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役
"장재현 감독의 작업 과정이 궁금했고 대본에 친근함 느껴"
배우 최민식이 영화 '파묘'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쇼박스 |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최민식은 연기 생활 35년 차에도 여전히 모든 게 궁금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던 중 장재현 감독과 만나 데뷔 첫 오컬트 장르에 뛰어들게 된 그는 또 하나의 무형의 인물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민식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파묘'(감독 장재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스크린에 걸린 '파묘'는 사전 예매량 36만 장을 돌파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혔고 이를 알고 있던 최민식은 "천지신명께서 도와주신 것 같아요"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개봉 소감을 전했다.
작품은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다. '사바하' '검은 사제들'로 K-오컬트를 선보인 장재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최민식은 40년 경력의 풍수사 상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쇼박스 |
최민식이 '파묘'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장재현 감독이었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촘촘하면서도 재밌게 완성해 내는 그의 실력을 믿었고 더 나아가 그가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궁금했다. 또한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는 그의 표현과 정서도 와닿았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신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문을 연 최민식은 '파묘'에 친근함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제가 어릴 때는 무속과 풍습이 늘 곁에 있었어요. 제 사주를 보면 10살 때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저를 절에 데리고 가서 기도하셨어요. 의사도 포기했는데 나았어요. 참 희한하죠.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몸으로 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요. 여기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와 풍습을 즐기면서 살 수는 없을까?' 싶었죠. 기도하는 그 마음이 종교거든요."
40년 경력의 풍수사 김상덕 역을 맡은 최민식은 흙을 맛보고 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촬영 시작 몇 개월 동안의 연구와 노력으로 한 인물의 40년 인생을 헤아릴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그는 '자연을 깊게 바라보는 인물의 태도'에 집중했다며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어디가 길지이고 어디가 흉지인지 또 터의 모양과 형태 등을 평생 연구했던 사람이잖아요. 산에 올라가도 일반 등산객과 다르게 산을 바라볼 것 같았어요. 무엇이든 깊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려고 했어요. 김상덕의 가장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거 하나 잡고 갔죠. 사실 말은 거창하게 하고 있지만 김고은이 다했죠. 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죠(웃음)."
최민식(위쪽 사진의 왼쪽)은 "김고은과 이도현은 '파묘'의 손흥민과 김민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쇼박스 |
이날 최민식은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 역의 김고은과 경문을 외는 봉길 역의 이도현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을 '파묘'의 손흥민과 김민재라고 표현하며 "나는 벤치에서 물을 떠다 나르고 게토레이를 입에 넣어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내가 예쁜데 이런 역할을 어떻게 해?'라는 아마추어적이고 몹쓸 생각에 갇히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니까 선배 입장에서 대견하고 기특했죠. 여배우가 무속인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자신을 내려놓고 뛰어 들어가서 배우로서 몰입하더라고요. 그런 도전정신으로 자신을 열어 놓으니까 김고은의 앞으로가 더 기대돼요. 이런 친구들과 작업하면 정말 좋죠. 김고은과 이도현은 넉살도 좋고 술도 좋아하더라고요. 옛날부터 작업했던 것처럼 느껴졌어요. 프로죠."
인터뷰 내내 장재현 감독과 후배들의 활약상을 치켜세우며 겸손한 면모를 드러낸 최민식이다. 배우들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경쟁이 아닌 화합해야 된다고 강조한 그는 "그렇기 때문에 '파묘'는 김고은의 퍼포먼스가 돋보여야 돼요. 제가 같이 춤추면 안 되죠. 배우 개인의 욕심이 앞서면 연출이 눌러줘야 하고요. 대살굿은 우리 작품의 하이라이트니까 고은이가 마음껏 즐겼어야 했어요. 물론 고생도 했고요"라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파묘'의 최민식은 다른 배우들이 준비한 것을 마음껏 펼치고 뛰어놀 수 있는 튼튼하고 듬직한 판으로 존재했다. 매 작품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법하게 캐릭터를 그려냈던 그의 관록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과 없이 발휘된 것이다. 최민식에게 늘 이렇게 연기할 수 있는 노하우를 물었더니 "업계 비밀"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노하우는 없어요. 그럴듯하게 사기 치는 게 제 일이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허구의 삶과 인간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게 제 일이라서 외로운 순간이기도 해요. 이번에 장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김상덕은 이런 인물이야'라고 골백번 생각하면서 데이터를 입력했어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제가 그 인물이 돼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김고은 말대로 돈값을 못 하는 거죠. 그 누구도 제 작업에 개입을 못해요. 디렉션은 줄 수 있지만요. 마치 절벽에 떠밀려 있는 것 같아요. 노하우는 없어요. 무형의 인물에 다가가고 밀착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최민식은 "앞으로 할 게 많다. 욕심도 많고 하고싶은 작업도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쇼박스 |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최민식은 올해로 배우 생활 35년 차가 됐다. 매번 허구의 삶과 인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그가 그럼에도 배우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질문을 들은 최민식은 "일단 한번 시작하면 달리게 돼요. 후반부로 갈수록 무형의 인물과 견고하게 붙거든요. 그 몰입감이 즐거워요"라고 강조했다.
최민식은 지난해 디즈니+ '카지노'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났고 가수 자이언티의 '모르는 사람'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수많은 인생작과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이나 안주보다는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장르와 캐릭터가 무궁무진한 그의 욕심에서 비롯된 행보였다.
"제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어요. 선생님들도 지금 그렇게 하시는데 저는 핏덩이죠. 35년 동안 연기를 했다지만 그걸 세지 않아요. 세는 순간 뒤로 주저앉는 거거든요. 앞으로 할 게 많아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작업도 많아요. 저 아직 멜로도 못 해봤거든요(웃음). 의욕도 생겨요. 제가 아직 만져보지 못하고 접해보지 못한 허구의 세상과 허구의 인물이 많아요. 이 세상을 다 알 수 없지만 못해보고 죽으면 너무 아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