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규 9집 '여행' 발매
김범수가 지난 22일 정규 9집 '여행'을 발매했다. 10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영엔터 |
[더팩트 | 정병근 기자] 보컬리스트 김범수는 전율을 일으키는 고음과 기교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구사한다. 거기서 오는 울림이 상당히 묵직하다. 이는 김범수의 최대 강점인데 그걸 상당 부분 내려놨다. "예전엔 피지컬이나 가창력을 더 활용했는데 이번엔 내면적인 에너지가 더 드는 과정이었다"는 그의 말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변화의 단초는 데뷔 25주년에 발매하는 10년 만의 정규 앨범인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고 초연한 듯 길게 기른 머리는 그의 마음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듯했다.
"열심히 활동은 하고 있었는데 음악 시장과 흐름이 바뀌었고 피지컬 앨범을 안 하다 보니까 열심히 해도 결과물이 없는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규에 대한 책임감은 늘 품고 있었는데 변한 시장에서 효용이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러다 더 미루면 25주년이 준비가 안돼있을 거 같아서 뭐라도 들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의 말처럼 음악 시장은 그가 정규 8집 'HIM(힘)'을 냈던 2014년과는 또 다르다. 손에 쥘 수 있는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하는 게 당연시됐던 시대를 지낸 많은 가수들에겐 고민과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느 순간 꿈을 잃고 성공만을 향해 달려왔던 김범수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데뷔 초 시련과 이후의 영광을 모두 맛본 김범수는 "목표는 돈과 인기가 아니었는데 일을 하면서 변질됐다. 하다 보니 차트에 순위가 나를 판단하고 옆에 같이 활동하는 동료들이 경쟁자가 되고 회사가 원하는 목표를 이뤄야 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더라.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앞만 봤다"고 털어놨다.
그런 시절을 보내다 급변한 음악 시장에 안 그래도 고민이 많았는데 급기야 5년 전쯤 심한 급성후두염으로 공연을 당일에 취소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용기도 잃었다. 뒤이어 코로나19 펜데믹이 오면서 딱히 뭔가 시도할 수도 없었다. 갖고 있는 건 생각 못하고 잃은 것에 매몰된 '결핍의 시기'였다
그 시기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의 노래와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접했고 거기서 위로를 받았다. 김범수가 지난 22일 발매한 정규 9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최유리가 만든 곡 '여행'은 김범수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우르고 앨범 제목이 됐다. 앨범은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가 음악 인생을 뒤돌아보며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여행으로 표현한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영엔터 |
"예전 선배님들 노래는 좋아했지만 이렇게 한참 차이가 나는 후배(최유리) 음악에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심취했어요. 많은 걸 갖고 있어도 조금 새는 물에 결핍을 느끼는 결핍을 느끼는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최유리의 노래를 들으면 아무 것도 없던 잔에 물이 조금 채워지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김범수는 이미 많은 걸 이뤘고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잠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를 지나며 위축된 자신이 싫었다. 그는 "내가 꼴보기 싫고 한심했다"고까지 표현했다. 최유리의 곡을 들으면서 마음부터 다시 채워진 그는 최유리에게 요청했다. "최유리의 정체성을 담은 곡에 나를 투영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때 최유리가 꺼낸 소재가 정규 9집 타이틀곡 '여행'이다. 최유리가 만든 곡 '여행'은 김범수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우르고 앨범 제목이 됐다. 이 앨범은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가 음악 인생을 뒤돌아보며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여행으로 표현한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그가 겪어온 여정을 보여주는 앨범인 것.
"흔히 얘기하는 신나게 룰루랄라 짐가방 챙겨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 부딪힘 실패가 있는 여행이에요. 지금까지 25년 가수 인생도 좋은 시절도 많았지만 난관과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게 담겼어요. '여행' 곡을 받고 느낀 게 타이틀곡 이런 걸 떠나서 여행이란 단어가 이 앨범을 설명해줄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김범수의 여정의 시작이자 이 앨범을 여는 곡은 '너를 두고'다.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를 가사로 했다. 김범수는 최유리의 곡에서 느낀 것들을 나태주의 시에서도 느꼈다.
김범수는 "돌아보면 제 꿈은 노래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그것을 통해 제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거였다"며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엔터 |
"제가 제주살이를 시작했을 때 정말 할 게 없었어요.(웃음) 그때 시를 읽으니까 좋더라고요. 나태주의 시는 장황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줬어요. 앨범을 구상할 때 가사가 잘 들리는 시집 같은 앨범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나태주 시인이 떠올랐고 '너를 두고'를 얘기하셨어요."
이밖에도 김범수는 선우정아 임헌일 이상순 등 여러 뮤지션들에게서 곡을 받았다. 조금씩 앨범 참여도를 높여가며 10년 전 발매한 정규 8집에서 싱어송라이터로 꽃을 피웠던 김범수는 이번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수집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를 돌이켜 보니 가사가 잘 들리는 노래였다.
"정규 8집을 내고 싱어송라이터로 가야 할지 보컬리스트로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진정성을 더 담아야 할지 기로였어요. 그러다 노래만큼 곡을 잘 만들 자신이 없어서 욕심을 버리게 됐어요. 더 좋은 노래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가사가 잘 들리는 시집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 앨범을 작업하면서 김범수는 스스로 치유를 하고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그러면서 가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꿈꿨던 걸 다시 떠올렸다.
"돌아보면 제 꿈은 노래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그것을 통해 제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게 아니면 더 노래할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제 또래 가수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은데 우리 영역이 있으니 전 제 길을 가면 되지 않나 싶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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