려 10명의 출연진이 선택됐다. 최 PD는 "덕분에 신선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 PD 엠파고는 PD가 사라졌다!에서 음악과 칭찬의 페스티벌 특기 왕관 대결 등 독특한 게임을 출연자들에게 제시했다. /MBC
AI PD 엠파고는 'PD가 사라졌다!'에서 '음악과 칭찬의 페스티벌' '특기 왕관 대결' 등 독특한 게임을 출연자들에게 제시했다. /MBC

정육면체 스튜디오에 모인 열 명의 출연자는 하고 싶은 게임을 말하고 엠파고는 이를 결합해 새로운 게임을 창조해 낸다. 디스 랩과 노래 대결, 칭찬하기가 합쳐진 '음악과 칭찬의 페스티벌'이 그 예다. 이밖에도 엠파고는 '자기소개 피구 줄다리기', '감성 트로트 체력 대결', '진지한 물병축구', '진실의 짝 지키기' 등 기상천외한 게임들을 20개 가까이 만들었다.

엠파고는 출연자들의 여러 의견 중 일부를 선정해 10초도 걸리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출연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괴상한 게임들이었지만 최 PD는 신선함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고 했다.

"엠파고가 만든 게임은 누군가 회의시간에 말하면 쫓겨날 수준의 아이디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이 생각하지 않은 생소한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던진다는 게 소름 끼쳤어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새로운 걸 조합해서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엠파고의 실시간 편집 속도는 가히 놀라웠다. 2시간 촬영 분량을 7~8분짜리 영상으로 만드는 데에 약 8~9분이면 충분했다. 사람이 편집한다면 이틀 정도 걸리는 분량이다. 최민근 PD는 "처음엔 영상을 편집하는데 30분이 걸렸지만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점점 시간이 줄었다"며 "물론 하이라이트 편집 수준에 불과하지만 보기에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최 PD에 따르면 엠파고는 음량이나 동작, 얼굴 표정, 리액션, 특정 단어 사용 등 물리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삼아 영상을 편집했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에서 봤을 때 오류가 의심될 만큼 미스터리한 지점도 있었다.

최 PD는 "촬영을 진행하며 편집 기준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오류라고 생각했는데 AI가 스스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서 적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깊이 생각하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되다가도 어떠한 부분에서는 특정 출연자를 편애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분량에 따라 출연료를 산정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상징적인 설정이다. 최민근 PD는 "현재 방송 출연료는 인지도에 따라 결정 난다. 반면 엠파고는 기여도에 따라 출연료를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AI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명확한 기준에 따른 평가'를 출연료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PD가 사라졌다!에서 엠파고는 방송 분량에 따라 출연자들의 출연료를 결정했다. /MBC
'PD가 사라졌다!'에서 엠파고는 방송 분량에 따라 출연자들의 출연료를 결정했다. /MBC

게임이 진행될수록 엠파고를 바라보는 출연자들의 시선이 갈렸다. 엠파고를 신뢰하고 잘 따라야 한다고 하는 이들과 엠파고가 만든 게임이 완벽하지 않다며 반발한다. 최 PD는 출연자 간 갈등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며 "엠파고가 1회 차 촬영보다 2회 차 촬영에서 진화했다. 그 사이 엠파고의 권위가 인정됐고 출연자 성향에 따라 부류가 갈라졌다"고 설명했다.

'PD가 사라졌다!'는 AI를 활용해 참신한 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반반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엠파고가 완벽히 프로그램을 이끌지 못한 점에 주목하며 "결국 아직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최 PD는 "이 프로그램이 결국 아직 AI가 사람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는 희망을 줬다고 보시는 분도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AI가 기본 영역은 이미 충분히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디테일한 부분은 아직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등 창의적인 영역까지 이미 AI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PD가 사라졌다!'를 두고 아쉬움도 크다. 제작 기간이 짧았고 방송 시점인 현재 AI 기술이 훨씬 발전했기 때문이다. 최 PD는 "시청자 반응을 학습시키지 못한 게 아쉽다. 제작 기간이 더 길어서 그게 가능했다면 엠파고가 더 빨리 진화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번 방송이 AI를 활용한 실험에 가까웠다면 다음엔 조금 더 재미나고 날카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최 PD다. 그는 "한 번 AI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니 어떤 걸 해야 재밌을지 감이 잡혔다. 다음엔 엠파고와 강렬한 생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나 메타버스 등 첨단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갖춰졌다. 다만 킬링 콘텐츠가 없어서 확산이 덜 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재미난 콘텐츠가 나오고 기술이 확산된다면 방송가 패러다임도 확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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