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서 봉림 役…중국어·연변 사투리 완벽 소화
"접근하기 편하지만 그 안에 무한한 재료가 널려있는 배우 되고파"
배우 염혜란이 '시민덕희'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쇼박스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늘 대중의 기대감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배우 염혜란을 약 4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득 품고 있었고 칭찬을 오롯이 즐기지 않는 겸손함도 그대로였다. 이 가운데 많은 취재진과 만났던 만큼 답변에는 여유가 더 깃들어 있었다. 염혜란이 선보일 다음 연기만큼 그와의 만남도 기다려지는 이유다.
염혜란은 24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에서 덕희(라미란 분)가 다니는 세탁 공장의 동료이자 빼어난 중국어 실력의 소유자 봉림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염혜란은 '시민덕희'를 본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전체적인 그림보다 자신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만큼 아쉬움이 컸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를 들은 세 명의 취재진은 모두 의문을 자아냈지만 염혜란은 "조금 더 여유롭게 했으면 재밌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남다른 연기 열정을 짐작게 했다.
염혜란은 덕희가 다니는 세탁 공장의 동료이자 빼어난 중국어 실력의 소유자 봉림 역을 맡았다. /쇼박스 |
작품은 평범한 시민 덕희에게 사기 친 조직원 재민(공명 분)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추적극이다. 극 중 봉림은 덕희의 세탁공장 동료이자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타고난 눈치코치에 중국어 실력까지 갖춘 인물이다. 이에 염혜란은 연변 사투리와 중국어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또 한 번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했다.
'평범한 시민이 범죄 조직의 총책을 잡는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에 한 번, 이를 라미란이 연기한다는 소식에 두 번 매료된 염혜란이다. 이 가운데 중국어 연기는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와 동시에 제대로 해내고 싶은 욕심이 됐다. 그는 중국어 선생님과 사전에 약속했던 횟수를 초과할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고,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확인의 과정을 거쳤다.
"통으로 외우는 걸 절대 못 해요. 무슨 뜻인지 먼저 알고 성조를 외우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외울 수 있었죠. 배우는 언어를 소화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잖아요. 중국 분들이 보시고 '노력했구나'라고 알아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이날 염혜란은 라미란을 비롯해 장윤주 안은진 등 함께 호흡한 배우들을 향한 존경심과 칭찬도 아끼지 않고 펼쳤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크랭크업한 작품을 약 3년 만에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에 관해 "아무도 물의를 일으키지 않아서 개봉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개봉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또 배우들이 작품을 찍고 더 잘됐잖아요. '연인' 길채(안은진 분)와 이무생로랑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묻어갈 배우가 많아서 행복해요."
염혜란은 '더 글로리' '시민덕희' '마스크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갈아 끼우는 듯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넷플릭스, 쇼박스 |
기자가 염혜란을 처음 본 건 넷플릭스 '마스크걸' 관련 인터뷰였다. '더 글로리'에서 '명랑한 이모님'으로 활약했던 그가 '마스크걸' 김경자로 분해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주며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그때였다. 당시 뜨거운 화제성이 이어졌던 만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만 나눠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기에 이날은 그때 못다 한 배우 염혜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자 했다.
이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그가 1999년 극단 '연우무대'로 연기를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헛된 꿈이라고 생각해서 선택까지 오래 걸렸지만 배우로 전향하고 후회한 적은 없어요"라고 회상한 염혜란은 "제가 이렇게 끈기 있게 뭔가를 해보려고 한 건 연기가 처음이었어요. 어렵지만 즐거워서 계속할 수 있었죠"라고 강조했다.
드라마 '도깨비' '동백꽃 필 무렵' '경이로운 소문', 넷플릭스 '더 글로리' '마스크걸' 등 염혜란이 탄탄하게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작품의 흥행과 함께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뚜렷하게 기억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얼굴을 갈아 끼우는 듯 새로운 모습을 장착하고 나타나는 염혜란은 어떤 캐릭터든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우리 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이면서도 시선을 끄는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염혜란은 이 같은 자신의 활약을 두고도 "작품 운이 좋은 편"이라고 겸손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누구나 잘되는 흐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늘 내려갈 때를 대비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염혜란은 "늦게까지 생명력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쇼박스 |
염혜란의 연기 생활은 시작부터 탄탄대로 걷듯 쉽게 풀리지 않았다. 늘 '코믹 연기를 하기에는 아주 웃기지 않다' '너무 이쁜 것도 아니다' '애매하다' 등과 같은 평을 들으면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고, 그 결과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은 점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키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후배들이 이러한 제 인터뷰를 보고 힘을 많이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제 부족함이 잘 풀린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더 다양한 걸 해내면 후배들도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졌잖아요. 저도 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싶어요."
염혜란이 말하는 배우의 장점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모두가 각기 다른 얼굴과 매력을 갖고 있기에 '일렬로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갖고 있는, 혹은 갖고 싶은 맛은 무엇일까.
"제가 지금 갖고 있는 건 접근하기 쉽다는 거예요. 저는 시장 맛이었으면 좋겠어요. 접근하기 편하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재료가 널려있길 바라죠. 나문희 선생님께서 저에게 '100살까지 연기해라'라고 말씀 해주셨어요. 늦게까지 생명력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