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를 리셀로 치부해선 안되는 이유
매크로 이용해 조직화 고도화된 암표상들
인기 가수들의 콘서트 티켓이 정가보다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가격을 올린 암표로 거래되고 있다. 조직화된 암표상들은 매크로를 사용해 좋은 좌석의 티켓을 싹쓸이한 뒤 고가에 판매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 DB |
세계 팝의 중심인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한국 가수의 이름이 매주 오르내리고 총 십만 관객이 넘는 규모의 월드투어도 비교적 흔해진(?) 요즘. 글로벌 K팝 시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K팝 업계를 어둡게 하는 건 바로 '암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기가 많아질수록 불법거래가 더 판친다. '암표', 누구냐 넌?<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먼저 '암표'가 대체 뭔지, 어디까지를 암표로 봐야하는지, 암표는 어떻게 생겨나는지부터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되판다'는 의미의 '리셀(Resell)'과 구분해야 하고 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 '매크로(Macro)'를 알아야 암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근절에 동참할 수 있다.
티켓을 구매한 뒤 취소할 경우 보통 관람일 기준으로 티켓 가격에서 9~7일 전 10%, 6~3일 전 20%, 2일~1일 전 30%의 수수료를 문다. 불가피하게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티켓을 되파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팬들에게 불가피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구매한 가격 이하에 되판다면 모르겠지만 웃돈(프리미엄)을 붙이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마진이 있는 곳엔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운동화 피규어 명품 등은 이미 프리미엄이 붙은 리셀 시장이 있다. 그러나 이들과 티켓은 상품의 성질과 구매 형태 등이 다르다.
리셀이 이뤄지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오프라인에서 구매가 이뤄지거나 서서히 가치가 상승해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티켓의 경우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고 구매와 동시에 프리미엄이 붙어 환금성이 좋다. 그러다 보니 조직화되고 규모가 광범위해진다.
그걸 부추기는 최전선에 매크로가 있다. 로그인부터 좌석선택과 결제까지 수초 내에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조직화된 업자들은 다수의 아이디를 확보한 뒤 매크로를 이용해 티켓을 예매한다. 팬들의 '수작업 예매'로 따라잡기 불가능한 속도로 좋은 좌석을 싹쓸이한다. 그 티켓에 과한 웃돈을 얹어 판다. 그렇게 나온 티켓이 요즘 시대의 암표다.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는 티켓 예매 시작 1분 만에 370만 건 이상의 트래픽이 몰렸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 13명 당 1명 꼴로 접속해야 나오는 수치다. 임영웅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 같은 수치는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예매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 암표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거래된다. 임영웅만이 아니다. 인기 아이돌그룹을 비롯해 심지어 인디 가수들까지 암표는 기승을 부린다. 한 SNS에 콘서트를 입력하면 판매를 한다는 수많은 글들이 나온다. 중고거래 플랫폼도 마찬가지고 아예 암표 거래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티켓OO)까지 있다.
SNS, 중고거래 플랫폼, 티켓 거래 사이트 등에서 웃돈을 붙인 티켓 거래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SNS, 사이트, 플랫폼 캡처 |
암표 근절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 윤동환 회장은 <더팩트>에 "코로나 이전엔 인기 공연의 경우에도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비중이 10%도 안되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작년엔 30%, 올해는 50% 정도까지 온 거 같다.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탠딩석이나 앞자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암표 구매 경험이 10번 정도 된다는 직장인 A 씨(여. 22)는 "아이돌 그룹 콘서트를 20번 정도 갔는데 예매해서 간 건 반도 안 된다. 운이 좋아 뒷자리 예매에 성공해도 앞자리를 알아본다"며 "보통 팬클럽을 통해서 무리 지어서 공연을 보러가는데 그들 대부분 프리미엄을 주고 구매한 티켓"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펜데믹이 끝나고 공연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한 데다가 K팝의 글로벌 인기가 날로 거세지면서 항공 숙박비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해외 팬들까지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암표도 많아졌고 그 가격도 치솟았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접수한 대중음악 공연 암표 신고 수가 4224건인데 올해는 암표상들이 더 조직화되고 고도화됐다.
업계가 손놓고 있는 건 아니다. 티켓 예매 플랫폼은 매크로 자동 생성 방지 기술을 도입했고 공연장 입장시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했다. 음악 관련 협회들은 힘을 모아 실제적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매크로의 진화와 암표상들의 '판매 꼼수'는 그런 노력들을 무력화시킨다. 노력에 힘을 실어줄 법률은 한발 늦는다.
음레협은 지난 3월 암표 부정거래 설문 조사를 실시해 암표로 인한 아티스트 및 주최사의 피해 실태를 알렸고 유튜브 채널 연투유TV에서 암표상을 직접 만나 매크로와 조직화된 실체를 파헤쳤다. 그리고 최근 윤동환 음레협 회장은 법무부에 암표 법률 개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비중이 50%까지 온 거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암표 구매 경험이 10번이 넘는다는 한 음악 팬은 "무리 지어서 콘서트를 보러 가는데 대부분이 프리미엄 주고 구매한 티켓"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더팩트 DB |
음레협은 "암표가 기승을 부리면서 암표를 이용한 사기 행각도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순진한 팬심을 이용하여 산업 구조를 무너뜨리는 이런 불법 행위는 중죄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범죄로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윤 회장이 암표 법률 개정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한 이유다.
업계의 끊임없는 요청에 국회도 움직임은 있었다. 국회는 매크로를 이용해 입장권을 부정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공연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내년 3월 시행을 앞뒀다. 그러나 암표를 막기 위한 법안 7개 중 5개는 계류된 상태다. 아직까지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보기 어려운 모양새다.
오죽하면 일부 가수들과 기획사가 나섰다. 임영웅의 소속사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티켓 양도 및 재판매를 목적으로 진행된 예매 내역을 수시로 체크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이유는 일명 '암행어사 전형'을 도입했다. 암표 거래를 제보한 신고자에게 부정 예매된 티켓을 포상으로 주는 방식이다.
음레협은 "매크로의 등장으로 암표상이 조직화, 기업화돼가고 있다. 2024년 3월 공연법 개정으로 매크로를 이용한 구매를 불법으로 정의하게 됐지만 현실적으로 분업화된 암표상 개개인의 매크로 구매를 적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번에 암표 자체를 근절하기 어렵지만 우선 50년 전 만들어진 암표 법률부터 개정을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법률에서 암표는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 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이다. 아무리 예시라고 해도 5G SNS 시대에 나루터라니. 암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재규정하는 것이 근절을 향한 첫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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